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법보다 주먹?…멍든 가상화폐
입력 : 2018-05-17 06:00:00 수정 : 2018-05-17 06:00:00
“은행 영업점이나 모바일에서 입금하고 나서 그 돈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나요?”
 
지난 11일 검찰이 업비트를 압수수색했다는 소식이 나온 직후 만난 가상화폐 업계 한 관계자의 발언이다. 업비트가 실제 보유하고 있지 않은 가상화폐를 전산상으로 있는 것처럼 꾸미는 이른바 ‘장부거래(사기 및 사전자기록위작행사)’ 혐의로 수사를 받은 게 황당하다는 평가다.
 
백아란 금융부 기자
은행에 돈을 맡겨 놓은 후 그 돈이 어디에 있든 돈을 찾으면 되는 것처럼, 가상화폐 또한 계좌 역할을 하는 ‘전자지갑’에 맡기거나 업비트를 중개로 비트렉스(미국 가상화폐 거래소로 업비트와 독점 제휴를 하고 있다)에서 거래한 후 언제든 출금할 수 있으면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시장에서도 검찰이 제기한 업비트의 장부거래가 사기죄의 구성요건 중 하나인 ‘손해 발생’을 입증할 수 없어 법적인 책임을 묻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사정당국이 코인원, HTS코인, 빗썸 등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해 잇달아 수사를 진행하면서 가상화폐 시장 자체가 ‘사기·횡령’과 ‘투기’라는 프레임에 갇힌 모습이다.
 
정부 차원에서 뚜렷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각종 규제와 압수수색 등만 이어지며 가상화폐 투자는 곧 사기나 투기에 해당한다는 관념이 생기고 있어서다. 문제는 이같은 고정관념이 시장에 대한 신뢰도 하락과 관련 산업의 퇴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실제 최근 가상화폐 시장은 업비트 압수수색 등의 여파로 전반적인 하락세를 그리고 있으며, 이로 인해 투자자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물론 업비트를 비롯해 어떤 거래소이든지 계좌에 들어간 고객 돈을 횡령하거나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한다면 가차없이 솎아내야 한다. 하지만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서 가상화폐를 사실상 가상자산으로 인정하고, 블록체인 산업을 육성하자는데 뜻을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철퇴만 내리는 정부의 모습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 정부는 지난해 9월 암호화폐공개(ICO) 전면 금지와 실명제 도입 등 일방적인 규제책만 제시한 후 8개월이 넘도록 명확한 정의조차 내리지 못한 상태다. 가상화폐가 화폐인지, 금융자산인지, 디지털 자산인지 구분도 하지 않은 셈이다. 법률적, 제도적 정비가 없다 보니 투자자보호책도 마련되지 못하고 답보하는 형국이다.
 
한국블록체인협회 등 거래소 차원에서 자율적인 규제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큰 틀의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에서 시장안정을 도모하기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가상화폐 설립 기준과 운영, 감독에 대한 별도의 정책이 없어 오히려 사기나 횡령 등도 쉽게 일어날 소지가 존재한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화폐 산업에 대한 이해 없이 징계만을 감행한다면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퇴보를 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가능성 있는 새로운 소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과 반대로 우리나라는 정부가 꽁꽁 틀어막고 있는 보수적인 시장으로 인식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주먹이 아닌 제도의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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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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