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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의 한국철학사 23화)신선이 돼 승천한 육두품 지식인
입력 : 2023-08-28 오전 6:00:00
오늘 글에서는 우리 철학사에서 우리 공동체의 고유한 사유형태라고 하는 풍류도적인 사상가 중에 한 분인 김가기라는 분에 대해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김가기라는 분은 우리나라의 문헌에는 기록이 아예 나오지 않습니다.
 
중국의 《列仙傳》에 나오고 중국에는 돌에 새겨져 있는 마애비(磨崖碑), ‘김가기 마애비(金可紀摩崖碑)’까지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문헌에는 아예 기록이 전해져오지 않는데요. 조선 후기에 홍만종(洪萬宗)이라는 분이 《해동이적(海東異蹟)》이라는 글을 펴냈습니다. 이분은 조선시대가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에 의해서 유교만을 국교로 삼으면서 유교에서 배척하는 도교(道敎)적인 것, 신선술적인 것, 불교적인 것을 배척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여서, 그 유교에서 배척하고 있는 해동의 중요한 기록들을 모아서 《해동이적》이라는 글을 편찬했는데, 거기에 <김가기전>이 실려 있습니다. 홍만종 선생의 《해동이적》에 실린 <김가기전>은 《속열선전(續列仙傳)》에 실려 있는 내용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87년 중국 종남산 자오곡 북쪽 입구에서 발견된 김가기마애비. 사진=필자 제공
 
김가기라는 선생은 당나라에 건너가서 당나라에서 진공과에 합격해서 진사가 되었고, 신라에 돌아왔는데 신라에는 골품제가 엄격하기 때문에, 자기의 재능을 발휘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분이 도인(道人) 복장을 그대로 입고, 당나라로 돌아갑니다. 당나라로 돌아가서 당나라에서 양생술을 도가적인 양생술인 복기(服氣) 수련을 했던 분인데요. 당나라 수도인 장안에 종남산(終南山)이라는 산이 있습니다. 종남산이라는 산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울의 남산 정도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종남산은 해발 2,804m인 산으로, 2,804m라면 우리나라 백두산보다 높습니다. 백두산이 (해발) 2,744M잖아요. 백두산보다 큰, 높은, 규모가 굉장히 큰 산입니다.
 
중국인들이 가장 널리 사용하는 바이두(百度)에서 ‘김가기’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화면, 김가기를 “신선이 되어 승천한[羽化昇天] 신라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필자 제공
 
거기에 자오곡(子午谷)이라는 데가 있는데요. ‘자오곡’에서 ‘자오(子午)’라는 것은 ‘남북’이라는 뜻입니다. 종남산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협곡을 자오곡이라고 하는데, 자오곡을 통(과)하면 장안에서 바로 어디로 통하냐면 한중(漢中)으로 통합니다. 중국의 지도를 볼 때, 가장 중심지역이 한중(漢中)인데요. 오늘날의 지명으로 얘기하자면 무한(武漢) 지방에 해당합니다. 장안에서 무한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길이, 종남산의 자오곡이라는 곳입니다. 김가기 선생은 신라로 귀국했다가 신라에서 푸대접 받고 그대로 당나라에 돌아가서 자오곡에 들어가서 신선 수련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당시 당나라 황제가 선종이었는데요. 선종한테 표(表)를 보냅니다.
 
선종이 깜짝 놀라죠. 표를 보냈는데 보니까, “신 김가기는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아서, ‘영문대시랑(英文臺侍郞)’이 되기 위해서, 내년 2월 25일 승천합니다“라는 내용이에요. “승천한다”라는 내용의 표를 받은 황제가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이 사람이 승천하는데, 내년에 승천한다는 표를 받은 거예요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그러니까 황제가 궁금해서 죽습니다. 궁금해서 죽어요.
 
그냥 비서를 보내서 몇 번이고 궁궐로 들어오라고 그럽니다. 궁궐로 들어오라고 그러는데, 김가기가 끝끝내 안 들어가요. 한 번도 안 들어가고, 그러니까 황제가 궁금해서 죽어요. 그 다음에는 비서관을 보내서 뭐라그러냐면 옥황상제가 보내주셨다는 조서(詔書)라도 좀 보여줘라, 조서를 보여달라니까, 김가기 선생이 그것은 관장하는 신선이 따로 가지고 올라가서 인간세계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라고 설명하였죠.
 
그러니까 선종이 궁녀 4명과 궁인 2명을 파견해요. 모두 6명을 파견해서, 6명을 김가기 숙소에서 같이 머물게 하면서, 김가기의 일거수일투족을 자기에게 보고하라고 얘기를 하죠. 궁금해서 죽습니다. 
 
그런데 《열선전》의 기록에 따르면 (김가기가) 선종한데 표를 보낸 것이, 857년 12월이고 표에서 얘기했던, “내년도 2월 25일”이 되자, 서기 858년 2월 25일이죠. 이 때가 되니까, 오곡에 다섯 가지 빛깔이 감돌고, 하늘에서 풍악소리가 울리더니, 옥으로 만든 가마가 내려왔대요.
 
옥으로 만들고, 깃털 장식을 가득한 가마가 내려오더니, 신선이 사람들의 많은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가마를 타고 올라갔다, 이렇게 기록이 나와있습니다. 이 내용은 《속열선전(續列仙傳)》에 실려 있는데요.
 
중국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중국의 구글’이라고 할 수 있는 ‘바이두(百度)’에서 ‘김가기(金可紀)’를 검색하면, 그냥 쿨하게 이렇게 나와요. “우화승천(羽化昇天)한 신라 사람이다.”
 
‘우화(羽化)’라는 것은 “깃털이 된다”는 뜻인데 깃털이, 사람이 깃털로 변한다는 뜻은 “신선이 된다”는 뜻입니다. 신선이 되어서 승천한 사람이다. 이렇게 기록이 나와요. 우리나라에는 김가기라는 사람에 대한 기록은 앞에서 소개해 드렸던 홍만종이 조선 후기에 편찬한 《해동이적》이라는 글밖에는, 김가기를 언급한 문헌이 없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1987년 6월에 종남산, 앞에서 말씀드렸던 김가기가 신선술을 닦았던 종남산에서 한 비석이 발견됩니다. 암각에다가 글자를 새긴 건데요. 중국사람들이 이름 붙이기를 "김가기 마애비(金可紀摩崖碑)“라고 붙였어요. 왜냐? 마애비의 내용이 뭐냐면, 처음에는 두보(杜甫)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찬원일인현단가(?元逸人玄壇歌)>라는 두보의 시가 새겨져 있고, 그 다음에는 《열선전》에 실려 있는 김가기 전기가 깨알같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북송(北宋) 때, 만들어졌을 것으로 연대 추정이 되고 있고요, 두 사람 다, 두보의 시에 등장하는, 두보의 시는 은둔한 친구한테 부치는 시입니다. 이 은둔한 친구도 종남산 자오곡에 은둔했어요. 그러니까 김가기도 종남산 자오곡에서 양생술을 닦아서 신선이 되어 승천한 사람이고, 두보의 시와 김가기전이 연관성이 있죠. 둘다 종남산 자오곡에서 신선술을 닦아서 신선이 된 사람에 대한 얘기니까요. 중국 사람들이 이름붙이기를 “김가기 마애비”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 비석은 1987년 6월에 중국 서북대(西北大)의 리즈친(李之勤) 교수 일행이 발견했습니다. 자오곡의 북쪽 입구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1987년 종남산 자오곡 북쪽 입구에서 김가기마애비를 처음 발견한 중국 서북대 리즈친 교수. 사진=필자 제공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기 가서 연구한다고 연구 핑계로 중국 놀러간 거일 수도 있지만, 무지 많이 가서 논문도 많이 나오고 그랬습니다.
 
“김가기 선생이 신선이 돼서 승천한 것은 천하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인데,” 홍만종의 얘기입니다. 홍만종이 《해동이적》에서 <김가기전>을 인용한 뒤에 이렇게 얘기합니다.
 
“중국사람들도 다 신선이 되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김가기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교의 서적을 금기시하여서, 김가기 이름조차 모르니, 이것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가?“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김가기전이 실려 있는 홍만종의 《해동이적》(연세대학교 도서관 소장). 사진=필자 제공
 
신선이 되어서 승천했다는 얘기를 하다니, 황당한 얘기를 하다니, 이렇게 분개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런 황당한 얘기를 매체에 함부로 써도 되겠느냐, 이렇게 비판할 분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만, (기독교의) 《성경》에도 승천했다는 얘기들이 버젓이 기록이 되어서 《성경》이 인쇄되고 있죠. <열왕기 상>에 엘리야가 하늘에서 내려온 병거를 타고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라는 기록이 나오잖아요. 그 기록은 버젓이 돌아다니면서, ‘우리나라에서 신선술을 닦아서 승천한 김가기 같은 사람이 있다.’ 라는 얘기를 기록에 남기는 게 안 된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 거죠. 김가기도 풍류도를 익혔던 사람이다 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당나라에서 과거에 급제할 정도로 유학을 공부했지만, 유학에만 매몰되는 게 아니라, 유학도 공부하면서 도교의 신선술도 같이 닦은 사람이다. 풍류도적인 인물이다.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김운경(金雲卿)이라는 사람인데요, 김운경도 역시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진공과에 합격을 해서, 진사 벼슬을 지냅니다. 그런데 김운경도 귀국했는데,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김운경은 당나라에 다녀온 불교 승려 체징에게 제자의 예를 갖추고 불학을 연마합니다.
 
최치원, 김가기, 김운경 이 사람들의 공통점이 뭐냐면, 다 육두품입니다. 육두품이니까, 신라에서는 진급할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한계가 있고, 신라에서 골품제가 너무 경직돼 있기 때문에 신라에서는 자기 재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신라의 골품제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김운경은 전혀 자료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볼 때, 풍류도적인 인물들인, 최치원이라든가 김가기라든가, 김운경 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에서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최치원은 어쩔 수 없이 《삼국사기》에 열전이 있죠. 당나라에서도 널리 알려진 최치원 같은 사람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김부식도 《삼국사기》 열전에서 최치원의 열전을 썼지만, 김가기나 김운경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이 없고, 김운경이 귀국할 때 당나라 황제가 신라 왕을 책봉한다는 조서를 들고 왔다는 기록 한 건 남아있습니다. 김부식이 사대주의자이기 때문에 당나라가 신라를 책봉한다는 기사는 굉장히 중요한 기록이니까, 빠뜨릴 수 없으니까 그 기록이 한 건 남아있습니다. 이렇게 풍류도적인 인물들에 대해서는 김부식이 질색을 하고 흔적을 안 남기는 거죠.
 
김가기전이 실려 있는 《속선전》. 사진=필자 제공
 
그렇기 때문에 김가기와 김운경 같은 인물이 있었다. 이런 것은 오늘날 우리가 이런 것을 기억해두고 기억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 사이에서 어디에 붙어야 자기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낼 수 있다고 경망스럽게 움직이는 정상배들을 보노라면 물 한 모금 없이 고구마 세 개를 연거푸 삼킨 듯 목이 매입니다. 유학자이면서도 도가와 불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최치원, 김가기, 김운경 같은 분들이 있었음을 상기하면, 경망스런 정상배들이 요즘 끝도 없이 매일 생산하는 뉴스를 보며 얻은 두통과 체증을 씻어줍니다.
 
■필자 소개 / 이상수 / 철학자·자유기고가
2003년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중국철학 전공),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 2003~2006년 베이징 주재 중국특파원 역임, 2014~2018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역임, 2018~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역임. 지금은 중국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고 강의하고 이 내용들을 글로 옮겨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권익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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