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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암호화폐 또 제재…"거래소 옥죄기"
국민·농협은행, 암호화폐거래 관리 미흡으로 금감원 '경고'
은행권 우회 압박에 암호화폐 거래소, 실명계좌 개설 길 막혀
2018-12-05 18:10:46 2018-12-05 18:10:46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에 암호화폐(가상통화·암호화자산) 거래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라고 주문하면서 암호화폐거래소의 신규계좌 개설 길이 막혔다.
 
당국은 ‘자금세탁’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은행권이 몸을 사리면서 사실상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옥죄기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회적인 경고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원화마켓을 추진하던 거래소의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4000달러까지 붕괴된 지난달26일 서울 한 가상화폐거래소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국민은행과 농협은행에 암호화폐 관련 업무 절차가 미흡하다며 개선 처분을 내렸다. 경영유의 및 개선은 금융회사의 주의 또는 자율적 개선을 요구하는 행정 지도적 성격의 조치다.
 
국민은행은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암호화폐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을 반영하고 있지만, 일부 고객유형과 거래형태는 의심거래 추출 기준에서 제외되는 등 미흡한 점이 있다고 지적됐다. 또 암호화폐 취급업소(거래소)가 법인·단체 또는 개인 명의의 일반계좌를 개설하는 경우, 거래 목적과 거래자금의 원천이 암호화폐와 관련된 금융거래인지 여부 등을 확인하도록 요구받았다.
 
농협은행의 경우 암호화폐 관련 의심거래 추출기준 설계 시 전체 거래소 계좌가 아닌 일부 실명확인서비스 계약을 체결한 거래소의 계좌에만 적용하고 있는 점이 문제로 지목됐다. 당국은 실명확인서비스 계약을 맺지 않은 거래소에 대해서도 의심거래 추출기준을 적용하도록 지시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해외 송금 거래 등 암호화폐와 관련한 의심스러운 거래가 추출되도록 시스템을 개선·보완하라고 지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블록체인업계에서는 당국의 이번 제재가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자금유통 창구인 은행 거래가 중단되면 투자자 자금을 받을 방법이 없는 탓이다. 사실상 은행을 통해 암호화폐 거래소의 자금줄을 쥐고 있는 셈이다.
 
실제 올해 초 국민·신한·KEB하나·농협·기업·광주은행 등 6개 은행이 암호화폐 거래실명제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거래소와 계약을 맺고 실명계좌를 발급하는 곳은 신한(코빗)·농협(빗썸·코인원)·기업은행(업비트) 등 3곳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은행권이 암호화폐 거래 관련 신규 가상계좌 발급을 꺼리면서 신규 투자자 진입은 제한된 상태다.
 
소속을 밝히기 거부한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암호화폐 거래소로부터 계좌발급 요청이 들어오긴 하지만, 아직까진 발급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정부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뚜렷한 정책을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자금세탁 방지를 강화하라는) 행정지도가 내려왔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원화(KRW)거래를 준비하던 암호화폐 거래소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은행권의 태세가 소극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이달 중순 원화마켓 오픈 시점을 공개하기로 했던 후오비코리아의 경우, 시장 상황을 주시하며 실명계좌 발급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후오비코리아 관계자는 “연내 원화마켓 오픈을 목표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시중은행과 계좌 발급을 타진 중인 암호화폐 거래소 한 관계자 또한 “계좌 발급을 위한 준비는 이미 끝난 상태”라면서 “(은행과) 얘기는 계속하고 있지만, 계좌를 내주지 않고 있어 법인계좌나 코인 간 거래만 지원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은행과 거래소 간 법정 다툼도 일어나고 있다. 앞서 국내 암호화폐거래소인 코인이즈와 캐셔레스트 등은 농협, 신한은행을 상대로 입금정치조치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은행이 암호화폐 거래소의 법인계좌 개설을 거부하거나 거래를 정지하는 사례가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지난 10월 거래소의 손을 들어줬으나, 지난달 농협이 항소하며 재판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업계에서는 단순 행정조치가 아니라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명확인 계좌 서비스가 사실상 중단된 상황에서 법인계좌 등을 기반으로 영업을 시작하며 오히려 자금세탁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블록체인 업계 한 관계자는 “거래소에서는 실명계좌를 사용할 수 없으니 차선책으로 법인계좌를 선택한 것인데 이는 오히려 거래소 난립과 자금세탁 부작용을 더 키울 수 있다”며 “거래소에 대한 제도적·법률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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