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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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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겨울밤, 세한도(歲寒圖) 읽기

2020-12-08 06:00

조회수 : 7,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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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다음 두 개의 문장을 읽기로 하자. 
 
“그대가 지난해에......(중략) 책 수백 권을 보내주니 이는 모두 세상에 흔한 일은 아니다. 천  만 리 먼 곳에서 사온 것이고 여러 해에 걸쳐서 얻은 것이니, 일시에 가능했던 일도 아니었다......(중략) 지금 세상은 온통 권세와 이득을 좇는 풍조가 휩쓸고 있다. 그런 풍조 속에서 서책을 구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중략) 바다멀리 초췌하여 시들어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을 마치 세상에서 잇속을 좇듯이 하였구나!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이 말하기를 “권세와 이득을 바라고 합친 자들은 그것이 다하면 교제 또한 성글어진다”고 하였다. 그대 또한 세상의 도도한 흐름 속에 사는 한 사람으로 세상 풍조의 바깥으로 초연히 몸을 빼내었구나......(중략)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 (후략)
 
"<세한도> 한 폭을 엎드려 읽으매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리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어찌 그다지도 제 분수에 넘치는 칭찬을 하셨으며........(중략) 이번 사행使行 길에 이 그림을 가지고 연경燕京에 들어가 표구를 해서 옛 지기知己 분들께 두루 보이고 시문詩文을 청하고자 합니다. (후략) 
 
앞의 문장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역관(譯官)인 제자 이상적(李尙迪, 1804-1865)에게 보내는 편지고, 뒤의 것은 그것을 받아든 제자의 답신이다. 추사는 제자가 연경에서 귀한 서책 120권 79책을 가져다준 것에 감동하여 세한도(歲寒圖, 대한민국 국보 180호, 1844년 작품)로 화답하며,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였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먹먹해진다. 그리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심정을 쉬 가누질 못하겠다. 세한도를 둘러싸고 이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장의 행간에는 사제 간의 의리와 정이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인용한 서신의 글은 미술사학자인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신구문화사, 2018)에서 가져왔다. 
 
화폭에는 소나무 한 그루, 잣나무 세 그루, 집 한 채만이 홀연히 자리 잡고 있다. 쓸쓸하다. 고독이 지배적이다. 바깥출입을 할 수 없는 제주의 귀양살이에서 일 년 중 가장 추운 시간인 ‘세한(歲寒)’의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에 제자는 편지의 글처럼 약속을 지켜 세한도를 청나라에 가져갔다. 그리고는 열여섯 명의 청나라 문인들에게 보여주고는 그들로부터 직접 칭송의 시(詩)와 감상평을 받아오기에 이른다. 작품의 고고한 품격과 김정희와 이상적 두 사제 간의 아름다운 인연에 감동하였으리라. 이상적은 이 글들을 모아 십 미터에 달하는 두루마리로 엮어, 다시 스승의 유배지를 찾아가 보여주었다고 하니, 아, 그것을 주고받는 두 사람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 두 눈에는 눈물이 맺히는 듯하다.    
 
세한도(歲寒圖)라는 제목은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의 ‘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 松柏之後凋)’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이 말은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비로소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는 뜻. 사람은 고난을 겪을 때 비로소 그 지조의 일관성이나 인격의 고귀함 등이 드러날 수 있다는 함의가 느껴진다. 동시에 시절이 좋을 때나 고난과 핍박을 받을 때나 한결같이 인격과 지조를 지켜야 한다는 추사의 다짐이 여러 문인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읽힌다. 
 
“권세와 이득을 바라고 합친 자들은 그것이 다하면 교제 또한 성글어진다”고 한 사마천의 말은 안타깝게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어찌하랴. 그것이 세상인심인 것을. 사제 간의 정이라는 것도 이러한 세상 흐름을 거슬릴 수 없는 노릇. 
 
그러나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추사 김정희와 이상적이 나누었던 사제의 정이 그립고 또 그립다. 지금 다시 일백 칠십여 년 전에 있었던 이 아름답고도 숭고한 일화를 두고두고 헤아려보자. 여전히 감동은 우리들의 몫이 될 것이다. 세한도 밑으로 찍힌 도장,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라는 뜻의 ‘장무상망(長毋相忘)’이란 글자가 쉬 잊히질 않는 밤, 이런 겨울밤과의 동행이 참 따스하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 일본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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