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남쪽 영광으로 떠난다. 햇볕 속에서 바람 한 자락이 불었다. 시절의 영화를 기억하는 법성포 골목에 양명한 햇기운을 받은 굴비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불갑산 상사화 피는 언덕에서 스님이 말했다. 사랑은 기도와 같다고. 햇빛과 바람, 그리고 짭쪼롬한 소금기가 배어 있는 이 땅의 서정은 삶을 견딜 만큼만 붉다. 갯마을 새악시의 붉은 댕기는 칠산도 앞바다의 노을과 잘도 어울린다. 붉은 해가 지고나면 월령대 위로 달이 차오르고 법성포 다랑가지(多浪佳地)에 파도가 일렁인다. 햇살과 바람, 갯마을 새악시의 가슴 일렁임이 이 땅의 풍토와 인심을 빚어낸 셈이다. 가을날 남도의 햇살을 밟으며 걷는다.
백제 불교의 최초 도래지인 법성포의 불교유적을 천천히 둘러보고, 여름 끝부터 불갑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상사화의 흐드러진 자태도 살펴 볼 심사다. 서해의 낙조로 아름다운 백수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니, 이 땅에 삶터를 꾸린 이들이 칠산바다에서 부르던 풍요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영광(사진=이강)
법성포와 칠산바다의 옛 이야기를 따라
영광에는 구석구석 다양한 문화유산이 숨어있다. 첫걸음은 법성포의 백제불교최초도래지다. 법성포가 백제불교최초도래지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법(法)은 불교를, 성(聖)은 성인인 마라난타를 뜻한다. 즉, '법을 전달하러 성인이 온 포구'라는 뜻이다. 백제 침류왕 때 인도승려 마라난타가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첫발을 내딛은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마라난타가 백제 땅으로 건너온 사실이 기록돼 있는데, '9월에 인도승려 마라난타가 진나라에서 들어오매 왕이 그를 맞아 궁에 두고 예경하니 불법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때 지어진 것으로 추측하는 고찰 불갑사는 모악산 자락에 여전하다.
먼저 법성포 진내리 일대에 '백제불교문화최초도래지'를 둘러본다. 최초의 이름을 건 문화유적이 다양하게 조성되어 있다. 간다라 시대의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간다라유물관, 부용루, 탑원, 4면대불 등 백제불교문화의 원형을 살펴볼 만하다.
백제불교문화 최초도래지(사진=이강)
잠시 둘러보고 비릿한 갯내음을 따라 법성포 다랑가지 굴비거리로 길을 잡는다. 법성포는 서해바다가 육지 안쪽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는데, 다랑가지라 불렸다. 반달 모양의 곶을 부르는 말로, 달랑곶이, 다랑고지, 다랑가지 등으로 변천됐을 것으로 짐작한다. 추석대목이 가까워진 포구는 정신없이 부산하다. 굴비모양의 조형물이 눈길을 끌고, 굴비 가게와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법성포는 조선시대 말까지 호남 제일의 포구로 수많은 물산과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던 호남 최대의 해상물류기지였다. 조선말까지 포구에는 곡식과 특산물을 거둬들여 한양으로 보내는 조창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조기 말리는 덕석 수백 개가 포구를 가득 메웠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영광은 조선시대까지 '옥당골'이라 불렸다. 당시 '아들을 낳아 원님으로 보내려면 옥당골로 보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일제를 거치며 해상운송이 약화되고 철도를 기반으로 한 내륙운송이 발달하면서 한 때의 명성은 사라졌다.
법성포 굴비거리의 굴비(사진=이강)
법성포가 한동안 쇠락의 길을 접어들 무렵, 영광의 영화를 다시 되살린 것이 바로 굴비다. 굴비(屈非)는 한자 그대로 '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려 인종 때 왕위를 찬탈하려고 반란을 일으킨 이자겸이 이곳으로 유배를 온 후, 조기를 먹어보고 그 맛이 좋아 임금을 잊지 못하고 진상했다. 그러나 '귀양살이 신세이긴 하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뜻으로 '굴비(屈非)'라고 적어 보냈다고 하여 여태까지 그렇게 불리어지고 있다.
해방 이후에도 법성포는 봄철이면 칠산 앞바다에서부터 북상하는 조기 떼를 쫓는 배들이 포구를 가득 메웠다. 선원들은 포구에 머물며 뱃일에 필요한 장구와 식량, 생필품을 꾸리기도 하고, 만선을 이룬 배들이 칠산 앞바다에서 파시를 열기도 했다. '돈 실러 가세. 돈 실러 가세. 영광 법성으로 돈 실러 가세'라며 출정의 노래를 부르던 선원들의 희망가가 포구에 가득 울려퍼지곤 했다.
백수해안도로따라 노을전시관까지
법성포 굴비거리를 빠져나와 불갑사로 향한다. 불갑사는 고승 마라난타가 모악산 기슭에 세웠다는 설이 유력하다. 불갑산으로 드는 길목, 가로수 아래에는 붉은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난다. 여름의 끝에서 가을 사이에 피어나는 상사화다. 상사화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 꽃말로 유명세를 타는 꽃이다. 잎과 꽃이 함께 피어나지 못하고 잎이 다 떨어진 후에야 꽃대가 올라옴을 비유한 데서 유래되었다. 누군가를 홀로 지독하게 사랑하다 이루지 못한 이를 위해 무덤가에 피는 꽃이 바로 상사화라는 전설도 내려온다. 천천히 불갑사로 드니, 길을 따라 온통 상사화의 붉은 빛이 지천이다. 고려 말에는 500여 칸의 대규모 절을 이었으나, 정유재란 때 모두 불탄 후에는 선조 31년(1598)에 중수되어 지금에 이른다. 경내에는 꽃창살이 아름다운 대웅전과 만세루, 명부전, 일광당, 요사채가 자리하고, 절 뒤로 참식나무 군락이 푸르르다. 보물 제830호인 대웅전의 화려함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역시 꽃문살의 문양이다. 연꽃과 국화꽃들이 법당의 팔작지붕을 받치는 있는 품이다. 대웅전 용마루 위의 도깨비 얼굴 모양 기와와 입 큰 거북이가 웃음을 짓고 있는 각진국사 부도비를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
백수해안도로 노을전망대(사진=이강)
이제 백수해안도로를 따라 설도항까지 길을 잡는다. 젓갈로 유명한 설도항과 너른 지평선이 끝없이 이어지는 염산 염전의 풍경이 드넓게 펼쳐진다. 설도항은 소박한 포구다. 부둣가에 갯어미들이 황석어젓, 멸치젓, 짜랭이젓(병치새끼젓), 갈치속젓, 까나리액젓 등 다양한 젓갈을 내어놓고 손님을 불러 세운다. 한국전쟁 당시 196명의 기독교 신자가 수장 당한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순교기념탑이 자리하고 있고, 야월교회 앞에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설도항을 지나면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 너른 들이 펼쳐지고 이내 바둑판 같은 염전들이 나타난다. 운이 좋으면, 볕이 쏟아지는 소금밭에서 한 판 춤사위를 펼치는 염부를 만날 지도 모른다. 차창 밖 풍경을 만끽하며 백수해안도로를 따라 노을전망대까지 달린다. 백수해안도로는 원불교 영산성지에서 백암리 동백마을까지 18㎞의 해안도로를 일컫는다.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로, 영광군 최고의 드라이브코스다. 짙은 황해바다와 끝없이 드넓은 갯벌풍경이 아름다워 '한국의 아름다운 길' 중 한 곳으로 손꼽힌다. 어디서건 차를 세워도 멀리 칠산 바다의 풍경과 드넓은 갯벌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영광의 갯벌은 세계 5대 갯벌이다. 여름이면 영광갯벌 축제가 열리고 10월이면 백수해안도로 노을축제가 열린다. 백수해안도로의 백미는 바로 일몰이다. 해안선을 따라 거북바위, 모자바위, 고두섬 등 기묘한 바위들을 배경으로 붉은 노을이 장관을 이룬다. 환상적인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노을전시관(061-350-5600)은 사진작가들뿐 아니라 젊은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장소로 인기가 높다. 일몰을 바라보며 여행의 노독을 풀기에는 인근의 영광해수온천랜드가 좋다. 온천을 즐기며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