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전보규 기자] "믿고 기다려도 되는 거야?"
지난달 제네시스 G80을 계약한 40대 직장인 강모씨는 최근 아내의 핀잔 섞인 말을 듣고 고민에 빠졌다. 동급의 수입차를 원하던 아내를 설득해 G80을 사기로 했는데 현대차 직원의 일탈 행위가 두드러지면서 품질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불성실한 근무태도를 보이거나 비정상적인 행위를 한 사례가 지속적으로 알려지면서 소비자의 불만과 불신이 커지는 모습이다. 자동차 업계 안팎에서는 오랜 기간 누적된 잘못된 악습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라며 하루빨리 근절하고 쇄신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미지 추락을 피하기 어렵고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최근 울산공장에서 생산한 차량을 무단으로 사용한 직원 2명에 대해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들은 신차를 공장 내부에서 '카풀' 용도로 여러 차례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실이 전해진 뒤 자동차 커뮤니티에는 카풀에 이용된 것으로 알려진 차종의 출고를 기다리고 있는데 계약 취소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고객의 차량을 대하는 태도를 봤을 때 품질을 믿기 어렵다는 이유다.
사진/뉴시스
현대차 공장에서의 부적절한 행태는 계속 드러나고 있다. 현대차는 2~3명이 해야 할 작업을 1명이 하고 나머지는 쉬는 '묶음 작업'을 한 사례를 발견하고 관련 직원 50명에게 정직과 감봉, 견책 등의 징계를 내렸다. 여러 명이 할 일을 혼자 하다 보면 품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지만 일부에서 관행처럼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에는 근무시간을 제대로 채우지 않고 근무지를 이탈하거나 조기 퇴근한 직원 300여명이 감봉 등의 징계를 받았지만 지난달에도 아산공장 직원 1명이 수개월간 상습적인 조기 퇴근으로 해고됐고 다른 1명은 정직 처분됐다. 근무시간에 낚시를 하려고 근무지를 벗어난 직원도 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평소에도 부적절한 근무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해왔고 최근 밖으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일탈이 늘어난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외부에서는 장기간 누적됐던 문제가 터져 나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탈 행위가 지속적으로 적발되고 있고 수십~수백명이 한 번에 징계를 받는 일이 생긴다는 것은 현장에서 이런 행위가 일반화돼 있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차 공장 직원의 부적절한 근무 태도를 보여주는 일은 계속 있었다. 지난해 말 불거진 '와이파이 사태'가 대표적이다. 회사는 울산공장 내 와이파이 사용을 휴게시간과 식사 시간으로 제한하기로 했는데 이에 대해 노조는 항의 집회를 열었고 나중에 철회하기는 했지만 특근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회사의 취지는 작업 중 휴대폰으로 유튜브 등을 시청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이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안전사고와 불량 발생 가능성을 낮추려는 것이었다.
당시 산업계에서는 공장 내에 와이파이가 있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와이파이를 두고 노사갈등이 생긴다는 사실이 신기하다는 시각도 있었다.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거나 휴식 시간을 확보 또는 조기 퇴근 등을 위해 작업 순서가 아닌데 생산 라인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작업을 몰아 하는 '올려치기' 등도 드러났다. 차량의 벌어진 틈을 작업자가 발로 차는 영상이 유출된 적도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다른 글로벌 완성차업체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작업 방식"이라며 "부품을 조립하고 점검하는 과정이 품질향상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이 제기하는 품질 문제와도 무관하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현대차와 관련한 조립 불량 사례는 지속해서 등장한다. G80의 경우를 보면 후면 램프가 비대칭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색상이 다른 패널이 조립된 것도 있다. GV80은 앞바퀴와 뒷바퀴 휠이 다르게 장착되거나 도장 불량 차량도 출고됐다. 그랜저도 단차, 대시보드 조립 불량 등의 문제가 나왔다.
현대차 노사의 자정 노력은 진행 중이다. 경영진과 노조는 지난달 24일 '품질혁신을 위한 노사 공동선언'을 발표했고 2020년 임금 교섭을 하면서 고품질이 고객 확보와 고용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데 공감하고 완벽품질 확보 방안을 마련해 추진하기로 했다. 올해 1월부터 업무 시간에 와이파이를 차단하는 데도 합의했다. 노조는 조합원의 징계에 대해서도 두둔하지 않는 등 뚜렷한 태도 변화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교수는 "회사가 노조와의 갈등을 피하고자 오랜 시간 묵인·방조하고 노조원들이 이를 악용하면서 일상화된 문제라 노사 양측이 좀 더 확실한 개선에 나서야 한다"며 "아무리 좋은 제품을 개발해도 생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미래도 경착륙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