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여사 별세)'여성운동가'에서 '정치인의 아내'로
마흔에 DJ와 운명적 결혼…남북회담·노벨상 '최고의 순간'
입력 : 2019-06-11 14:49:01 수정 : 2019-06-11 14:49:01
[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희호 여사는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로 활약했다. 그는 의사였던 아버지 이용기씨와 어머니 이순이씨의 6남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기독교 집안에서 유복하게 성장해 이화여고와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1950년 서울대 학위를 얻은 후에는 미국 램버스대와 스카렛대에서 유학했다. 역대 영부인 가운데 학력이 가장 높다. 
 
1958년 귀국한 이 여사는 대한YWCA 총무를 맡아 본격적으로 여성운동의 길에 들어섰다. 가부장적 질서가 강한 시대 상황에서도 '혼인신고를 합시다', '축첩자를 국회에 보내지 맙시다'라는 구호를 만들어 파격적인 여성운동에 나섰다. 
 
여성운동에 전념하던 이 여사는 1962년 만 40세의 나이로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하면서 '정치인 아내'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1963년 3남 홍걸씨를 낳았다. 결혼 후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결혼 열흘 만에 김 전 대통령이 '반혁명 혐의'로 체포된 것은 물론, 1971년 의문의 교통사고, 1972년 미국 망명, 1973년 납치사건 등 군사정권 내내 감시와 탄압에 시달렸다. 
 
이후 1997년 네 번째 도전 끝에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의 꿈을 이루면서 이 여사는 청와대 안주인이 됐다. 그는 70대 후반의 고령임에도 아동과 여성 인권에 관심을 두며 활발한 활동을 했다. 김 전 대통령 퇴임 후에도 김대중도서관 개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무죄 등 주요 순간마다 늘 남편과 함께 했다. 2009년 8월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47년의 부부 생활은 끝이 났다. 하지만 서거 이후에도 햇볕정책 계승자로서 활발한 활동과 함께 매년 노벨평화상 수상 축하 행사를 개최하는 등 남편의 유업을 잇는 데 힘썼다. 이 여사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남편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기억했다.
 
지난 10일 97세를 일기로 별세한 이희호 여사. 사진/뉴시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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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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