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기암 절벽 꼭대기 설치된 망원경을 투과해 펼쳐지는 별세계들. 미스터리 서클과 태초의 우주, 화성, 외계인….
무대 아래 서면, 숨을 죽이고 렌즈를 지켜보다 세계 최초 자전의 원리를 깨우친 갈릴레오가 돼 버리고 만달까. 장대하게 넘실거리는 음(音)의 물줄기가 응축된 인문학 서사와 화학작용을 일으켜 물리적 현현(顯現)이 되는 경험.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드림시어터(DREAM THEATER·드림씨어터)'를 보면서,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디스커버리호를 탄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음표로 그려낸 장편 소설이자, 록의 제단에 선 경배와 같은 순간들. 이 정도면 그야말로 '세계관'이라 할 만 했습니다. '세계관 비슷한 류'가 아니라.
26일 저녁 8시, 서울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린 드림시어터의 6년 만에 연 내한 단독공연 '톱 오브 더 월드 투어(TOP OF THE WORLD TOUR)'. 사진=프라이빗커브
26일 저녁 8시, 서울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린 드림시어터의 6년 만에 연 내한 단독공연 '톱 오브 더 월드 투어(TOP OF THE WORLD TOUR)'.
금속성 음을 마찰시켜 광속으로 질주하는 이들은 무대 뒤 거대 스크린까지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메탈 음악의 진수를 펼쳐 놨습니다. 외계의 상징적인 시각 장치들이 뒤얽히고 첫 곡 '에얼리언(The Alien)'이 스피커에서 터져나오자 대번에 납득이 갔습니다. 공연에 앞서 서면으로 만난 드러머 마이크 맨지니가 '드림시어터의 음악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묻자 "비주얼"이라고 짧고 굵은 답변을 내놓은 이유를.
드림시어터는 1985년 존 페트루치(기타·프로듀스)를 주축으로 버클리음대 출신이 결성한 팀입니다. 특히 원년멤버 존명(베이스)은 한국계 2세이며, 조던 루데스(키보드/피아노), 마이크 맨지니(드럼), 제임스 라브리에(보컬) 모두 걸출한 연주자들이 합을 이루는 팀입니다. 클래식이나 오페라, 재즈의 악곡을 헤비메탈에 접목시켜 드라마틱하면서 웅장한 스케일과 세계 최고 수준의 정교하면서도 고도의 테크닉이 동반된 연주가 특징. 콘셉트와 테마를 바탕으로 엮어내는 장대한 곡 구성은 그야말로 벽돌 두께의 성경이나 철학서에 가깝습니다.
26일 저녁 8시, 서울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린 드림시어터의 6년 만에 연 내한 단독공연 '톱 오브 더 월드 투어(TOP OF THE WORLD TOUR)'. 사진=프라이빗커브
이날도 긴 수염을 휘날리는 존 페트루치가 단상 위 한쪽 다리를 걸치고 기타를 45도로 치켜들 때부터, '지휘'는 시작됐습니다.
페트루치의 으르렁거리는 선 굵은 기타 리프들에 뒤질세라 쉴틈없이 리듬을 산산조각내는 존명의 베이스 난타, 맨지니의 폭주하는 드럼은 화면에 등장하는 전차('Sleeping Giant' 때)만큼이나 뜨거웠습니다. 360도 회전 키보드를 돌려가며 SF 느낌의 몽환적인 전자 선율들을 쏟아내는 조던 루데스의 건반과 해골 장식을 붙인 마이크 스탠드를 쥐고 종횡무진하며 고음을 쏟아내는 라브리에 보컬도 인상적.
"음악은 지구상의 모두를 잇게 해주는 축복의 힘이 있습니다. 세상에 어떤 험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음악으로 이겨냅시다."(제임스 라브리에)
시각 장치를 활용한 메탈 선율은 2시간 내내 주단을 깔 듯 미끄러졌습니다. 사이보그의 미래 세계를 쾌속으로 주파하면('6:00'), 익룡이 날개짓을 하는 선사 시대로 넘어가고('Bridges in the Sky'), 파란 구름을 날아가는 열기구에 맞춰 시원한 기타 사운드가 하늘색으로 물들이는('Losing Time/Grand Finale') 식.
26일 저녁 8시, 서울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린 드림시어터의 6년 만에 연 내한 단독공연 '톱 오브 더 월드 투어(TOP OF THE WORLD TOUR)'. 사진=프라이빗커브
히트곡 '풀 미 언더(Pull Me Under)'가 터져나올 때는 록 황금기를 보낸 40~50대 중년 남성 팬들의 입에서 떼창이 터져나왔습니다. 지난 2017년에 이어 내한 흡사 예비군이나 민방위 훈련장을 방불케 한 압도적인 공연장 풍경이 이색적이었습니다. 남성 관객들이 "오빠"를 외치는 흥미로운 풍경들도 잇따랐습니다.
사실 이날의 백미는 어쩌면 본공연 마지막 곡 '어 뷰 프롬 더 톱 오브 더 월드(A View from the Top of the World)'과 앙코르로 이어진 대곡 '더 카운트 오브 투스카니(The Count of Tuscany)'의 순간. 2시간을 견디다 못한 관객들 중 극소수가 빠져나간 이 시각, 곡당 20분 씩의 마법이 시작됐습니다.
목가적인 대자연과 서서히 지는 노을 풍광, 별안간 이펙터로 길게 늘어지는 페트루치의 자장가 같은 기타 선율, 긴 챕터들을 마무리 하는 그 소설 같은 음악의 대단원.
26일 저녁 8시, 서울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린 드림시어터의 6년 만에 연 내한 단독공연 '톱 오브 더 월드 투어(TOP OF THE WORLD TOUR)'. 사진=프라이빗커브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