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세계문자연구소가 개최하는 세계인의 문자축제 '세계문자심포지아 2015-가가호호 문자'가 오는 16일부터 25일까지 10일 간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일대에서 열린다. 세계문자연구소는 문화 다양성의 핵심인 언어문자생태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설립한 단체로, 지난해부터 '세계문자심포지아'라는 행사를 열며 본격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올해 심포지아에 대해 자세히 묻고자 임옥상(66) 화백을 찾았다. 세계문자연구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임옥상 화백은 이번 행사의 총감독이기도 하다. 임옥상 화백의 거처인 '청운재'라는 이름의 집을 찾기 위해 서울 종로구 청운동 골목을 1시간여 동안이나 헤맸다. 언덕배기 제일 위쪽에 위치한 이곳은 임옥상미술연구소이자 임옥상 화백의 작업실, 그리고 세계문자연구소의 아지트로도 활용되고 있는 곳이다. 미로 같기만 한 옛 골목이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지만 자꾸 걷다 보니 정겨운 풍경으로 다가왔다. 바로 옆 동네 통의동 골목길에서 열릴 '세계문자심포지아 2015-가가호호 문자' 행사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 싶다. 우여곡절 끝에 만난 임옥상 화백에게 행사의 이모저모와 근황에 대해 들어봤다.
(사진제공=임옥상미술연구소)
지난해 세계문자연구소에서 '세계문자심포지아' 첫 회를 개최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들었다. 만족도는 어땠나.
큰 행사였다. 내가 체감하고 느끼고 판단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 같다. 그림을 그리거나 설치작품을 하거나 할 때는 장악력이 다르다. 작업할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다 나의 자장권에 들어오는데 이건 그렇지 않다. (축제와 학술행사 등으로) 확장을 하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매우 보람을 느꼈다. 힘들었지만 시작은 잘했구나 싶었다. 주위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해주시더라.
화가로서 널리 알려진 분이 세계문자연구소 공동대표까지 맡고 있는 게 신기하다. 얼핏 보기에는 '화가가 글자와 관련된 일을 한다'는 게 신기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선입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처음부터 나의 관심사는 뭐였냐면… 문자가 나의 예술적 욕구랄까,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그런 매력적인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더라. 형태도 그렇다. 생각해보면 장구한 시간과 여러 공간 속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문자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그게 소통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런 걸 상상하면 흥미롭다. 상상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그냥 턱없이 하는 게 아니다. '건덕지'가 있어야 상상을 할 수 있는데 문자를 상상하면 그런 건덕지가 너무 많다. 끝없이 시간과 공간 속을 이동할 수 있다. 문명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지만 시간과 공간에 대한 하나의 결정체라고도 볼 수 있다.
화가로서 가장 호기심이 가는 문자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모든 문자는 형태 상으로도 멋있지만 그게 또 나름의 질서가 있다. 모든 문자는 모아놓고 보면 수미일관성, 통일성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우열을 가른다는 것은 사실 말이 안된다. 세계문자연구소에서 하고자 하는 것도 문자의 형평성, 다양성을 추구하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접한 문자가 사실상 세상의 모든 문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많이 접했던 것은 한자인데, 한자의 변천사가 바로 미학의 변천사고, 형태의 변천사라는 생각이 든다. 이집트 상형 문자도 기억에 남는다. 이집트 상형 문자를 2차원의 사진으로 보는 것과 이집트에 가서 실제 보는 것은 다르다. 새겨져 있는 그 글자는, 그건 뭐… 완벽하다. 사진은 요철이 있다 하더라도 그걸 다 표현하지 못하는데 실제로 거대한 돌에 새겨진 것을 보니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랍 글자도 빼놓을 수 없다. 한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긴 하지만 세로로 쓴다. 근데 아랍글자는 횡서로 쓰기 때문에 붓놀림의 차원이 다르다. 오히려 한자의 초서보다도 더 깊은 예술적 경지가 느껴진다.
(사진제공=임옥상미술연구소)
심포지아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보자. 주요 행사로 '가가호호 문자체험'이라는 체험행사가 열린다. 그 의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달라.
'가가호호'라고 하면 어디까지나 나는 점처럼 느껴진다. 점들을 연결하면 선이 되고, 이게 골목하고도 크게 다르지 않는데… 제일 처음에 관심을 가진 것은 마치 신경망 같은, 도시의 최소 단위로서의 골목이었다. 골목은 피가 흐르고 신경이 흐르듯 계속 흐른다. 작은 흐름들이 모여 큰 개천이 되고 더 나아가면 강이 되고 하는 걸 생각하면서 우리가 결과만 가지고 볼 게 아니라 이 작은 흐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가가호호 들여다 보면 그 속에 가정이 있고, 개인의 삶이 있고,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하지 않나.
종래의 전시장, 행사장이라고 하면 인위적으로 무대나 미장센을 마련해놓고 거기에 뭘 올리는 식으로 진행되고는 한다. 이번 행사는 그게 아니라 삶의 공간으로 들어가서 그 공간 자체가 전시장이 될 수 있고 미장센이 될 수 있도록 풀어보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장소특정적인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진 거다. 작가로서 제일 힘들게 느껴지는 전시가 중성적 공간, 무성격의 공간에 작품을 갖다 놓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무균 상태의 곳에 뭔가를 놓고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러면 오는 사람들도 전부 무균 상태로 들어온다. 점잖게(웃음). 나는 마치 그곳에서 예술을 잉태해야 하는 것 같은 압박을 받는다(웃음). 그런 게 제일 싫은데 이번에 행사를 여는 종로구 통의동 일대는 사람이 있고, 색깔도 있고, 건물도 있고, 여러가지가 다 있으니 그 속에서 이야기도 바로 나오고, 자극도 되고, 피드백이 맹렬하게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장소특정적인 것을 생각하면서 골목을 염두에 뒀다.
전시 공간의 범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고궁박물관이 여기 있고, 경복궁역 3번 출구가 이쪽이다. 이 사이 공간에서부터 시작해서 청와대 쪽으로 꺾다보면 검문소가 있는데 바로 여기 직전 골목까지가 대략적인 범위다. 간선도로에서부터 골목으로 파고 들어가 점점 더 약해지는 식으로 행사장을 꾸릴 예정이다.
지역을 고르러 다닌 것인가.
그렇기도 했지만 서촌지역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도 하고, 또 고궁 바로 건너편에 '준수방'이라고 세종대왕께서 이쪽 어디에 살면서 한글 창제와 관련된 활동을 했다고 한다. 이곳이 한글 창제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지역이라는 게 밝혀지고 있는데 그곳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 점도 여기를 행사 공간으로 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세계문자심포지아'라는 행사를 하는데 있어서 역시 히든 카드는 한글이다. 한글 속에 품에 안겨 우리가 살고 있고, 대놓고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지만 매우 자부심을 갖고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문자에 대한 관심도 가질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진제공=임옥상미술연구소)
예술축제 외에 학술대회는 어떻게 꾸려지나?
학술대회에서는 우리가 지난해 첫 해 비엔날레를 했는데 내년까지 가는 데 검토해야 할 것이 많지 않느냐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래서 아카이브도 만들고 지난 것도 반성하는 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문자의 세계, 되돌아보기와 내다보기'라는 주제로 학술 담당자분들이 맡아 꾸린다.
작품창작, 세계문자심포지아 공동대표 외에도 여러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근황에 대해 알려달라.
('청운재'를 돌아보며) 여기가 원래 다 잔디밭이었다. 쉽게 얘기하면 너무나 삭막한 우리 사회에 예술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이를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좀더 나은 세상을 꿈꾸지 않는 예술가라면 문제가 좀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로서 살아보니 세상이 녹록치가 않더라. 예술가로 이름은 얻었고, 작품도 비싸게 팔리지만 그걸로 끝이지 세상에 뭐가 변화가 생기나. 자본의 먹잇감 내지는 노리개로 취급되는 게 아니냐 하는 자조적인 생각도 들었다. 이 자본주의 사회,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인간성이 파괴되고 윤리 도덕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도시라는 공간이 왜 이렇게 되어 가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생명력이 고갈되는 사회 속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이고 도구일 수 밖에 없다. 생명을 사람들로 하여금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실천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보니 농업이 눈에 띄게 됐다.
들어오다 보니 집 앞에 여러가지 작물이 심겨져 있더라.
나도 몸소 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해야겠다 싶어서 '흙과 도시'라는 사단법인을 주윗분들과 함께 만들고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결국 생명력은 흙이다, 도시에서 흙을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 해서 '흙과 도시'라는 사단법인을 만들고 도시농업 운동을 지금 하고 있다, 한편(웃음).
그리고 공공미술 쪽에서도 작업하고 있다. 거두절미하고 편하게 분류해 개인적인 미술과 공적인 미술이 있다고 치자. 공적인 미술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개인적인 미술은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미술작업들이다. 그런데 개인적인 미술은 너무 쉽게 빨리 자본에 노출돼서 자본의 노리개나 타깃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상품으로서의 미술, 팔리고 사는 흐름 속에서 춤 추는 미술이 아니라 만인이 즐기고 사랑하고 또 많이들 해낼 수 있는 어떤 미술이 될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당신도 예술가' 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작업했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이지 뭐, 누가 예술가이겠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나 사건이 있었나?
IMF였다. 전속작가로 요람 속에서 행복하게 지내다가 IMF 때 떨려져 나갔다. 대학도 그만 두고 나왔는데 또 다시 대학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야, 이런 전혀 생각지 않은 위기가 왔는데 이때 난 뭘 할 것인가' 생각했다. 그래서 그때 저자거리로 나갔다. 사람들이랑 같이 놀려고. 처음에는 건방진 생각으로 'IMF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자' 싶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밖으로 나가서 작품도 만들고 일을 했다. 사람들이랑 그림을 갖고 놀았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그 일을 한 4년 하면서 그 속에서 반대급부로 많은 공부를 하게 됐다. 그 시기가 어려웠지만 나한테는 정말 행복한 시기였다. 미술하고 관계 없는 사람들하고 그림을 그렸으니… 그 전에는 전시장에 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우아하게 작업했는데(웃음). '세상의 모든 재료, 모든 일, 모든 사건이 예술과 무관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다. 뭐든 같이 행위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같이 지지고 볶고 놀았다. 그때까지는 공공미술이라는 개념을 내가 갖고 있지 않았다. 근데 4년 정도 하면서 공공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공공미술이라는 게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제 나름대로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게 됐다.
'세계문자심포지아' 같은 활동도 그 연장선 상으로 보면 되나.
그렇게 보면 된다. 그 때 그런 체험이 없었으면 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세계문자심포지아'에 오실 관람객들께 한 말씀 부탁드린다.
일단 문화예술이라고 하면, 특히 예술로 넘어가면 주눅부터 드시는데 그건 과거의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일부 천재가 뛰어난 역량으로 하는 것이 예술이고 일반 사람들은 범접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관객의 수족을 잘라내면서 아주 수동적인 관객을 만들어놨다. 나는 그건 정말 잘못됐다고 본다. 구경꾼으로서 대중을 생각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모든 에너지와 활력은 대중으로부터 나오고 모든 개인이 그런 부분에 있어 가장 최후의 보루, 보배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가 스스로를 구경꾼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 나도 할 수 있겠구나. 그래 나도 좀 해보자.' 당장 그럴 수는 없겠지만 이런 행사들을 통해서 스스로 뭔가를 도모할 수 있는 그런 계기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 자신이 창의적 활동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또한 남들을 인정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다. '아, 세상은 참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모두가 다 나처럼 존중받아 마땅하고, 나하고 친구가 되어야 마땅한 그런 세상이구나' 하는 식의 보이지 않는 유대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낯설다고 해서 포기하지 마시고 들여다 보셨으면 좋겠다. 우리가 성찬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애정을 가지고 보시면 뜯어보실 만한 것들이 꽤 있을 거다. 공간을 나름대로 잘 쓰려 했기 때문에 카탈로그 같은 것들을 참조해 찾아다니면서 보시면 재미가 쏠쏠 하실 거다.
또 이어령 선생님이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기조발제를 해주시는데 정말 주옥 같은 말씀을 하신다. 학술대회를 준비하는 분들을 만나 대화하다 보니까 그것 역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행사가 되겠더라. 일본 같은 경우를 보면 세미나를 하면 돈을 내고 와서들 다 듣는다. 일본에서 그걸 보면서 너무 부끄럽고 또 부러웠다. 우리는 세미나를 시작하고 사진 찍고 하고나면 다 도망간다. 공짜인데도 세미나를 듣는 사람이 별로 없다. 문맹률은 굉장히 낮은데 실질 문맹률 면에서 보면 엄청나게 문맹인 국가다. 사치품처럼 진행되는 인문학 강의 열풍에 휩쓸리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정말 찾고, 탐구하고, 스스로 도모하고, 뭔가를 만들어내는 그런 사회 분위기 조성에 일조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