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은 젊어진다는 청춘의 땅, 양구로 간다. 탕진된 여름의 시간 동안 바쁘게 하늘이 스쳐 지나 가고 말았다. 가을로 드는 길목에 호젓한 여행이 그리워, 좀 걷고 싶어 양구로 간다. 양구는 이제 서울과 한걸음이다. 배후령 터널이 개통된 이후 양구로 가는 길이 한결 단축됐다.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춘천에 내려 버스를 갈아타도 되고, 단번에 버스를 타도 2시간 30분 남짓이면 양구에 닿는다. 예전에야 양구까지 가는 길은 구절양장이어서 길이 험하고도 지루한, 먼 길이었다. 하지만 이제 양구는 '한반도의 북쪽 오지'에서 '한반도의 정중앙'으로 이미지를 바꿨다. 깊은 숲길을 걸으며 정신이 맑아진다면, 10년 젊어진다는 것이 농이 아닐 것이다.
양구는 대한민국 배꼽의 자리에 있다. 한반도의 정중앙에 있는 곳으로, 남북 분단 이후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경관이 살아있는 천혜의 보고이다. 한반도의 배꼽을 상징하는 파라호의 한반도섬을 둘러보고, 양구의 비경을 대표하는 두타연과 남북 분단의 아픔이 서려있는 펀치볼과 을지전망대, 희귀식물이 잘 보전되고 있는 양구생태식물원까지 둘러볼 요량이다. 양구는 서울에서 동쪽으로 132km, 춘천에서 52km의 거리에 위치한다.
금강산으로 드는 첫 고을, 양구
양구와 춘천, 화천은 물의 도시라 일컫는데, 아름다운 호반의 풍경이 펼쳐지는 강변길을 따라 달리면 소양호를 지나 파로호가 이어진다. 양구로 들어 먼저 한반도의 배꼽을 상징하는 파로호 인공습지와 국토정중앙천문대를 둘러볼 셈이다. 본래 양구(楊口)라는 이름자에는 버드나무 입구라는 뜻이 담겨 있다. 조선 선조25년(1592년)에 양구로 부임한 감사가 양구의 수양수림을 보고 금강산에 이르는 첫 고을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 예전에는 아름드리 수양수림(垂楊樹林)이 빽빽하게 들어찬 양구로 길을 잡아 금강산을 오르내렸다고 전해진다. 금강산으로 드는 첫 고을로 한반도 남쪽과 북쪽의 관문이자 통로를 상징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가 반으로 갈라지면서 양구의 기능은 휴전선 접경지대로서만, 남북의 경계지역으로만 존재하여 왔다. 그렇게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양구에는 사람이 발길이 줄어들었고, 소양호와 파로호와 같은 인공호수가 들어서면서부터는 아예 아무도 찾지 않는 섬처럼 고립무원의 땅이 되었다.
파로호 습지공원(사진=이강)
그러나 최근 들어 양구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국토의 정중앙이라는 명성을 되찾고, 잘 보전된 자연환경의 덕택으로 청정자연의 보고라 불리게 되며 찾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2년 인공위성을 통해 정밀 측정을 한 결과, 양구군 남면 도촌리 산48번지가 대한민국의 정중앙임이 밝혀졌다. 또 몇 해 전 교통사정이 좋아지면서 수도권 지역과의 접근성을 확보했다. 양구 사람들은 그간의 갑갑한 속내를 털어내고, 아예 "양구에 오면 10년이 젊어진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때 묻지 않은 청정 양구, 청춘 양구의 이름으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한반도섬이 조성되어 있다는 파로호로 달린다. 전망대에 오르니 비가 그친 후 물안개가 그려내는 풍경이 마치 한 편의 수묵화만 같다. 파로호 습지보전지구의 넓은 호수의 한가운데에 한반도 지형의 모양을 본 뜬 한반도섬이 떠있다. 국토 정중앙의 상징이다. 인공습지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고, 섬까지는 나무 테크길로 연결이 되어있다. 강변의 바람을 맞으며 걷다보면 기분이 상쾌해진다. 남면에 위치한 국토정중앙천문대으로 걸음을 옮긴다. 청정한 양구의 밤하늘을 보는 재미로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의 발길이 늘어나고 있는 곳이다.
청춘 양구의 숨은 비경을 찾아
국토의 정중앙점을 확인하고,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양구의 비경을 찾아 나선다. 첫 걸음은 양구 제1경으로 알려진 두타연이다. 두타연은 방산면 건솔리 수입천의 지류로 유수량은 많지 않으나, 주위의 산세가 아름다워 트래킹을 즐기는 이들의 발걸음이 잦은 곳이다. 양구의 대표적인 생태관광벨트로 수입천, 파로호, 10년 장생길, 평화누리길, 소지섭길 등의 산책로와 생태탐방로에 연결되어 있다. 휴전 이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면서 원시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빼곡한 산숲길을 따르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길이 이어지고, 두타연 폭포의 절경을 마주할 수 있다. 사람의 발길이 들지 않는 청정자연은 마치 원시림처럼 신비하고 고요하다. 두타연은 천연기념물인 열목어의 국내 최대서식지로 잘 알려져 있다. 두타교를 지나 소지섭길이란 이정표를 따르면 배우 소지섭의 사진작업 흔적이 남아있는 두타연 소지섭갤러리가 나타난다. 대표적인 한류스타인 소지섭의 영향으로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필수코스다. 잠시 작품을 둘러보고 양구 제 2경인 펀치볼로 향한다.
두타연(사진=이강)
펀치볼을 한 눈에 내려다보기 위해서는 을지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을지전망대는 군사분계선으로부터 약 1㎞ 남쪽지점 해안분지를 이루고 있는 가칠봉의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전망대에 오르니 탁 트인 시야로 펀치볼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펀치볼은 한국전쟁 때 지어진 이름으로 당시 외국인 종군기자가 가칠봉(1242m)에서 발 아래를 내려다 보고, 화채 그릇(Punch Bowl)처럼 생겼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인근의 제 4땅굴까지 둘러보고 양구를 대표하는 파로호로 발걸음을 잡는다.
펀치볼(사진=이강)
파로호(破虜湖)는 대한민국 최북단에 위치하는 인공호수다. 1944년 5월에 화천댐이 건설되면서 만들어진 인공 호수다. 면적은 38.9km²로 10억 톤의 물을 담을 수 있는 규모다. 파로호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 수만명이 수장된 곳이라 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라고 명명하였다. 8·15광복 직후에는 38선에 의해 막혀 있었으나 6·25전쟁 때 수복한 지역이다. 잉어·붕어·메기·쏘가리 등 담수어가 풍부해 낚시광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명소다. 양구의 제 7경인 후곡약수터에 잠시 들러 목을 축이고 양구생태식물원으로 길을 잡는다. 후곡약수는 철분과 불소, 탄산가스를 함유해 위장병과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 말기에 한 농부가 한우를 방목했는데 위장병을 앓던 소가 물을 먹고 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도 주민들은 약수의 효험을 믿고 있다. 이제 양구생태식물원으로 향한다. 식물원은 휴전선 인근 남한 최북단의 산인 대암산 470고지의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남북한 생태계 복원센터로 육성하기 위해 전체 면적 18만 9141㎡의 너른 부지에 북방계 식물 및 희귀식물 군락을 조성하였다. 숲배움터와 숲놀이터, 숲맑은터의 3가지 테마로 조성되어 있으며, 숲길을 산책하며 야생화를 관찰할 수 있도록 하였다. 노천극장, 우주과학놀이터, 피크닉광장은 가족소풍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양구에는 이 밖에도 양구백자박물관, 이해인 시문학과 김형석·안병욱 철학의 집, 평화의 댐, 소양호, 박수근미술관, 고대리 지석묘군 등 숨겨진 명소가 즐비하다.
이강 여행작가,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