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홍연기자]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15일 폭로한 청와대의 사법부 불법 감찰 내용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일과 중 등산 의혹과 최성준 전 춘천지법원장(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대법관 진출 의욕에 대한 내용이다. 조 전 사장은 이날 폭로에서 “대단한 비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물론 재야법조계와 시민단체는 한 목소리로 격앙돼있다. 특히 일선법원의 평판사들은 분노에 가까운 반응이다. 이번 현직 대법원장에 대한 불법사찰 의혹은 역대 초유의 헌정유린 사태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시절 말기 2012년 6월에도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도 불법사찰에 나선 적이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검찰 수사결과 사찰대상에 경찰청장과 국가정보원장,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등과 함께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포함돼있었다. 당시 이 전 대법원장은 적어도 현직 대법원장은 아니었다.
대법원은 조 전 사장의 폭로가 있은 직후인 오전에는 즉각적인 반응을 자제하고 신중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오후 들어 조 전 사장이 해당 문건을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제출하면서 이례적인 표현을 써가며 비판을 쏟아냈다.
"사법부 독립 원칙 정면 위배…심각한 유감"
대법원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만일 법관에 대한 일상적인 사찰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이는 사법부를 감시하고 통제함으로써, 헌법과 법률 그리고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하는 법원을 구현하고자 하는 헌법정신과 사법부 독립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실로 중대한 반헌법적 사태”라고 지적했다. 또 “대법원은 이로 인해 사법권 독립이 논란의 대상이 된 현재의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유감을 표명한다”며 “동시에 책임 있는 관련자들이 전후 경위를 명확히 해명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법관에 대한 일상적인 사찰이 실제로 이뤄졌다면’이라는 완곡한 전제를 깔았지만 ‘중대한 반헌법적 사태’, ‘사법권 독립이 논란의 대상이 된 상황’. ‘심각한 우려와 유감 표명’ 등 행간의 의미를 짚어보면 양 대법원장과 사법부 수뇌부들의 반발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일선 법원 판사들은 직접적인 분노를 쏟아냈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개인의 사생활까지 사찰했다는 것은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살폈다는 것인데, (청와대가)사법부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는 것 같다”며 “사법부의 약점을 잡고 마음대로 흔드려는 저의에 의한 것이라고 밖에 안 보인다. 삼권 분립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지적했다. 서울고법의 한 평판사도 “문명국가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군사독재정권 시절로 회귀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서울중앙지법의 또 다른 판사도 “수장인 대법원장의 약점을 잡아 사법부를 길들이려는, 매우 위험하고 어처구니 없는 행위”라며 “폭로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매우 단호하고 강경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변협 "불법사찰 관여자 엄벌해야"
재야법조계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폭로내용이 사실이라면 불법의 차원을 넘어 헌법상 권력분립을 위배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청와대가 사법부의 수장과 법원장을 사찰해 약점을 잡아 사법부를 길들이고 나아가 사법부를 장악하려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은 즉시 불법사찰에 관여한 자를 모두 철저히 조사해 엄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김준우 사무처장도 “세계일보가 보도한 정윤회 게이트 사건에 비춰보면 조 전 사장의 진술에 신빙성 있어 보이고 최근 보도되고 있는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비망록 등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보면 청와대가 사법부에 대한 통제를 시도했다는 것이 확실해보인다”며 “삼권분립을 정의한 헌법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서보학 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장(경희대 교수)은 “박근혜 대통령 정치스타일이 70년대 공작정치 스타일과 판박이”라며 “민주사회에서 헌법 권력을 나눠놓은 것은 서로가 견제하고 감시하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하지만, 행정권이 공작정치 통해 사법권을 사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입법부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같이 헌법기관을 사찰해 약점을 잡고, 뒤로는 협박하고 공작정치를 벌인 행위는 우리 정치 수준을 30~40년 뒤로 후퇴시킨 부끄러운 정치 행태”라고 꼬집었다.
"사법부 약한 모습이 공작정치 불러" 비판도
서 전 센터장은 다만, 사법부도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까지 보수정권 하에서 사법부가 대통령이나 정치권력에 대해 약한 모습을 보여서 정권이 공작정치 비슷한 행태를 거리낌 없이 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사법부 독립이라는 것도 스스로 지켜야지. 누가 지켜주기 바라는 거 말이 안 된다. 사법부도 사실 스스로 재판의 독립 지키기 위해 강단 있는 자세를 내부적으로 갖추는 게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이 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또 “사법부가 그동안 대통령이라는 행정권력에 대해 굉장히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이 사실”이라며 “행정권력의 잘못된 점을 사법부가 올바로 법과 원칙에 따라 바로 잡아야 하는 역할 해야 되는데 그런 역할 못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다보니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에서 사법부를 더 얕잡아 보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며 “사법부도 반성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전 센터장은 이어 “앞으로 우리 정치 하에서 이런 일 다시 벌어져서는 안 된다”며 “민주공화국 되려면 권력기관이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는 균형체계가 잘 갖춰져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최 전 법원장에 대한 사찰 내용에서 언급된 소설가 이외수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청와대에서 이외수를 사찰했다는 사실이 이번 청문회에서 밝혀졌다”며 “국민들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괴롭히느라 참 수고들 많다”고 꼬집었다. 이어 “나랏일들이나 제대로 좀 하시잖고. 아무튼 분노를 금할 길이 없습니다. 써글”이라고 말했다.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조병구 공보관이 청와대의 양승태 대법관 등 사법부 사찰 관련 의혹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홍연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