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스포츠에이전트 아직 돈 안 되지만 재밌고 의미 있어"
"개업은 살면서 가장 잘한 일…누가 봐도 괜찮은 변호사일 때 나가는 게 맞아"
"꿈은 명사 아닌 동사…그냥 변호사 넘어 어떤 변호사인가가 중요"
입력 : 2019-04-24 06:00:00 수정 : 2019-04-24 08:40:00
[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지난 1997년 개봉한 영화 ‘제리 맥과이어’는 국내에 스포츠 경기뿐만 아니라 스포츠와 매니지먼트를 결합한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화두를 던졌다. 20여년이 흐른 현 국내 스포츠 에이전트 시장은 이전보다 발전했지만, 아직도 스포츠 본토인 미국·유럽보다 크게 열악하다. 이런 현실과 맞물려 변호사 업계는 2만명 시대·무한 경쟁 체제를 맞았고 나만의 특기가 필요한 때가 됐다. 잘 나가는 대형로펌을 떠나 ‘나만의 분야’로 스포츠 에이전트를 선택한 박건호 변호사의 도전은 그래서 더 특별하게 보인다. 여전히 도전을 거듭하고 있는 박 변호사를 지난 18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창천 사무실에서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 주> 
 
박건호 변호사가 지난 18일 법무법인 창천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광연 기자
 
법조인이 된 계기는 무엇인가.
 
변호사인 아버지(박도영 변호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많은 경험을 했다. 스포츠·연예·형사 사건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 인생을 간접 체험하며 좋은 결과를 내면 평생 은인이 될 수도 있어 매력을 느꼈다. 이왕 사는 거 재밌고 의미 있는 변호사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했다. 일할 때 중요하게 본 게 재미가 있어야 하고 의미도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는데 변호사는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법리도 공부해야 하며 새로운 판례도 만들어낼 수 있어 비슷한 매력을 느꼈다. 
 
법무법인 충정을 떠나 개업한 이유는.
 
파트너변호사 체계도 매력 있었지만, 뭔가를 개척하려면 지금 아니고 더 나이 들면 못 움직일 거 같았다. 6년 차인 2017년 2월 법무법인 충정을 나온 뒤 개업 전 필드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어서 5개월가량 축구선수 출신 지인과 경남 통영·창원·김해 등에서 열린 중학교 축구대회를 지켜보며 계약도 맺고 에이전트 업무를 했다. 축구선수 전문 에이전트인 '굿 스톤즈'를 먼저 설립하고 선수들을 관리했는데 본업이 변호사이니까 뜻이 맞는 좋은 변호사들과 함께 법무법인 창천을 설립했다.
 
왜 하필 스포츠였나.
 
스포츠가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었기 때문이다. 스포츠산업에서 에이전트를 하면 소송·분쟁이 많이 생기는데 나는 변호사가 주 업이기 때문에 그럴 일도 없고 선수에게 법률 문제가 생기면 다 보호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포츠 업계도 투자가 필요한데 이를 유치할 최적의 조건을 가진 에이전트가 바로 변호사라고 봤고 상당히 의미가 있을 거 같았다. 축구 자체를 워낙 좋아해서 수수료를 많이 받을 마음은 없었고 일을 하다 보니 업계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됐다. 일이 재미가 있고 의미도 있으면 신나지 않나. 한정적인 일만 하다가 밖에 나가서 선수들도 보고 해외 클럽 관계자랑 한국축구가 나아갈 방향에 관해서도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 에이전트를 하면서 돈을 번 건 없지만 지금 한국프로축구연맹 마케팅 자문위원으로도 일하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생기니까 사람들을 많이 남긴 거 같다. 아직 결혼을 안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계속 생각나면 해야 한다는 마음이라 재밌게 살고 의미가 있으면 좋다. 
 
박건호(왼쪽) 변호사가 손흥민(가운데)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박건호 변호사
 
국내 스포츠 에이전트 시장은 ‘파이’가 크지 않다.
 
해보고 싶은데 안 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뛰어들었는데 처음에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에이전트를 시작하면 다 잘될 줄 알았는데 선수들을 일일이 관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선수 에이전트 중심으로 하다가 창천 설립 후에는 더 넓게 보자는 생각으로 내가 법률고문으로 있는 회사 중에서 스포츠 니즈가 있는 기업과 창천 브랜드 가치를 올리고 국내외 축구 구단과 투자 기업을 중개하는 업무를 했다. 내가 법률고문으로 있던 모 회사가 K리그 모 구단의 스폰서로 참여하기도 했고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의 국내 모 회사 광고 중개를 한 적도 있었는데 처음에 이런 것을 어떻게 예측했겠나.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분야는 부동산이지만, 남들이 해보지 않은 내 분야·고유성이 생긴 거 같다. 부당하게 방출되거나 트레이드되는 선수들이 많은 걸 보면 스포츠 에이전트 시장에 변호사는 꼭 필요하다. 지금 균열된 부분을 내가 채울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의미를 찾을 거면 도전하는 게 좋다고 보는데 '제리 맥과이어'를 생각해 당장 급하게 지금 있는 파이를 가져가겠다는 생각이면 미국처럼 시장이 크지 않기에 아닌 거 같다. 의미와 재미를 찾고 싶으면 가장 괜찮은 분야 중 하나가 아닐까 본다.
 
개업 3년 차다. 어느 정도 안정됐나.
 
기존에 계셨던 훌륭한 변호사들과 새롭게 대형로펌에서 오신 변호사들, 어쏘 변호사들 덕에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변호사가 늘었고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선수를 관리하는 에이전트 업무는 실질적으로 현재 중단한 상태인데 다시 할지 고민하고 있다. 변호사의 힘든 점은 세 가지라고 보는데 먼저 사람 말을 잘 들어줘야 하고 두 번째는 결과를 내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에이전트도 마찬가지다. 실력으로 선수를 이적시킬 수 있는 게 아니고 2017년을 제외하고 지난해에는 아예 수수료를 받지 않았지만, 아무리 돈을 안 받아도 결과까지 신경 쓰는 게 쉽지 않았다. 현재는 일반 소송 외에 스포츠 관련해서는 국내 기업이 해외 클럽 스폰서로 들어가는 것을 연결하는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개업을 후회하지는 않나.
 
살면서 내린 결정 중 가장 잘한 일 같고 매번 성장하는 것 같다. 로펌에 있을 때는 의뢰인들이 맡긴 일에 대한 무게를 잘 못 느꼈는데 여기서 의뢰인과 더 소통을 많이 하다 보니 사건이 주는 무게에 대해 더 체감하고 내가 더 좋은 변호사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훨씬 더 많이 한다. 변호사도 축구선수처럼 팀플레이가 된다고 보는데 여기서는 팀플레이를 한다. 분야가 다른 친구들과 같이 일한다는 게 너무 좋고 사건이 들어올 때마다 같이 한다는 것도 재밌다. 일이 재밌고 의미도 있고 행복하다.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변호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면 지금은 어떤 변호사가 되는 게 중요하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어디 가서 내가 어떤 변호사라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나는 어떤 기업이든 스포츠 분야이든 사람들에게 믿을 수 있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
 
개업을 고민하는 변호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시작할 때부터 나는 다르게 살겠다고 개업하는 것보다 사건을 맡길 수 있고 누가 봐도 괜찮은 변호사가 됐을 때 나가는 게 맞다. 축구도 달리기를 먼저 해야 하고 기본 드리블을 먼저 해야 하는 것처럼 처음에 소장 쓰고 맞춤법 보는 것을 틀리면 안 된다. 변론을 잘하고 소장 잘 쓰고 포인트를 지적할 수 있는 단계에서 나가야지 한번 재밌게 살고 싶고 돈 좀 벌고 싶다고 나가는 것은 의뢰인들도 바보가 아니기에 실력이 없으면 사건을 맡기지 않는다. 최소 3~4년 시간이 필요하고 그 전부터 특수성을 찾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계속 공부해야 한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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