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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의 한국철학사 30화)사마천, 민중 고통에 대응한 감수성 천재
입력 : 2023-10-30 오전 6:00:00
고려시대를 이규보와 이제현과 정몽주, 세 분을 통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고려시대를 마무리하고 조선성리학으로 넘어가기 앞서서, 고려시대에 반드시 말씀드려야 될 ‘적통주의(嫡統主義)’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적통주의란 무엇이냐? 중국의 중화중심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중화중심주의의 보안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통주의를 만들어낸 사람은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마천은 전에 말씀드렸듯이 본기-세가-열전이라는 위계질서가 있는 서술방식의 기전체 역사서술을 개발한 사람이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가 ‘본기(本紀)’에 어떤 왕조를 집어넣을 것인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적장자(嫡長子)로부터 핏줄이 가깝냐 가깝지 않느냐를 판단해야 되기 때문에 적통주의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누가 적장자에 핏줄상 (더) 가깝냐 라는 것이죠. 이 적통주의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임금의 핏줄이 끊어지면 강화 도령[철종]까지 찾아 가지고 전주 이씨의 핏방울이 한 방울이라도 튀어 들어간 사람을 찾아내서 그 사람을 왕으로 앉혔던 것입니다. 이것이 ‘적통주의(嫡統主義)’입니다.
 
적통주의를 만들어낸 사마천(司馬遷). 필자 제공
 
적통주의는 고려시대에 중국에서 발전하고 있었던 선종(禪宗)에서도 불교계의 중화중심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이 선종의 계보를 만들어내는 데 배경사상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종에서는 달마(達磨)가 혜가(慧可)에게 법통을 전하고, 혜가가 승찬(僧粲)에게 전하고, 승찬이 도신(道信)에게 전하고, 도신이 홍인(弘仁)에게 전해서, 홍인이 혜능(慧能)에게 전했다. 이렇게 말합니다.
중국 선종에서 주장하는 조사(祖師)의 계보는 달마(達磨) - 혜가(慧可) - 승찬(僧粲) - 도신(道信) - 홍인(弘仁) - 혜능(慧能)입니다.
 
이것이 적통주의인데 달마가 아무리 위대한 스승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제자들에게 똑같이 전해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가르침이란 스승이 깨달은 내용을 제자에게 전수하는 올림픽에서의 횃불 성화 봉송 같은 과정이 아니라, 프랑스 현대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얘기한 것처럼, ‘산종(散種)’ 과정이라고 얘기하는 게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종’이란 무엇이냐? 씨앗의 흩뿌리기입니다. 씨앗을 하나하나 (땅에) 꼽는 것이 아니라 흩어뿌리기를 산종이라고 하는데. 흩어뿌리기 과정에서 어떤 씨앗은 비옥한 토지에 떨어져서, 씨앗을 뿌린 사람의 의도대로 잘 자랄 수 있습니다. 어떤 씨앗은 척박한 땅에 떨어져서, 돌연변이를 일으킵니다. 돌연변이(mutation)란, 기존 유전자의 염기 순서에 영구적인 변화가 발생하는 경우를 ‘돌연변이’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개체에 좋거나 나쁜 영향을 주게 된다. 이로써 생태계의 종 다양성은 증가하게 됩니다. 돌연변이가 일어난 씨앗은 그 품종을 개량하기도 하고, 열등하게 개량하기도 합니다. 그럼으로써, 생태계는 다양해지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가장 고귀한 스승 고타마 싯다르타까지 꾸겨 넣은 중국 선종의 계보도. 필자 제공
 
가르침이란 이런 산종과 같은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우수한 깨달음을 얻은 스승이라 할지라도 자기가 깨달은 내용을 100% 제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줄 수는 없습니다. 제자라고 해서 스승의 클론(clone, 복제생명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국 불교계의 중화중심주의자들은 선종의 계보 달마-혜가-승천-도신-홍인-혜능의 족보만 만들어낸 게 아니라, 그들의 가장 고귀한 스승 고타마 싯다르타까지 이 족보 안에 꾸겨 넣었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가섭에게 전하고, 가섭이 아난에게, 아난이 발전자에게 전하고, 전하고 전해서 달마에게 전해주었고, 달마가 고타마 싯다르타의 34대 제자이고, 달마로부터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을 거쳐서 혜능이 고타마 싯다르타의 40대 제자라는 주장인 것입니다. 이 얘기는 고타마 싯다르타가 가섭에게만 전하고, 가섭에게만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전하고, 달마가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혜가에게만 전했다는 얘기입니다. 이 얘기대로라면 고타마 싯다르타와 달마 선사들이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제가 아는 한 고타마 싯다르타와 달마 선사는 그런 분들이 아닙니다. 그런 분들이 아니라 그분들은 자신이 깨달은 내용을, 데리다가 얘기한 씨앗의 흩뿌리기처럼 산종했을 뿐입니다. 산종했기 때문에 고타마 싯다르타의 깨달음을 산종한 결과. 가섭도 나오고, 아난도 나오고, 용수도 나오고, 마명도 나오고, 달마도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흩뿌리기로 이해한다면, 깨달음에 대해서 가르침에 대해서 정확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그러나 불교계의 중화중심주의자들이 적통주의에 입각해서 계보를 조작한 것에 따르면, 그들의 생각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두 가지를 다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르침이란 자크 데리다가 얘기한 것처럼 산종의 과정을 거쳐서 돌연변이를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깨달음 또한 스승이 어떤 고명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그 스승이 자신의 깨달음을 제자에게 그대로 전수해 주는 일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제자가 자기와의 싸움에서 얻는 것이지, 스승은 도움을 줄 수 있고, 영감을 줄 수 있어도, 제자에게 깨닫도록 해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르침이란 ‘산종(散種)’과 같다고 말한 프랑스 현대철학자 자크 데리다. 필자 제공
 
제가 고려시대를 마무리하면서 적통주의를 비판하고 넘어가는 이유는 적통주의라는 것은 한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우리 인류에 대해서 어떤 사상을 가졌고 어떤 실천을 했느냐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적장자로부터 핏방울이 얼마나 튀어 들어갔느냐에 따라서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적통주의에 대해서 비판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우리의 위대한 역사를 읽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적통주의의 부정적 영향 때문에, 우리가 《삼국지연의》를 읽을 때, 한나라의 왕실인 유씨 집안의 핏방울이 한 방울이 튀어 들어간 유비에 대해서는 매우 정당성이 있는 것처럼 선입견을 가지고, 조조에 대해서는 교활한 인물이라는 선입견을 갖는 것도 적통주의의 악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의 사상과 어떤 사람의 목숨을 건 실천보다도 그것이 핏방울 한 방울을 못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적통주의의 폐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통주의에 입각하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고 중심과 주변을 평등하게 바라보고, 그리고 뭔가 새로운 거를 개척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봉건적인 핏방울 중심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옛날로 퇴행시키는, 우리의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발목을 물귀신처럼 잡아당기는 악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적통주의라는 봉건적인 폐해를 넘어서야 바른 눈으로, 능소평등(陵所平等)의 눈으로 주변과 중심이 평등하다는 위대한 시각으로써 역사와 우리 삶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적통주의의 폐단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퇴행적 반동적 적통주의를 확고히 넘어섰는지 되돌아보고 싶어집니다.
 
■필자 소개 / 이상수 / 철학자·자유기고가
2003년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중국철학 전공),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 2003~2006년 베이징 주재 중국특파원 역임, 2014~2018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역임, 2018~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역임. 지금은 중국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고 강의하고 이 내용들을 글로 옮겨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권익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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