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1일 정부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양해서(Statement of Understanding: SoU)에 서명했다. 바로 아시아 펀드패스포트(Asia Region Funds Passport: ARFP)이다. 펀드패스포트는 펀드의 상품 출시나 운용 등에 대한 공통된 규범을 마련하고 회원국 간 간소화된 절차를 통해 펀드 교차판매를 허용하는 제도이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이번 양해서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일본, 호주, 뉴질랜드, 태국, 필리핀 등 6개국에서 서명했다. 2010년 9월 호주에서 아시아 지역 내 단일 펀드시장을 창설하자는 의견을 최초로 제시했으며 2013년 9월 우리나라,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 4개국이 의향서에 서명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는 양해서에 서명하지는 않았으나 펀드 패스포트에 대한 논의는 지속적으로 참여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운용자 요건, 감독권한 등을 규율하는 공통규범안을 마련했으며 이러한 세부규정이 포함된 양해각서(Memorandum of Cooperation: MoC)를 체결하게 되면 빠르면 2016년부터 아시아 펀드패스포트가 출범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는 아시아 펀드패스포트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지만, 자산운용시장에서는 존립의 문제와 직결되는 매우 큰 변화이다. 특히, 호주나 뉴질랜드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산운용시장이 낙후돼 있는 아시아 펀드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만든 제도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 펀드시장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GDP 대비 펀드시장의 비중을 보면 호주가 124%, 싱가포르와 홍콩이 각각 475%, 417%를 기록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21%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해외 자산운용사들이 우수한 운용역량과 상품 경쟁력을 기반으로 진출할 경우 국내 자산운용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높다.
2015년 8월말 현재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펀드(공모, 단기금융, 파생상품)의 시장점유율은 12%에 불과하나 펀드패스포트가 도입되면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국내 자산운용시장이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다. 투자대상이 되는 해외 펀드 종류가 다양화되면서 금융소비자 관점에서 투자 기회가 확대될 뿐만 아니라 역으로 동남아 또는 호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회원국으로 가입할 가능성이 높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등과 같은 아시아 시장의 진출을 고려한다면 국내 자산운용사의 글로벌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면 국내 자산운용업계는 펀드패스포트 가입에 대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최우선적으로 운용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핵심 역량은 결국 전문성을 가진 인력에 있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다양한 정보를 분석해 펀드의 장기운용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인력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자체적으로 전문가를 육성함과 동시에 해외 전문 인력을 유치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둘째, 펀드 상품개발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펀드 종류도 중요하지만 대표 펀드상품을 브랜드화하여 판매할 수 있어야 한다. 54개 운용사가 운영 중인 펀드 수는 3615개로 많을 뿐만 아니라 소형 펀드의 비중이 높다는 점은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문제이다.
셋째, 국내에서 대형 운용사를 육성하거나 싱가포르 등 선진국 자산운용사를 인수해 대형화를 추진함과 동시에 특정 영역에서 경쟁우위를 가진 중소형 특화 운용사도 육성해야 한다. 대내적으로는 선진국 운용사의 진출에 대응해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동남아시아로의 진출을 생각한다면 대형 운용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아시아에서의 최고 자산운용사를 육성해야 한다. 국내에서의 1등이 해외에서도 1등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중소형 운용사들은 지금부터라도 강점이 될 수 있는 틈새시장을 발굴해 펀드패스포트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펀드패스포트의 본격적인 시행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그동안 관련 규제를 미리 정비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공통규범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으나 국내적으로 자본시장법 등 제도개선은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
아시아 펀드패스포트 가입은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위협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우리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것이다. 정부와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아시아 펀드패스포트를 통해 국내 자산운용시장을 질적·양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정희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