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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돈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연극 '조치원 해문이'
입력 : 2015-09-07 오전 10:22:24
지금, 여기 한국에 만약 셰익스피어 희곡 '햄릿' 속 인물들이 살고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왕이라는 절대 권력이 없어진 시대, 그 권좌를 차지한는 것은 이제 돈입니다. 이철희 작가가 쓴 희곡 '조치원 해문이'는 덴마크 한 왕족의 비극을 그린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오늘날 우리 이야기로 바꿔놓은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일대가 세종특별자치시로 변경되던 2012년의 혼란기를 그립니다.
 
(사진제공=극단 그린피그)
 
돈이 돈을 버는 세상, 남의 것을 빼앗지 않으면 자기 것도 빼앗기기 십상인 세상이지요. '조치원 해문이' 속 갈등의 핵심 역시 바로 이 돈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속에서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 햄릿의 숙부인 클로디어스를 중심으로 뻗어나갔었지요. '조치원 해문이' 속에서는 이 욕망이 해문이 숙부인 '이만국'의 돈에 대한 욕망으로 대체됐습니다. 이 밖에 우유부단한 햄릿은 37세 청년백수 '해문이'로, 나약한 어머니 거트루드는 노후보장을 위해 현실과 타협하는 '추언년'으로, 선왕의 유령은 새마을운동 조끼를 입고 이따금씩 출몰하는 유령 '이성국'으로 대체됐는데요.
 
특히 젊은 층의 미래가 암울하게 그려진 점이 인상적입니다. 서울 적응에 실패해 귀농하러 내려왔다는 호식, 복숭아와 배 농사를 망쳤다고 울상인 상수와 전무, 파프리카 농사에 손댔다가 빚더미에 오른 하수와 후무 등 해문이 친구들 중 누구 하나 돈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없습니다.
 
'햄릿'과 '조치원 해문이' 사이 가장 큰 차이점은 전자는 비극, 후자는 희극에 가깝다는 점일 것입니다. 돈의 논리에 뿌리채 흔들리는 가족과 마을을 그리면서도 연극 '조치원 해문이'는 웃음 코드를 끝까지 유지하는데요. 다만 이게 마냥 코믹하지만은 않고 약간 괴기스럽기도 합니다. 해문이가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가운데 '햄릿' 속 오필리어와는 사뭇 다른 외양으로 제의를 벌이는 오피리를 비롯해 빨간 바지의 춤꾼인 염쟁이 유씨, 노래하는 가수 추자 등이 출연해 이 극에 기묘한 분위기를 더합니다.
 
무대 뒷편의 하얀색 가로 현수막은 마치 욕망을 반영하는 캔버스 같은 역할을 합니다. 현수막은 세종특별자치시 기념 마을 씨름대회를 알리는 내용을 담기도 하고, 노래방 가사들이 흘러가는 모니터가 되기도 하며, 오피리의 순수한 바람을 담는 스케치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이 현수막에 투사되는 것은 도시빌딩숲인데요.
 
해문의 친구인 상수의 딸 세익이 극 말미 '이딴 마을, 모두 다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어'라고 외친 후 빌딩숲이 펼쳐지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해문 역으로 출연하는 이철희 배우가 틈날 때마다 써서 완성했다는 이 작품은 제4회 벽산문화재단희곡상 수상작입니다. 셰익스피어 '햄릿'의 구조를 충실히 반영했기 때문인지 극의 길이는 다소 길게 느껴집니다. 연출은 그린피그의 박상현 연출가가 맡았는데요. 오늘날 한국인들의 욕망에 대한 직접적인 비유가 어딘가 거칠다 싶으면서도 기묘하게 느껴집니다.
 
-공연명: '조치원 해문이'
-작: 이철희
-연출: 박상현
-출연: 이철희, 김정호, 최지연, 황미영, 이영석, 김문식, 박상윤, 이동영, 이필주, 곽동현, 정나진, 박경찬, 정양아, 김효영, 박하늘, 박근영, 최문석 등
-날짜·장소: 9월13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김나볏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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