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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재벌기업의 곁순떼기
2020-10-07 06:00:00 2020-10-07 06:00:00
대한항공의 서울시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둘러싼 서울시와 대한항공의 대립이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조정'을 통해 해결하기로 했다고 지난달 21일 밝힌 것이다. 견해차가 좁혀졌고 조만간 합의를 도출될 것이라고 한다.
 
서울시는 쟁점이 되는 땅에 문화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한때 강제수용 방침까지 정했다. 이에 맞서 대한항공은 문화공원 조성을 위한 행정절차를 중단 시켜 달라며 지난 6월 국민권익위원회에 고충 민원을 냈다. 서울시의 계획은 부지 매각을 막는 사실상 '알박기'라는 것이 대한항공의 주장이었다.
 
대한항공은 직접 매각하겠다며 입찰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응찰자가 없어 매각은 실패했다. 지금 같은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수천억원을 호가하는 땅의 매수자를 찾기란 역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실 그 땅은 대한항공에 어울리는 자산이라고 보기 어렵다. 왜 그런 땅을 굳이 사들이고 애지중지해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럼에도 대한항공은 이번 코로나19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송현동 땅을 계속 움켜쥐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여유 부리던 시절은 가버렸다. 1조2000억원의 구제금융까지 받은 마당에 계속 버틸 수야 없는 일이다. 어쨌든 그런 '무익한' 땅을 이제라도 처분하겠다고 결심했으니 다행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정리하고 재무구조 개선에 보태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두산그룹이 소유하던 골프장도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은 마찬가지다. 발전설비나 담수화플랜트 등 본래의 사업을 열심히 하면 되는데 굳이 골프장까지 소유할 이유는 없다. 임직원들이 업무를 위해 간혹 골프장에 가야 한다면 필요한 만큼 회원권을 사두면 된다. 결국 재무구조 위기를 맞이하자 골프장도 매각하기로 했다. 매우 잘한 일이다.
 
이 기회에 프로야구단이 과연 필요한지도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예전에 맥주 회사를 거느리고 있을 때는 홍보를 위해 야구단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계획대로 친환경 에너지 사업중심으로 재편된다면 B2B 사업이 중심을 차지한다. 따라서 프로야구단의 필요성은 줄어든다.
 
다만 세상일을 오로지 '효율성'의 측면에서만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그룹의 이미지를 높임과 동시에 국민에게 여가활용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회공헌 차원에서 유지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두산 스스로가 깊이 생각해서 선택하면 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 불확실성이 여전히 짙다. 이에 따라 재벌들이 비핵심 자산과 사업 정리작업을 벌이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이나 CJ, 대림산업, 금호전기 등 여러 재벌기업이 걸림돌로 작용하는 사업과 자산을 내놓았다.
 
정부도 기업의 자산매각을 지원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한국자산관리공사는 기업의 유휴자산을 사들이기 위해 캠코채를 발행해서 2조원 안팎의 자금을 조성한다. 재무구조가 열악한 기업에는 '천상의 만나'나 다름없다. 재벌들이 무수익 자산을 정리하겠다고 결심만 하면 된다.
 
사업구조 재편에 대한 지원도 강화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23일 사업재편계획심의위원회를 열어 액정표시장치(LCD) 생산 종료를 선언한 삼성디스플레이의 사업재편을 승인했다. 차세대 퀀텀닷(QD) 디스플레이 산업에 진출하는 것을 돕겠다는 것이다.
 
멀쩡한 대기업이 사업재편 승인을 신청하고 정부가 승인하는 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규제완화와 정부간섭 배제를 요구한 재계의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어서 어색하다. 그렇지만 일단 벌어진 일이니 좋은 성과라도 냈으면 좋겠다.
 
코로나19 사태는 방만했던 한국 재벌에 큰 위기와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잘만 활용하면 환골탈태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불필요한 자산과 사업이 없는지 다시금 차분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리하게 끌고 왔던 것이 있다면 지금 깨끗이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의 오랜 속담처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법이다.
 
필자는 경기도 양평으로 거주지를 옮기고 작은 텃밭을 가꾸게 됐다. 농작물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곁순을 떼주고 곁가지를 쳐내야 한다. 그것이 사물의 지엄한 이치다. 그 이치를 어기면 대가를 치르게 된다.
 
지금 열악한 재무구조가 드러난 재벌들의 경우 바로 곁순떼기와 가지치기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다. 지금이야말로 곁순떼기와 가지치기를 제대로 할 때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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