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모를 조급증에 불편한 감정이 생겨날 때가 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시기에 저는 저의 잔재주를 적극 활용하고 있더군요.
오랜만에 무대에 섰습니다. 관객들의 호응을 받으며 힘차게 한발 한발 디뎌 신나는 움직임을 만들어냈습니다. 혹여나 외운 안무를 까먹을까 노심초사하던 마음도 무대 위에서는 깨끗하게 씻겨 내려갔습니다. 공연 중은 물론 공연 후까지 칭찬이 이어졌습니다.
무거운 걸음을 이끌고 간 줌바 수업도 그랬습니다. 줌바 수업은 대단한 에너지 소모를 요하기 때문에 웬만한 결심으로 가기 어렵습니다. 거울 앞에서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 날 삭신이 쑤실 정도로 춤을 춰야만 합니다.
오랜만에 리듬을 맞추느라 버거웠지만 어느새 거울 속에서 저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강사와 눈을 맞추며 서로 행복한 웃음을 지어보였습니다. 그 미소엔 이렇게 즐거워할 거면서 그동안 왜 나오지 않았느냐,라는 의미도 담겼을 터입니다. 그래도 언제나 반겨주는 강사님과 어느새 신나 하는 저를 보며 문득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잔재주가 많았습니다. 시험 기간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음악을 켜고 밥상 혹은 책상 앞에서 실컷 춤을 췄습니다. 그리고 다시 공부에 돌입했습니다. 이렇게 속상한 마음이나 스트레스를 그것도 신나는 음악에 맞춰서 털어낼 수 있는 제 자신이 행운아로 느껴졌습니다.
저는 노래도 곧잘 하는데요. 평소엔 음악을 잘 듣지 않지만 기쁠 때나 슬플 때 노래로 감정을 표현하기를 좋아합니다. 극적인 선율에 내 목소리를 입힐 때 잔잔한 위로를 얻습니다.
노래와 춤이 그저 유희로만 쓰이는 줄 알았더니 어려서부터 내 마음의 뿌리를 지탱해주고 보살펴주는 고마운 존재였다는 것을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마음껏 예술로 마음을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큰 복입니다.
저는 글 쓰는 것도 좋아하는데요. 싱숭생숭한 날이면 펜을 들어서 적어 내려갑니다. 글쓰기가 제게는 괴로운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적다 보면 마음을 개워내 시원한 기분이 듭니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을 때는 코바늘을 듭니다. 저는 손이 참 빠른데요. 엉덩이가 무겁고 집중력도 괜찮은 편인 저는 한자리에서 간단한 작품은 뚝딱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머리를 비우고 난 뒤 예쁜 결과물이 생기면 그것도 기분 전환이 됩니다.
특별히 빼어난 전문적인 재주가 아니기에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의 재주가 무슨 소용이 있냐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날들이 많았습니다. 문득 돌아보니 저는 남들은 그토록 갖고하는 재주를 가졌고, 그 잔재주들이 저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