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내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사용자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지급 의무'와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 금지' 조항을 신설하고 내년부터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조항은 국제노동기구(ILO)가 1951년 채택한 제100호 조약 등에서 남녀 노동자에 대한 동일보수가 '동일한 가치의 노동'에 기초해야 한다고 규정한 데서 비롯됐습니다. 이에 우리나라도 현재 남녀고용평등법에만 해당 조항이 명시돼 있습니다. 과거에는 성차별에 따른 임금 차별 방지가 핵심 취지였지만, 최근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하청·용역·파견 등 고용 형태에 따른 임금 차별이 새로운 사회 문제로 부상했습니다.
하청·용역·파견 등 간접고용은 겉으로는 고용계약을 한 회사와 맺지만 실제 근무지는 다른 사업장인 형태입니다. 사용업체 입장에서 간접고용·파견 노동자는 노조 조직이나 단체교섭 대상에서 제외되고, 해고 절차나 실업급여 부담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기업이 선호하며 노동시장 전반에 만연한 구조가 됐습니다.
겉으로 보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당연히 신속히 도입돼야 할 제도로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직무급 도입 없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국 기업의 대부분이 채택하는 연공급 체계에서는 같은 일을 해도 경력자와 신입의 급여가 크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직무급은 근속연수나 나이, 경력이 아니라 일의 난이도·책임·전문성·시장가치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는 방식으로, 같은 직무라면 경력과 상관없이 비슷한 급여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업무 명칭이 같아도 실제 업무 범위·강도·책임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무직'이라 해도 단순 자료 입력만 하는 경우와 보고서 작성·기획까지 맡는 경우가 있습니다. 직무 분류를 얼마나 세밀하게 할지, 이를 누가 평가할지가 민감한 쟁점이 됩니다. 숙련자와 초보자의 생산성·품질 차이를 어떻게 반영할지도 문제입니다. 직무 가치 평가 기준이 불투명하면 오히려 임금 체계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습니다.
또 제도 도입 과정에서 기존 연공급 체계 인력의 임금 조정이 불가피하고, 경력자의 임금이 삭감되는 경우가 많아 반발이 거셀 가능성이 큽니다. 일본 역시 직무급 도입 당시 기존 인력과 신규 인력 간 '임금 이중구조'가 발생해 사회적 논란이 있었습니다. 높은 근로 의욕과 함께 노사 교섭의 산물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갈등이 불가피한 제도입니다.
따라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단순히 법 조항 하나 신설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폭넓은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합니다. 윤석열정부 당시 의대 정원 증원이나 국민연금 개편처럼 사회적 갈등을 불러올 수 있는 사안인 만큼, 불법 파견·하청 근절 등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먼저 추진하고, 직무 평가의 투명성 확보와 임금체계 전환 논의를 병행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서울 시내 한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