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에서 섬처럼 사는 우리는 시 한 편 읽지 못한 채 산문처럼 구차하게 산다. 섬은 적조하여 시를 떠오르게도 하는데 뭍과 멀리 사이를 두고 떠 있는 섬에 오르면 누구나 시인이 되거나 술주정꾼이 된다. 섬의 방파제는 파도를 막아서는 자리지만, 섬에서 뭍을 바라보는 조망점이며 뭍을 왕래하는 섬갈매기들의 이착륙장이기도 하다. 섬살이에 이골이 난 주정뱅이의 넋두리는 마침부호가 없는 문장처럼 지루한데, 이게 방파제에 부딛히는 파도처럼 끝이 없어서 자유로운 파격의 시와 다름없다. 섬을 드나는 뭍사람들이 주정뱅이에게 길을 물으면 주정뱅이는 섬의 운율로 노래와 시를 읊어주는데 육지사람들은 문장부호를 팍팍 찍은 명료한 이성을 갖추고도 섬의 노래를 알아듣지 못해 애를 먹는다. 마침표가 없는 파도소리가 시처럼 삶을 위로하여도.
서해 보령의 아름다운 섬 외연도(사진=이강)
서해를 사랑하는 이유는 짙으며 멀고 지루하며 애잔한 까닭이지만, 그중에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 바다에 수많은 섬들이 떠 있기 때문이다. 서해의 광대한 여백을 채우는 것은 점점이 떠오르는 섬의 잔영이다. 해무가 자욱한 안개의 바다에서 불현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섬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차피 바다의 길이란 것이 뭍의 길처럼 명확한 이정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삶이 갑갑하여 질 때, 여객선 대합실에 뭍의 이름자를 버려두고 떠나도 될 것인데. 무진의 먼 바다, 그 아득한 바다에 오롯이 떠있는 섬, 외연도를 찾아간다.
뭍에서 섬을 바라보면, 시처럼 아름답다
옛날에는 바다로 가는 길이 멀었는데, 서해의 섬으로 가는 여정은 하루나 이틀이 족히 걸리고 폭풍이나 해무가 짙어지는 날이면 영영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아서 겁이 나기도 했다. 대천여객선터미널 선착장에서 쾌속 페리호를 타고 2시간 남짓을 달려 들어갈 수 있는 보령 앞바다의 외연도는 멀고도 먼 섬이다. 갈매기도 날개를 접고 뱃전에 걸터앉는다. 차르르.
서해에서 어머니를 만나 사랑했던 아버지는 해마다 여름이면 온 가족을 데리고 보령 앞바다를 찾았다. 트럭을 빌려와 엄마랑 막내 누이는 운전석 옆자리에 태우고. 형과 나는 군용천막이랑 양은솥이랑 냄비랑 검은 색 튜브랑, 수박 한 통 등등의 잡동사니가 실린 짐칸에 태워졌다. 비포장 길을 달려 바다로 가는 길은 지루한 롱테이크로 기억되는데, 형과 나, 그리고 검은색 튜브는 꿀럭이는 도로의 굴곡으로 통통 튀며 반나절 여정의 지루함을 견뎌내는 수고를 감내했다. 흙먼지와 여름 땡볕은 현기증을 동반한 멀미를 유발했는데, 형과 나는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구토를 하면서도 마냥 즐거웠다. 캬르르 캬르르. 속을 비워내면 이내 졸음이 쏟아졌는데,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면 아버지는 바다와 섬을 찬양했다.
'수평선이야. 저기 섬도 보이지.'
옐로우빛 먼지를 뿌옇게 날리며 도착한 바다는 하늘과 맞닿아 있었고, 뿌연 바다 위에 섬들이 보였다. 아버지는 그렇게 여름이 되면 산문적인 삶에서 도피해 여름바다에서 시의 여백을 찾는 듯도 했다. 뉘엿뉘엿 해가 질 때, 아버지는 방파제의 주정뱅이처럼 노래를 불렀다.
외연도 선착장과 방파제(사진=이강)
차르르, 뱃전의 갈매기가 날개를 펴는 것은 섬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해무가 자욱한 바다로 들어 점점이 섬들을 지나 두 시간 여를 달리면 외연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외연도는 해무에 가려지는 서해의 섬으로는 단연 최고인데, 일년 중 대부분 안개로 자욱하게 가려진 날이 많아, 보통날에도 뭍에서 섬을 바라보면 잘 보이지 않는다. 서서히 배를 접안하면 섬은 해무의 장막을 걷어내며 출현하는데, 방파제 끝에는 밤새 노래를 부르던 주정뱅이와 뭍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이 행렬을 이루고 부산하게 움직인다.
바다안개 속에 숨겨진 섬, 외연도
바다를 두루 아는 사람들일 것이다. 보령 앞바다에는 대략 70여개 섬들이 떠 있다고 했다. 그중 외연도를 포함해 오도, 횡경도, 대청도, 중청도, 무마도 등과 15개의 섬을 외연열도라 부르는데, 섬들은 해무가 피어오른 몽롱한 바다에서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사람들을 유혹한다고도 했다. 그중 외연도는 가장 먼 바다에 자리하여 더욱 아득한데, 짙은 해무에 감싸여 있는 모습이 잦아 외연도(外煙島)라 부른다고 했다.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바다로 나간 섬의 일상은 한가롭고 고요하다. 섬은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아온 어촌마을의 풍모를 갖추고 있어 비릿한 바다향이 배어있다. 마을은 대략 130여가구에 500여명의 주민들이 사는데, 서해 먼 바다인만큼 십수 년 전까지만해도 섬 주변으로 파시가 열리기도 했다고 전한다.
어촌마을인 외연도의 풍경(사진=이강)
섬에서 서성이는 이는 외지인이고, 몸을 바삐 움직이는 이는 섬주민이다. 처음 섬에 발을 디딘 뭍사람들의 태도는 어리둥절한데, 할 일 없이 섬을 둘러보다가 마을의 골목골목을 걷는다. 대개 1박 2일의 일정으로 섬을 찾은 사람들은 마을 골목을 따라 벽화골목길을 걷고 새벽 해무가 오르는 때를 시작으로 해안산책로를 따라 섬을 돌아본다. 운수가 좋으면 방파제 끝에서 노래를 부르는 시인을 만날지도 모른다. "새벽이 젤여. 바람이 자부는 새벽이면 저 멀리 중국서 달기 새끼 우는 소리가 여 외연도 섬에서도 들린다 안혀. 저기 망재산 꼭대기가 살푸시 보일 때쯤이 제일 장관이제."
외연도의 섬 풍광을 돋보이게 하는 짙은 해무의 이야기다. 새벽녘 자욱한 해무 사이로 솟아오른 봉화산 봉우리와 망재산의 정상이 깊은 바다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모습은 한 편의 서시처럼 장엄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망망한 바다의 여백에서 간혹 섬 하나가 봉우리를 빼꼼 내밀다가 거대한 산처럼 다가서는 섬의 변화를 지켜본다. 사람들은 망재산 봉우리의 해무가 바람에 밀려 먼 바다로 사라지고 아침 햇살이 가슴으로 퍼지는 순간까지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본다.
외연도의 해안선 트레킹 코스(사진=이강)
꼿꼿하던 이성이 가벼워지고 감성이 차오르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다시 외연도초등학교 뒷산 언덕길을 올라 봉화산 정상의 봉수대를 거쳐 명금해변의 해안 산책로를 걷는다. 망재산 고래조지까지의 산행 코스로 봉수대 정상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바다는 여백 그 자체로 하늘을 그대로 담아 명경하다. 특히 해안선의 일부가 육지 쪽으로 움푹 들어가 있는 명금해변의 돌삭금, 누적금 등 해안선을 따라 걷다보면 답답하던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다. 그중 망재산이란 이름보다 섬사람들이 많이 입에 올리는 고래조지는 멀리 외연열도가 한 눈에 바라다 보여 최고의 전망을 선사한다. 황금빛 암반지형에 올라서면 해무에 가려 있던 외연열도가 눈앞에 펼쳐진다. 삶이 아슬아슬하여 끝을 가늠할 수 없다면, 잠시 뭍에서 떠나 섬에서 며칠을 머물러도 좋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섬의 노래와 시를 들으며 위로를 받을 수 있을테니까. 멀리 뭍으로 향하는 쾌속선이 파도가 미처 찍지 못한 마침표를 울린다. 동동동동.
이강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gh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