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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내 집 마련? 할 말이 없네요
2020-08-10 06:00:00 2020-08-10 06:00:00
재테크전문기자라는 흔치 않은 직함을 갖고 있다. 10년 넘게 재테크 분야를 전문으로 취재하고 기사를 쓴 이력 덕분이다. 고백하자면, 그럼에도 나는 지난 두어 달 동안 재테크의 큰 축인 부동산 관련 기사를 쓰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급등하는 부동산 시세를 잡겠다며 온갖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대한 시장의 반응도 뜨거워 이를 전하는 것만으로도 매일 몇 꼭지씩 도배해도 모자를 판이다. 
 
하지만 정부 당국이 내놓는 정책을 전하거나 그에 대한 건설·부동산업계의 반응과 의견, 수요자들의 하소연을 전하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니다. 지금의 모든 상황을 종합해서 내 집 마련을 하려면, 전셋집을 구하려면, 투자로 접근하려면, 이런 걸 취재 분석하고 합리적인 대응 방안을 제안하는 것이 재테크 기자의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분양가 상한제 ‘덕분에’ 나오는 족족 청약자가 떼로 몰리는 서울 수도권과 일부 지방 대도시 분양 말고는 자신 있게 “사세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수십 번 보완대책이 나오는 마당에 5년 후, 10년 후를 내다보며 내 집 마련을 위해 이렇게 준비하자는 말은 또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강남 물건 위주로 노리세요”라는 말은 “국영수 위주로 열심히 공부하면 서울대 갈 수 있어요”와 다를 게 없다. 그러니 지금은 그저 “일단 지켜보자”는 맥 빠지는 한마디 외엔 꺼낼 수 있는 말이 없는 것이다. 
 
폭격기로 퍼붓듯 쏟아내는 부동산 정책, 나만의 착각이겠지만, 행간에서 어떤 감정마저 느껴지는 대책들을 마주하면 한숨이 나온다. 
 
5년 전쯤 학교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조카에게 열심히 1억원을 모아서 직장에서 가장 가까운 1기 신도시 작은 아파트를 전세 끼고 사라고 권했었다. 갭투자가 아니라, 내 집 마련 자금을 모으기 전에 집값이 더 오를 테니까 일단 전세보증금을 레버리지 삼아 선취매하란 조언이었다. 지금은 똑같이 말할 수 없다. 집값이 올라 전세를 끼고 사려면 아무리 낡고 작아도 최소 2억원은 필요하다. 저축해서 1억원을 더 모으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반년 전쯤 결혼한 삼십대 중반의 지인은 오직 청약 당첨을 위해 직장에서 꽤 먼 곳으로 이사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예상하는 몇 년 후 그 지역에서 공급될 아파트가 얼마나 될지, 신혼부부 특별공급 물량과 경쟁률이 어느 정도일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그나마 신규분양이 일반 시세보다는 낮아서 그 방법이 아니고서는 아파트를 장만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에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의 배팅이 맞기를 바랄 뿐이다. 
 
새내기들의 내 집 마련에는 교과서 같은 길이 있었다. 이를 위해 준비할 것들도 거의 정해져 있었다. 지금은? 보다시피 각자도생하겠다고 난리다. 불과 얼마 전까지,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지금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버는 족족 쓰는 통해 우려를 낳았던 그 젊은이들이다. 이들을 투기판으로 내 몬 책임은 누가 지어야 할까?
 
청와대 비서진 5인이 사표를 냈다. 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을 지는 모양새인데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당장 ‘청와대 높은 자리보다 아파트가 더 중요해서’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지금은 정부에서 무슨 말을 해도, 설령 부동산과 전혀 상관없어도, 모두가 부동산으로 통할 것이다. 
 
유동성이 급증해 온갖 자산 가격이 오르는 것은 정부 탓이 아니다. 하지만 아파트값이 이렇게나 뛴 것이 정말로 유동성 탓이기만 할까? 
 
정부의 철학과 신념은 국민을 위한 것일 게다. 철학과 신념을 지키기 위한 정책은, 적어도 지금은, 쓸모없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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