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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혜수 “피가 꺼꾸로 치솟는 느낌이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속 통화정책팀장 ‘한시현’ 열연
“IMF 협상 내용은 100% 사실…너무 놀랐고 화났다”
2018-11-29 00:00:00 2018-11-29 08:38:32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건 개념 자체가 다르다고 우선 선을 그었다. 배우 김혜수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시나리오를 읽은 뒤 피가 꺼꾸로 치솟는 느낌을 받았단다.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됐으니 짜릿함과 느낄 법도 했다. 하지만 그는 화가 나다 못해 처참한 기분이 들었단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대한민국은 이 영화 제목처럼 부도가 났다. 나라 자체의 존립이 불투명해졌던 시기다. 자영업자는 고사하고 중소기업을 넘어 대기업들까지 줄줄이 부도를 맞았다. 이 영화 속 내용은 거의 사실에 가까운 상황을 담았다. 특히나 영화 속에 등장한 IMF가 대한민국에 구제 금융 지원을 전제로 요구한 조건은 완벽한 사실이라고. 2018년 현재의 대한민국 경제 기조를 고스란히 담은 조건 내용이었다. 놀라웠다. 이 내용이 사실이었단 게. 김혜수 역시 그랬단다. 그래서 그는 이 영화는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는 신념으로 임했다고.
 
김혜수. 사진/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김혜수와 만났다. 언제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김혜수다. 사실 대부분의 대중들은 김혜수에게 이런 모습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넘겨 짚고 갈 부분은 김혜수만큼 예의 바르고 김혜수만큼 상대방을 배려하고 김혜수만큼 인터뷰어에게 집중하고 김혜수만큼 인터뷰이로서 최선을 다하는 배우는 없단 점이다. 이건 언제나 그래왔다. 그래서 그가 연기한 모든 배역에는 진심이 묻어나 있다. 이건 그와 단 한 번이라도 작업을 해 본 영화 관계자 동료 배우라면 부인 못한 팩트다.
 
아휴(웃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저도 워낙 어릴 때 데뷔를 했잖아요. 글쎄요. 뭐랄까.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것은 알고 있죠. 이건 배우를 하는 누구라도 알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이번에 함께 해 주신 뱅상 카셀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던 지점이고요. 그 엄청난 분이 우리 영화에? 너무 놀랐죠. 하지만 막상 경험한 그 분은 예의와 존중이 넘치는 분이셨어요.”
 
김혜수. 사진/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대중들에게 아무래도 가장 흥미로운 점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배우 뱅상 카셀의 출연이었다. 김혜수에게도 이 점은 굉장히 놀라웠다고. 자신 역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배우이지만 그는 자신에게도 우상이자 연예인이었다고. 더욱 고맙기도 하고 놀라웠던 점은 단순히 한국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아닌 IMF란 소재에 매료됐었단 사실이었다고.
 
만약 저라면 그랬을까?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 분은 현장에서 저와 꽤 거리를 뒀던 분이잖아요(웃음) 캐릭터적으로도 그랬고. 사실 말도 잘 안 통하고 하하하. 조금이라도 이 엄청난 분이 연기를 어떻게 하나 궁금하기도 했죠. 사실 제가 눈에 굉장히 나빠요. 그래서 촬영이 끝나면 모니터로 달려가 그 분의 세밀한 부분까지 관찰했어요. 그렇게 본 그 분은 화면에서 보이지 않은 표정과 행동까지도 계산을 하는 모든 게 완벽했던 분이란 점이죠.”
 
김혜수. 사진/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그런 엄청난 대배우의 반대편에 선 인물이 바로 김혜수가 연기한 한시현이다.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이다. 1997년 당시 시대상에서 여성으로서 가장 성공한 캐릭터의 표상처럼 그려졌다. 대한민국 국가 부도 사태를 유일하게 예견한 인물이다. 하지만 여자란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주장은 묵살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한시현은 어떻게 해서든 모든 것을 뒤집기 위해 노력하고 고군분투한다.
 
당연히 창조된 인물이에요. 하지만 막연히 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런 분이 한 분쯤은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어요. 우선 한시현은 조직 내에서 실력으로 승진한 여자라고 봤죠. 남성 중심의 조직에서 자신의 생각을 발언할 수 있는 그런 위치. 그런 인물이 협상장에선 IMF총재와 맞서잖아요. 그 장면에선 좀 누그러트린 점도 있기는 해요. 너무 전투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죠. 전사로 보여지기 보단 신념을 지키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어요.”
 
김혜수. 사진/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가장 어려웠던 점은 인물의 해석이나 캐릭터의 표현은 아니었다. 일반인들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알 수도 없는 경제학 용어들이 대사를 통해 쏟아진다. 김혜수는 한 나라의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실무자를 연기한다. 이 어렵고 생소한 대사를 자연스럽게 소화하기 위해 대사를 외우고 또 외우며 입에 붙였다. 물론 외우는 것만으론 불가능했다. 개인 교습까지 받았다고.
 
그 지점이 가장 어려웠어요. 너무 생소한 단어들의 조합이잖아요(웃음). 그래서 제작진에 따로 쉽게 풀어낸 자료를 요청했는데 거의 책 수준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하하하. 두께가 어마어마했죠. 그걸로 공부를 했는데 이렇게는 답이 안나오겠다싶었죠. 결국 선생님 한 분을 섭외해서 따로 강의를 들었어요. 경제에 전무한 수준의 사람이 들어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로 교육을 부탁드렸죠. 그래도 촬영 때는 입에 안 붙어 고생 많았어요. 아휴.”
 
김혜수. 사진/제공-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그는 이 영화가 흥행 여부를 떠나서 정말 많은 분들이 알아야 할 내용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출연 여부는 상관없이 정말 잘 만들어지고 또 재미있게 만들어 지길 바랐단다. 1997년 그 날을 기점으로 우리 생활은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서도 안되지만 그 날 어떤 일이 사건 뒤에서 벌어졌는지 꼭 알아야 할 것이라고 봤다고.
 
전 직업적으로 그 날의 피해를 본 사람은 아니에요. 하지만 너무 놀라웠고 부끄러웠어요. 영화적으로 응축되고 창조된 내용도 많지만 실제로 영화 속 협상 내용은 완벽한 팩트라고 하더라고요. 이젠 저도 기성세대인데 이렇게 몰랐나란 생각에 부끄러웠죠. 너무 많은 분들이 피해를 봤잖아요. 영화 속에서 투신 자살하는 그 짧은 장면을 찍을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저 분의 심정이 어떨까. 그 당시 삶은 포기한 분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니 왜 그런 극단적 생각을 결정했을까. 우리가 몰랐던 그 지점으로 돌아가는 거죠. 이 영화가. 원인도 이유도 모른 채 이렇게 살아가는 건 너무 억울하단 생각이 들어요. 그렇잖아요.”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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