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11일 국가인권위원회 직원들이 국민을 향해 머리를 숙였습니다. 전날인 10일 안창호 인권위원장 등이 내란수괴 윤석열씨의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권고안을 채택한 데 따른 사과입니다. 직원들은 소수자와 약자의 인권을 대변해야 할 인권위가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의 인권만 지키겠다고 나선 것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인권위 직원들, 국민 향해 사과 "윤씨 인권만 보호해"
인권위 직원들은 11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을 향해 사과했습니다. 이들은 "2025년 2월10일 인권위는 위헌·위법적인 12·3 비상계엄을 일으킨 대통령의 인권만 보호하겠다고 만천하에 공표하고 말았다"며 "안 위원장 등은 인권위원의 역할을 저버렸다. 인권위를 망치러 온 파괴자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앞서 안창호 인권위원장 등은 전날인 10일 오후 '내란죄 피의자·피고인'들의 방어권 보장 권고 등을 담은 안건을 수정·의결한 바 있습니다. 권고안에는 ‘대통령 윤석열에 관한 탄핵심판 사건 심리시 형사소송에 준하는 엄격한 증거조사 실시 등 적법절차 준수하고 법리적용의 잘못이 없도록 심리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또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 대한 탄핵심판 남용 여부를 적극 검토해 남용이 인정되면 각하할 것’이라는 내용도 채택됐습니다. 이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을 받고 있는 윤씨의 입장과 동일합니다.
권고안은 안창호 위원장을 포함해 김용원·이충상·한석훈·이한별·강정혜 위원 6인의 찬성으로 가결됐습니다. 6인 중 강정혜 위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윤석열씨가 임명했거나, 국민의힘이 추천한 인사입니다. 남규선·원민경·김용직·소라미 위원 4인은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직원들이 11일 오후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대중을 향해 사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인권위 직원 50여명, 대책회의 소집‥기자회견 진행
인권위 직원들은 윤씨의 방어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권고안이 가결된 데 반발해 이날 오후 2시부터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했고, 기자회견까지 이어지게 된 겁니다. 올해 2월 기준으로 인권위 전체 직원은 약 250명입니다. 이 가운데 대책회의엔 50명이 참여했고, 기자회견엔 30명 정도가 함께 했습니다.
권고안에 반대했던 인권위원 3인도 이날 오후 인권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3인은 "2월10일자 의결을 주도한 안창호 위원장은 반인권적인 결정에 참여함으로써 인권위원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며 "위원장직을 사퇴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습니다.
원민경 인권위원은 "주문 자체는 형사소송상 일반원칙을 요구하지만 내용을 도출하는 과정이 굉장히 문제적"이라며 "위원 대다수는 계엄 동조가 아니라고 했지만 계엄을 옹호하는 내용을 일부 위원들이 문제제기해서 빠진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소라미 인권위원도 "권고안 가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정·의결을 하기 위해 다수 위원이 한 위원(강정혜)의 의사를 집요하게 확인하면서 질문을 한다거나 대답을 끝까지 강권했던 절차가 적법했는지, 부당한 점은 없었는지 의구심 든다"고 했습니다.
익명 직원들 "안창호, '윤씨는 약자…탄핵 반인권적'"
익명을 요구한 인권위 직원 A씨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안 위원장을 포함해 6인의 인권위원은 윤씨를 '철저한 약자'로 위치시키며 모든 헌법·법상 절차에 의해 이루어지는 탄핵심판과 형사소추절차들이 반인권적이라고 주장했다"며 "계엄선포로 야기된 국민의 인권 침해는 안중에도 없었고, 인권의 언어가 반인권적인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써 도난당하고 유린당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직원 B씨는 "직원들은 모두 멘붕(멘털 붕괴)"이라며 "정제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예상밖의 결과로 직원들이 굉장히 당혹스러워하고, 치욕스러워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인권위엔 '경찰한테 부당하게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부당하게 구속됐다', '수사받고 있다'라는 내용으로 수많은 사건들이 들어오고 있는데 인권위는 수사기관의 수사나 재판에 관한 사안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며 "윤씨에 대한 권고안으로 인해 인권위의 대원칙이 흔들렸다"고 지적했습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인권위원을 역임한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직 인권위원으로 참담한 심경"이라며 "인권위원 임명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위원 자격을 강화하고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도록 절차를 투명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