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선장비 납품을 특정업체에 몰아줬다는 의혹과 관련해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은 2일 '가격 경쟁력'과 '단독입찰'을 가장 큰 이유로 내세웠다. 플라서 앤 토이러(이하 플라서) 장비가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데다, 플라서 외에 아무도 경쟁입찰에 나서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코레일은 거의 30년 동안 플라서 장비만 썼다"며 "플라서 장비에 익숙하고, 익숙함이 가장 좋다는 이유가 된다"고 말했다. 또 "플라서만 써왔는데 어떻게 다른 장비와의 경쟁력을 논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코레일과 함께 철도 보선업무를 맡는 철도시설관리공단 측은 "플라서 제품을 안 쓴지 10년째"라며 "미국, 체코, 중국 장비도 좋은 게 많아 굳이 플라서 장비를 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플라서 외에 아무도 입찰하지 않는다는 주장 역시 사실과 다르다. 코레일이 플라서만 입찰할 수 밖에 없게끔 구매공고를 내기 때문에, 경쟁입찰은 사실상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코레일이 올 3월 낸 '보선장비 부품(외자) 구매입찰 공고(유압밸브 등 51품목)'를 보면, 멀티플타이탬퍼(MTT: Multiple tie tamper)에 들어가는 부품에 대해 부품번호와 용도, 외형 규격(전체 길이와 폭)만 적시됐고, 세부 정보와 상세 도면은 비공개로 접근이 제한됐다. 코레일에 장비를 납품한 플라서 업체 외에는 코레일의 요구에 맞는 제품 제작이 불가능하다.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공고한 멀티플타이탬퍼(MTT: Multiple tie tamper) 장비 내역. 길이와 폭을 제외한 다른 상세 정보는 모두 비공개다. 사진/뉴스토마토
심지어 코레일은 입찰에 응하려는 기업이 부품의 세부정보를 공개해 줄 것을 요청하자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라며 정보공개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코레일 시설기술단을 제외하고 어떤 기관도 가용한 정보를 비공개하는 곳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코레일은 구매계약에 응찰할 때 장비 제작사의 수리부속 증명서나 납품 실적서도 요구한다. 코레일 보선장비의 90% 이상이 플라서 장비이므로, 장비 제작사의 증명서도 플라서에서 발행한 것이어야 한다. 문제는 플라서는 자기 부품에 대한 증명서만 발행하므로 다른 보선장비 생산업체인 BTI나 MK 수입 대리점은 아예 응찰이 불가능하다.
코레일의 플라서 편중은 필연적으로 플라서로부터 장비를 수입해 납품하는 국내 대리점 A사의 독점 혜택으로 이어졌다. 이 회사는 2012년 1월 회사 설립 이후 지금까지 총 10건의 계약을 코레일로부터 따냈고, 금액은 184억원에 달했다.
◇오스트리아의 '플라서 앤 토이러'사가 제작한 멀티플타이탬퍼(MTT: Multiple tie tamper). 사진/뉴스토마토
이 기간 코레일이 발주한 총 입찰 건수는 19건인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0건을 이 업체가 가져갔다. 더구나 이곳의 설립자 겸 이사 P씨는 철도고 졸업생으로, 코레일 시설기술단 주요 간부들과 막역한 선후배 사이다. 철피아 논란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설립자 P씨는 지금 회사의 전신인 B사에서도 이사로 일했다. B사도 코레일로부터 장비 수주를 독점하다시피 했는데, 2007년 1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코레일로부터 따낸 계약은 총 14건에 달했다. 이 기간 코레일이 공고한 보선장비 입찰은 17건이었다. B사가 코레일과의 계약을 통해 얻은 계약금은 140억원 수준이다.
A사와 코레일은 장비 실사를 이유로 출장을 함께 다니며 친목을 다진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팀이 플라서 본사가 지난 2012년 발간한 자료를 입수한 결과, A사 설립자와 코레일 관계자 등 6명은 2012년 5월6일부터 19일까지 오스트리아로 출장을 떠났다. 이에 대해 코레일 측은 "장비 수주를 위해 납품사와 발주처(코레일)가 장비 제작 본사로 실사를 나간 것"이라며 구체적 출장정보는 공개를 거부했다.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사업감시팀 부장은 "납품사와 발주처가 함께 출장을 가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안 되더라도, 이로 인해 차후 입찰과 수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충분하다"며 "코레일은 출장 내역서를 공개해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호·방글아 기자 choib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