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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화장을 지운 염정아의 민낯을 보다
입력 : 2014-11-08 오전 10:09:14
◇염정아 (사진제공=판타지오)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내가 우리 회사 소속 배우 중 제일 좋아하는 여배우예요."
 
배우 염정아가 소속된 연예기획사 판타지오의 한 관계자가 염정아를 두고 한 말이다. 소탈하며 인간미가 있고 솔직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인터뷰장으로 향하는 길은 더 큰 설렘이 있었다. 솔직한 배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즐겁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본 MBC <로얄패밀리>와 영화 <범죄의 재구성> 등에서 뛰어난 연기를 펼친 염정아는 섹시한 여배우의 대표였다. 진한 메이크업에 화려한 옷차림으로 브라운관과 스크린에 섰던 그였다.
 
그런 염정아가 13일 개봉을 앞둔 영화 <카트>에서는 화장을 깨끗이 지웠다. 앞치마를 두르고 대형마트에서 카트를 끌었다. 카메라 앞에서는 언제나 어디서나 당당했던 염정아는 세상물정을 잘 모르고 시키는 일에 'YES'라고만 대답하는 소심한 아줌마로 변했다. 이제껏 보기 힘들었던 그의 민낯은 뛰어난 연기력과 함께 더 아름다운 배우로 느껴지게 했다.
 
최근 만난 염정아는 소속사 관계자가 말했던 것처럼 소탈했다. 진한 메이크업으로 기자들을 만났지만, <카트>의 선희(염정아 분)가 그랬던 것처럼 속은 푸근했다.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수더분한 웃음도 아끼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는 마치 자신의 집에서 떠나는 객을 보내는 것마냥 배웅까지 했다. 그런 뒤 "어머, 나 뭐하는 거야"라고 입을 막으면서 웃는 미소에는 그의 인간미가 느껴졌다.
 
◇염정아 (사진제공=명필름)
 
◇예쁨을 포기하고 더 아름다워지다
 
<카트>는 제작될 당시부터 기자들 사이에서 화제에 올랐던 작품이다. <조용한 가족>, <공동경비구역 JSA>, <건축학개론>까지 한국 영화사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긴 제작사 명필름의 영화라는 점부터 국내 최초로 노조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관심이 높았다.
 
기자들끼리 "<카트>는 재밌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했다. 소시민, 혹은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영화에 섹시미의 대명사 염정아가 캐스팅됐다고 했다. 의아했던 게 사실이다. 소시민 염정아는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그였다. 어쩌다 민감한 소재의 영화에 출연하게 됐을까 궁금했다.
 
"사람 사는 얘기잖아요. 어려운 얘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소재가 그런 거 뿐이지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 공감을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시나리오를 읽는 내내 울분이 차고 억울했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의 그 복받쳤던 감정이 촬영 마지막신까지 와닿았단다.
 
극중 염정아가 연기한 선희는 돈도 주지 않고 야간근무를 부려먹는 회사의 지시에 오롯이 'YES'로만 대답하는 인물이다. 우직하게 시키는대로 일하는 여성이다. 옆에서 보기에 조금 답답해보이기도 한다. 뭐가 옳고 잘못됐는지 판단을 하려는 노력조차 안한다. 그런 그가 파업을 진행하면서 '갑'에 굴복하지 않고 시시비비를 정확히 따질 줄 아는 여성으로 성장한다. 그러면서도 울지 않는다. 그 울지 않는 모습이 기특하게 여겨진다.
 
"매순간 선희를 연기하면서 선희 감정을 잘못 표현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저는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만 할 것 같더라고요. 선희는 뚝심도 있거든요. 쉽게 울지 않을 여성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야 더 공감될 거라 생각했어요."
 
<카트> 촬영 동안 염정아는 화장을 지웠다. 머리도 아줌마스럽게 바꿨다. 40대에도 플래쉬 앞에서는 아름다웠던 염정아가 예뻐지려는 욕심을 버렸다.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게 여배우의 당연한 욕심인 것을 염정아는 포기했다. 그래도 자신감이 있었다.
 
"확신이 있었어요. 얼굴에 일부러 기미도 그렸어요. 온전희 선희로만 보이면 그 배우가 미워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선희가 밉지 않은데 그 배우가 미워보일리 있겠어요. 온전히 엄마여야만 했어요."
 
극중에서 어설프게 마이크를 잡고 부당해고를 자행하는 회사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부당하다'고 전하는 선희를 연기한 염정아의 모습은 그 어떤 섹시함을 보였을 때보다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염정아는 역시 베테랑인 듯 했다.
 
◇염정아 (사진제공=판타지오)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이라도 들어줬으면.."
 
염정아는 소셜테이너와는 거리가 멀다. 정치적이나 사회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사실 배우라는 직업 외에는 평범하게 지내왔다는 그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통해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고 한다.
 
비정규직이 600만이 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갑의 협박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염정아는 이러한 사실을 잘 몰랐었다고 고백했다.
 
"문제는 이게 우리 주의에 내 이웃의, 우리들 엄마의 이야기잖아요. 너무 가까운 사람들의 이야기.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있고, 해결할 방법이 딱히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이렇게 심각한 일이 있었는지 잘 몰랐어요. 너무나 관심이 없었다는 것에 반성하게 됐어요."
 
영화에서 선희는 마트에서 고용한 용역들에 의해 머리채를 잡힌다. 고개가 확 젖혀진다. 우리네 엄마들이 그런 일을 당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파오는 장면이다.
 
"마트에서 제가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한 뒤에 용역들이 뛰어내려오는 장면이 있어요. 촬영장이고 연기인데도 공포가 몰려오더라고요. 연기인데도 이렇게 두려운데, 실제 이 아줌마들은 어떻게 견뎠을까라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너무 저려왔어요. 김영애 선생님이 걱정되기도 했죠. 연기였는데 말이에요."
 
거친 세상에 따뜻하고 잔잔한 감동이 몰려오는 영화라는 점에서 주조연, 단역 배우 할 것 없이 같이 한마음으로 연기했다. 염정아는 동료 배우라고 하기 전에 '조합원'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만큼 고생을 같이했고 친분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염정아는 조합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물대포를 맞는 신이 있는데, 2월이었어요. 현장에서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긁히고 찢기고 부상도 엄청 많았죠. 그런데도 정말 집중했었어요.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카메라 밖에 있던 조합원들도 하나가 돼서 같이 연기를 해줬어요. 그게 정말 대단한 힘이거든요. 카메라 밖에서 팔짱끼고 '쟤가 잘하나 못하나 보자'이러면 연기가 되겠어요? 그런데 우리 조합원들은 끝까지 같이 연기를 해줬어요. 그들 덕분에 정말 행복하게 연기했어요. 정말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했었어요."
 
이 말을 전하는 눈빛에서 진심이 전달됐다. 그 고마움이 눈에서 표출됐다. 그의 인간미가 또 한 번 느껴진 순간이다. 염정아는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고 동료들에게 인간적인 고마움을 느낄 줄 아는 배우였다. 이날 기자에게 비춰진 염정아의 민낯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예뻤다.
 
 
함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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