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일본의 인형극 분라쿠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전통공연 장르로, 일본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이 분라쿠의 본거지는 오사카인데 이 지역에는 1984년 설립된 국립분라쿠극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매해 5개의 연작으로 분라쿠 공연 프로그램을 구성해 3주씩 관객에게 선보인다.
(자료출처=일본 오사카 국립분라쿠극장 홈페이지)
지난 12일 찾은 오사카 국립분라쿠극장에서는 <이가고에 도추 스고로쿠>라는 공연이 상연 중이었다. 이 작품은 간에이 11년(1634년)에 아라키 마타에몬을 비롯한 검호(劍豪)들이 이가우에노(미에현 이가시의 옛 지명) 가기야 네거리에서 감행한 복수극을 소재로 한다. 이 가기야 네거리의 복수는 소가 형제의 복수, 아코 로시의 복수와 더불어 일본 3대 복수극으로 유명하다.
이 공연은 하루에 걸쳐 하나의 작품을 상연하는 도시 교겐(狂言, 일본 전통 희극의 일종)의 형태로 진행된다. 오사카에서 도시 교겐이 본격적으로 상연되는 것은 1992년 이래 21년만이라고 한다.
이날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석이 만석이었다. 일부 외국인 관광객을 제외하면 관객은 대부분 일본 현지인인 점도 눈길을 끌었다.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9시 반까지 약 11시간에 달하는 긴 공연시간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자리를 뜨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극은 이야기의 무대를 오닌의 난(1467~1477) 이후 시대로 바꿔 가마쿠라에서 도카이도 가도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복수를 완수할 때까지의 과정을 도추 스고로쿠(주사위 게임)로 설정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운명이 원수를 갚는 사람, 복수를 당하는 사람, 도와주는 사람 등으로 급변한다.
분라쿠는 인형 조종, 조루리(사설) 암송, 샤미센 음악 등 3가지 요소로 이뤄지는데 오랜 시간의 훈련을 거쳐 숙달된 사람만이 무대에 오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인형극이라 일컬어지는 분라쿠, 그중에서도 분라쿠의 본거지인 오사카에서 상연되는 공연답게 작품의 완성도가 무척 높았다.
주인공 인형은 각각 세 명의 조종수에 의해 움직인다. 인형의 크기는 실제 사람 크기의 반 정도이며, 눈과 눈썹, 입 등 얼굴 표정까지 세밀한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손과 팔의 움직임 역시 정교하다. 인형을 움직이는 조종수들이 무대 위에 존재를 드러낸 채 인형을 움직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장인의 경지에 이른 조종수들이 빚어내는 탁월한 앙상블을 눈 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인형 외에 분라쿠의 중요한 구성요소는 조루리 암송자와 샤미센 연주자다. 이들은 카미시모라는 전통의상을 입는데, 둘 다 무대 오른쪽에 마련된 움직이는 무대 위에 앉는다. 다유(太夫)라는 이름으로 지칭되는 사설꾼은 조루리의 세계를 묘사해내는데 혼자서 장면의 정경, 이야기의 배경, 전체 등장인물의 대사를 표현해낸다. 이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 판소리의 소리꾼을 연상시킨다. 샤미센 연주자의 경우 조루리 암송을 반주하는 것뿐만 아니라, 비바람 소리나 장면에 맞는 음악적 효과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장인 정신이 묻어나는 공연도 그 자체로 훌륭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전통장르 감상이 하나의 자연스런 문화로 자리잡았다는 점이었다. 인기 있는 분라쿠 조종수가 나오면 관객들은 존경의 의미를 담은 박수를 아낌없이 보낸다. 점심 시간은 단 30분에 불과해 공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 시간 동안 관객석에서는 각자 미리 준비한 도시락을 질서정연하게 꺼내 먹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이처럼 2003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분라쿠는 고전의 줄거리와 기본 형식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과장된 표현과 기교, 형식미 가득한 연출, 화려한 무대 변환 등에서 진화를 거듭하며 관객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전통예능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예술로 여겨진다는 점이 놀라웠다. 전통문화유산의 전승과 발전은 정부와 예술가, 관객 등 세 주체가 절실히 원할 때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