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하창우)와 이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회장 한택근) 등 법조인 단체와 시민단체가 잇달아 대법원 판결에 불복하고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그 배경과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 대한변협 등의 이번 헌법소원 청구가 자칫 대법원과 헌재의 갈등구도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한변협은 지난달 27일 '형사 성공보수 약정'을 무효라고 본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해, 지난 24일에는 '민변 긴급조치 변호인단'과 '긴급조치 피해자 대책위', '민청학련계승사업회'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동을 정치행위로 보고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대한변협과 민변 등이 대법원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한 근거는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이다. 이 법 조항은 헌법소원 청구 요건으로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不行使)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을 비롯한 법원의 판결도 공권력의 행사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 조항 후단은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이라고 단서를 붙여 법원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 이른바 '재판소원'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헌재 설립 이후 지금까지 청구된 모든 재판소원은 대부분 각하되거나 기각됐다.
단, 헌재는 지난 1997년 법원이 위헌으로 결정된 법령을 판결의 근거로 적용한 경우에 한해서는 헌법소원을 통해 취소할 수 있다는 취지로 한정위헌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헌재는 이후 이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예는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판결에 불복해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사례는 증가 추세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재판소원은 지난 2005년 72건, 2006년 85건, 2007년 69건, 2008년에 100건이 접수됐다. 2009년엔 151건으로 급격히 늘었으며, 이후 2010년 117건, 2011년 108건, 2012년 155건, 2013년 153건, 2014년 177건까지 늘었다. 올해는 지난 7월까지 총 135건이 접수됐다.
각하·기각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변호사 단체가 직접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을 두고 법조계와 법학계에서는 여러 분석과 의견이 나오고 있다.
우선 이번 헌법소원의 당사자격인 대한변협은 해당 판결이 "직업수행의 자유와 자유, 평등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공권력인 대법원 판결이 국민인 변호사들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민변은 대법원이 헌재의 긴급조치에 대한 위헌 결정에 반하는 판결을 내렸고,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률을 적용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심판 대상이라는 논리다. 민변 관계자는 "상고법원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헌법재판소가 정책법원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길 바란다는 의미도 있다"고 밝혔다.
대한변협과 민변은 이번 헌법소원에서 재판소원을 원칙적으로 금지한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 후단에 대한 위헌심사도 같이 청구했다.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헌법학 교수는 "마지막 기회를 찾아보려고 헌법에 관한 최고기관인 헌재에서 전문적이고 심화된 판단을 해달라는 것 같다"며 "이 문제를 단순히 대법과 헌재의 갈등으로 봐서는 안 된다. 무엇이 헌법 정신이고 취지인지를 궁극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긴급조치의 경우에는 그에 따른 고통을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며 "개인적으론 이런 현상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충남지역 로스쿨의 한 헌법 교수는 "공권력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받았을 경우 헌법소원을 낼 수 있는데, 이 공권력에는 법원의 판결도 당연히 포함된다"며 "역사적으로 볼 때 잘못된 판결로 기본권이 침해되는 일이 있었고, 당연히 판결에 대해 헌법소원을 낼 수 있다는 것이 헌법학계의 통설"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의 황도수 건국대 로스쿨 교수도 "법률의 내용을 해석하는 것은 법원이고, 해석된 법률조항의 내용으로 위헌 여부를 따지는 게 헌재"라며 "두 기관의 권한은 분명히 나뉘어 있고, 헌재 입장에서 법률의 위헌 여부 문제는 대법원과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외국과는 달리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대등한 관계에 있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사법제도가 논란의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복수의 헌법학자들은 "헌법재판소가 없는 미국과 일본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나라와 같이 대륙법계에 있는 독일은 헌법재판소가 사법권을 견제 내지는 통제하고 있어 재판소원도 가능하다"며 "이번 기회에 통일적 접근에서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입법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야 실무 법조인인 변호사들은 재판소원 배경을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서울의 모 중견 법무법인에 근무하는 한 변호사는 "3번 정도 판단을 받았으면 승복해야 된다는 전제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데 재판소원이 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대법원의 판결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여러 헌법소원을 대리한 경험이 있는 또 다른 변호사는 "변호사들도 재판소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의뢰인들이 강하게 요구할 때 헌법재판소로 재판을 가져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대한변협과 민변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 제기에 대해서는 비판의 소리도 없지 않다.
변호사 단체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재판소원은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변호사들이 정치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며 "사법부가 정치적인 판결을 했다고 해서 법률가들까지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국민들의 사법 불신을 가중시키는 것"이라고 뼈 있는 말을 했다.
민변 긴급조치 변호단과 긴급조치 피해자대책위, (사)민청학련 계승사업등 과거사 단체들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긴급조치 발동은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헌법소원 제기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 뉴시스
조승희 기자 beyond@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