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승무원이 쓰러진다)①스케줄에 울고 승객에 울고…'진급' 눈치에 하소연도 못해
대한항공·아시아나·에어부산 스케줄 입수해 분석해보니…
월 평균 90시간 비행, 조종사 보다 20여시간 많아
휴일, 에어부산 6일-대한항공 7일-아시아나 10일 순
2018-03-28 06:00:00 2018-03-28 06:00:00
[뉴스토마토 구태우 기자] #. 국적항공사 승무원 이지연(가명)씨는 지난달 중국행 첫 비행(오전 8시)에 나서기 위해 새벽 4시 집을 나섰다. 출근 준비를 위해 1시간30분 전부터 일어나 화장을 했다. 새벽 바람이 매서웠다. 오전 5시 인천공항에 도착한 그는 즉시 비행 준비를 시작했다. 브리핑에 참석했고, 기내 장비를 점검했다. 동료 승무원과 승객의 특이사항이 없는지 확인했다. 중국행 왕복비행은 오후에 끝났다. 몇 시간을 대기한 뒤 일본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기상이 나빠 이륙이 지연됐다. 승객들은 승무원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기내 선반에 짐을 넣다 승객끼리 시비가 붙었다. 말리는 것도 승무원의 몫이다. 기내에서 승객들은 예민해진다.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기대하는 만큼 승무원을 하대한다. 늦은 밤 무사히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호텔에 도착한 그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몸도 마음도 지친 하루였다. 이튿날 새벽 귀국편에 탑승해야 해 억지로 잠을 청했다. 이씨는 "이렇게 막대해도 되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꼬박 30시간 만에 집에 돌아왔다. 하루의 데이오프(휴일)가 주어졌지만, 피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본지는 국적항공사 객실승무원의 비행스케줄을 입수했다. 사진/뉴스토마토
 
국적항공사의 객실승무원들이 무리한 비행스케줄과 장시간 근무 등 극심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건강이 우려될 정도다. 국내 항공사 승무원의 월 평균 비행시간은 90시간에 달한다. 승무원의 비행시간은 승무시간만 인정되기 때문에 실제 근무시간은 측정이 불가능하다. 공항 도착 후 브리핑, 비품 및 기내식 점검 등 꼬박 2시간이 소요되지만, 근무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승무시간은 항공기가 이륙을 위해 움직인 직후부터 착륙 후 엔진을 정지한 시점까지의 시간이다. 대기시간, 비행준비 시간 등은 근무시간이 아닌 것이다. 
 
올해 초 저비용항공사(LCC)인 에어부산의 승무원이 잇달아 실신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승무원의 실신은 허술한 항공법과 승무원을 쥐어짜는 항공사의 인력운영이 맞물린 결과다. 
 
항공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승무원의 근무시간 제한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항공법에 따라 승무원은 14시간까지 기내에서 근무할 수 있다. 시간은 승무원 1명이 추가될 때마다 2시간씩 늘어나, 최대 20시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뉴욕에서 인천까지 14시간30분이 걸리는데, 승무원은 근무시간 제한없이 전 세계를 갈 수 있다. 
 
항공법에 따르면 조종사의 최대 승무시간은 8시간(조종사 2명), 비행 근무시간은 13시간이다. 조종사 3명일 때는 13시간(비행 근무시간 17시간)으로 연장된다. 7일 동안 60시간, 28일 동안 190시간, 1년 동안 1000시간을 넘게 비행해선 안 된다. 휴식시간도 비행 근무시간에 비례해 늘어난다. 최소 8시간에서 최대 24시간까지 쉰다. 반면 승무원의 최대 휴식시간은 12시간에 그친다. 
 
 
승무원은 객실에서 승객을 직접 응대하지만, 조종사 보다 근무시간은 길고 휴식시간은 짧다. 주와 월 단위 비행시간 제한도 없다. 항공사는 일주일 동안 24시간의 휴식시간을 주면 승무원을 전 세계 어디든 보낼 수 있는 셈이다. 승무원과 조종사의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규정이 차이나는 이유는 항공법 때문이다. 항공법이 정한 운항승무원(항공기 종사자)에 객실승무원은 포함되지 않는다. 
 
항공사는 항공법의 규정이 느슨한 점을 이용하고 있다. 무리하게 비행스케줄을 배정하고, 기내에 최소 승무인원만 배치한다. 국내 항공사 수곳에서 일하는 현직 승무원의 증언을 종합해 도달한 결론이다.
 
실제 대한항공, 아시아나, 에어부산 승무원의 비행스케줄을 입수해 분석해보니, 이들 항공사의 승무원은 매달 90여시간 가량을 비행했다. 국내 항공사의 조종사는 평균 70시간 안팎을 비행한다. 휴일은 에어부산이 월 5회로 가장 적었다. 지난 1월 승무원 실신 사고가 있었던 에어부산은 매달 최대 6일의 휴일을 준다. 하지만 비행이 몰릴 때는 휴무를 보장받기 어렵다. 대한항공의 휴일이 월 7회였고, 아시아나항공이 10회로 가장 많았다.  
 
대한항공 승무원 A씨는 지난해 11월 16회를 비행했다. 비행시간은 90여시간. 6시간 이상 걸리는 미주와 중동 지역을 총 3차례 다녀왔다. 장거리 노선을 다녀오면 이틀의 휴무를 준다.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B씨는 지난달 총 22회를 비행했다. 주로 아시아 지역의 비행스케줄이 많았다. 
 
A씨는 지난해 11월 야간비행(한국시간 기준)을 총 10회, B씨는 지난달 총 5회 했다. 국내 항공사의 야간비행(오후 9시~오전 9시) 운항 비율은 20% 안팎이다. 2015년 기준 대한항공은 26%, 제주항공은 22% 수준이다. 야간비행은 주간비행보다 졸립고, 잠을 참아야 하기 때문에 피로도가 높다. 2007년 국제암연구기관은 야간근무를 2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무엇보다 승무원의 피로도를 높이는 건 불규칙한 스케줄과 퀵턴(비행 종료 후 다시 비행이 이어지는 스케줄)이다. 대한항공의 승무원은 베이징 왕복 비행을 마친 뒤 다시 국제선 또는 국내선 비행을 한다. 하루에 이착륙을 서너번씩 하는 셈이다. LCC 승무원은 중국, 일본 단거리 국제선은 하루 두차례 왕복으로 다녀온다. 비행 준비만 4차례를 해야 하는 셈이다. 국내선은 김해·김포·제주공항을 하루 5번 가는 경우도 있었다. 빡빡한 스케줄 탓에 승무원은 기내에서 급하게 식사를 떼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승무원들은 노동강도가 가장 높은 업무로 '짐 케어'로 꼽았다. 이륙을 위해 승객의 짐을 기내 선반에 빠짐없이 넣어야 한다. 이·착륙 중 진동으로 짐이 승객에게 떨어지면 다칠 수 있다. 승무원이 직접 승객의 캐리어를 넣는 경우도 다반사다. 수납공간은 제한적인데, 짐 부피가 커 승객들 사이 실랑이도 벌어진다. 승객의 짐 위치를 바꾸다 승객에게 폭언을 듣는 경우도 있다. 이·착륙 횟수가 많아질수록 짐케어 횟수도 늘어나 노동강도가 높아진다. 
 
근무스케줄도 빈번하게 바뀐다. 조종사와 승무원의 한달 치 비행스케줄은 보름 전 나온다. 비행 직전 탑승객 수가 늘어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승무원은 탑승객 인원에 비례해 배치된다. 승객이 갑작스럽게 늘어나면, 휴일인 승무원이 비행에 투입된다. 이 경우 한달치 비행스케줄이 바뀌는데, 승무원은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스케줄이 자주 바뀌어 가사 또는 사생활을 돌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대한항공의 한 승무원은 "승무원이 부족해 돌려막기 하는 상황"이라며 "언제 쉬는지 몰라 일용직 인력시장이나 다를 게 없다"고 호소했다. 
 
높은 노동강도에도 승무원이 반발하지 않고 일하는 건 진급 때문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SS(사원)-AP(대리)-PS(과장)-SP(차장)-CP(부장)의 직급체계를 운영한다. 승무원들은 대리 진급도 쉽지 않다고 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대한항공의 한 승무원은 "3년 동안 고객 컴플레인, 병가가 한번도 없어야 진급이 될 정도"라고 설명했다. 성과평가는 연 2회 실시한다. 관리자의 평가와 고객의 컴플레인이 성과평가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대한항공은 성과 평가 항목 중 공상(산재) 실적, 병가 건수 등도 있다.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다치지도 아프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은 '비행기 특화팀' 제도를 운영한다. 바리스타팀, 딜라이터스팀(패션쇼), 매직팀, 쉐프팀, 챠밍팀 등이 있다. 장거리 노선에 탑승하는 고객을 위해 팀들이 기내에서 문화공연 등 서비스를 한다. 예를 들어 차밍팀은 승객에게 팩을 붙여주고, 네일아트를 한다. 딜라이터스팀은 세계 각국의 옷을 입고 패션쇼를 펼친다. 승무원은 휴일을 활용해 다양한 장기를 배우고 연습한다. 특화팀 활동이 인사고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한다. 승무원도 비행 중 틈틈이 쉬어야 하는데, 특화팀 서비스 탓이 이 마저도 내줘야 하는 실정이다. 
 
구태우 기자 goodtw@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