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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벌거벗은 공주님'의 '동물의 왕국'
입력 : 2016-08-22 오전 6:00:00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덥다. 독하게 덥다. 뉴스를 보면 더욱 덥다. 기상청은 며칠만 지나면 더위가 꺾인다며 지친 시민들을 달래려 하나, 야속한 더위는 쉽게 물러날 기미가 없다. 결국 라니냐와 무더위를 물리치는 건 기상청과 슈퍼컴퓨터가 아니라 지구의 공전과 우주의 섭리뿐이다. 누추하긴 야당도 마찬가지다. 총선에 이겨 감사하니 조금만 기다리라더니, 야당들이 일구어낸 시원한 소식은 아무리 기다려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니 더위가 쉽게 꺾이지 않는 것처럼 정권도 여전히 변할 마음이 없다. 방송 프로그램 중엔 동물의 왕국을 가장 좋아했다는 대통령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배신을 하지 않는 생물만을 지키고 챙기느라 여념이 없다.
 
줄어든 초청인원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오찬에 참석한 노구의 독립투사는 샥스핀과 송로버섯이 없는 식사를 앞에 두고 건국절의 반역사성을 호소했다. 하지만 건국절은 보란듯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 등장하고, ‘헬조선을 한탄하던 개돼지들은 자긍심을 갖고 한강의 기적을 감상하라는 질타를 들어야 했다.
 
예전부터 집주인이 마련한 식단은 손님을 향한 마음과 무관하지 않았다. 얼마나 기특하고 좋았으면 평소와 달리 메뉴까지 공개하여 이 사달을 일으켰을까. 얼마나 껄끄럽고 싫었으면 아흔이 넘는 독립투사의 충언에도 경축사에 기어이 건국절과 하얼빈을 넣었을까.
 
천황폐하만세를 외친 기관장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대한독립만세로 이어진 건국은 이승만의 뜻과도 달리 30년을 잃었다. 그러니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을 떠나 다시 차가운 하얼빈 감옥으로 돌아가 이등박문 대신 순국하는 처지가 되었다. 오만하고 무지한 권력의 반역사성과 무개념에 대한 질타는 애꿎은 설현과 티파니에게만 돌아간다. 다들 더위를 먹은 탓일까.
 
현장까지 찾아나선 그 분의 뜻대로 정리된 여당 지도부와의 오찬에는 금준미주와 옥반가효가 넘치는데, 대통령이 없어진 7시간으로 차가운 바다에 아이를 묻은 예은이 아빠는 정부와 국회의 어떤 응답도 받지 못한 채 사생결단식에 돌입해야만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살아가며 말하고 즐기는 모든 것은 자신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그러니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는 권력자를 예사로이 넘길 수 없다. 그가 꿈꾸는 나라는 이제 아버지의 나라를 넘어 동물의 왕국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를 운운한 자는 색출되지 않았다. 배신하지 않는 동물의 왕국만을 지켜내려는 우리의 대통령은 어떻게든 선거에서 이기고, 어떻게든 총신들을 지켜내기 위해 국기문란카드를 어김없이 꺼내든다.
 
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시켜 국기문란을 일으킨 당사자들은 대선승리의 공신일 뿐, 후대를 위해 열심히 기록을 만든 이들만 피고인이 되었다. 정보기관의 선거운동을 처벌하려던 검찰총장은 개인정보의 유출로 낙마시키고, 국정을 농단한 십상시들을 조사하거나 권력을 남용한 민정수석을 감찰한 것은 어김없이 기밀유출의 국기문란으로 규정되었다. 십상시가 우병우로 바뀌고 조응천이 이석수로 바뀌는 장면을 지켜보는 시민들은 지겹도록 더울 수밖에 없다.
 
백 벌이 넘는 옷을 맞춘 벌거벗은 공주님을 숭상하는 동물의 왕국에서, 어떻게든 무더위를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시민들은 개돼지로 남았다. 생전 처음 송로버섯을 알게 된 것도 어리둥절한데, 오바마는 왜 샥스핀이 메뉴판에 있는 식당을 갔다는 이유만으로 사과해야 했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
 
충직한 신하라면 그저 '고난을 벗삼고 진실을 등대삼아' 물러나면 안 된다. 권력자를 '고난'으로 모는 비판자들과, 권력자가 옳다고 믿는 '진실'을 부정하는 배신자들을 응징하는데 앞장서면 그뿐이다.
 
어느덧 정부는 대통령의 지시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게 되었다. 어떤 공무원도 혹한에 떠는 어린이 합창단에게 외투를 못 입히고, 해경은 300명이 넘는 승객들의 구조보다 보고용 동영상을 찍는 게 급한 나라가 되었다. 토론하는 장관은 도태되고 받아쓰기를 잘하는 이가 장수하는 적자생존의 현장에서, 안중근 의사는 다시 하얼빈을 거쳐 홍구공원으로 갈지도 모를 일이다.
 
삼복염천이 아무리 대단해도 가을을 이길 재주는 없다. 걸핏하면 국기문란을 내세우는 저 동물의 왕국도 깨어난 시민을 이겨낼 수는 없다. 진실이 길가에 버려지면 권력도 거리에 나뒹굴게 되는 법, 벌거벗은 공주님은 이제 눈과 귀마저 멀어버린 것일까.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최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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