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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군함도의 진실
2017-08-02 10:39:05 2017-08-02 16:15:49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지난해 <왕과 대통령>이라는 책을 쓰는 작업의 하나로 일본 큐슈 나가사키 인근에 있는 군함도(군깐지마)를 다녀왔다. 당시만 해도 군함도가 영화로 제작될 줄 몰랐다. 우리나라 최남단 마라도보다 작은 섬으로, 섬의 형태가 마치 군함처럼 생겼다 해서 군함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본인들은 이곳을 유네스코 근대산업유산으로 가공하는데 정성을 들였다. 일본인 해설사의 말을 들으니, 한국인들도 이곳에서 일을 했다.  광부는 군인이나 위안부가 아니니 '징용'이라는 말을 쓰기는 곤란했겠으나, 해설사 말에 선뜻 수긍이 가지 않았다.
 
군함도에는 거의 망가진 탄광용 채탄시설들이 섬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고, 갱도로 들어가는 리프트가 눈에 띄었으며, 언덕 위에는 아파트 잔해들이 늘어서 있었다. 지상에는 우체국과 병원, 가게, 음식점 등이 작은 도심지를 형성했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 수영장도 갖추고 있었다. 이곳은 1970년대 중반 석탄산업이 사양길을 걸으면서 폐쇄됐다가, 아베 정권이 들어선 후 인근의 군수산업 시설들을 근대산업유산으로 지정하려고 가공하면서 관광지로 개방됐다.
 
군함도는 탄광섬으로 개발됐으나 원래 섬 자체에서는 석탄이 나지 않았다. 주변의 해저 탄광으로 진입하는 길목이었을 뿐이다. 군함도 앞에는 해저 탄광에 공기를 환기시키려고 설치된 커다란 공기통이 지금도 수면 위로 솟아있다. 일본 사가대학의 이응철 교수 설명에 따르면, 한창 탄광이 개발될 때 하필 태풍이 불어 공기통으로 물이 넘쳤고 수백명이 물 밑에서 수장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인근의 작은 섬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일대 해저가 모두 탄광이었다. 군함도처럼 도시가 형성되지는 않았으나 광부들과 관리자들이 거주하는 간단한 시설이 있었고, 해저로 연결된 갱도들이 포진했다.
 
오늘날의 역사적 관심사는 한국인들이 1960년대 독일에 파견됐던 광부나 간호사들, 1970년대 중동으로 간 건설 노동자처럼 돈벌이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취업했는지 여부다. '자발성'은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 군함도를 근대산업유산으로 지정받기 위해 줄기차게 주장했던 '명분'이다. 여러 정황으로 미뤄, 적어도 한국에서 인력을 모집할 때만큼은 취업을 내걸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 <군함도> 역시 그런 상황을 묘사했다. 하지만 당시 취업 모집은 속임수였다. 실제 군함도 현장에서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게 저질렀던 만행은 징병보다 더 잔혹한 착취였다.
 
군함도 언덕 꼭대기에는 지금도 커다란 망루가 우뚝 서있다. 탄광섬에 등대도 아닌 망루가 왜 있을까. 죄수들의 탈주를 감시하는 감옥의 초소가 아니라면 섬 전체를 조망하는 망루가 필요할 이유가 없다. 일본인들은 <군함도> 영화 속의 일부 장면들이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면서 영화를 깎아내리기에 바쁘다. 물론 영화 뒷부분에는 '인명이나 지명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자막이 나온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영화라는 창작품을 두고 역사적 사실 여부로 시비 거는 것은 픽션(허구)과 논픽션(실화)을 구분하지 못하는 졸렬함이다. 다큐멘터리 영화도 아닌 극영화를 두고 시비를 거는 것은 E.H.카가 말하는 역사학 방법론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군함도가 사실은 취업을 미끼로 한국인들을 유인했고, 노동을 착취했다는 사실은 현장에만 가보면 금방 느낄 수 있다. 한때 못된 유흥업소의 포주들에 속아 여성들이 갈수록 빚에 쪼들렸던 것처럼 군함도의 광부들도 갖가지 명목으로 임금을 떼이고 정신적·육체적으로 착취당했다. 설사 군함도에는 돈을 모았다고 한들 그것을 한국에 송금할 수 있는 시스템도 전혀 없었다. 1년에 한번도 뭍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본인 관리자들이 죽은 광부들의 돈까지 가로채는 판국에 과연 누가 누구를 통해 한국에 돈을 보낼 수 있었을까. 영화에서도 일본인 관리자들이 돈을 갈취하거나 사취한 것으로 묘사된다.
 
우리나라 방송들이 군함도에 대해 보도한 그간의 다큐멘터리들을 보면, 명목상의 임금조차 현금으로 주지 않고 휴지에 불과한 채권으로 광부들에게 지급됐다. 인플레이션이 하늘을 찌르는 패전국가에서 채권이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기어이 살아남아 군함도를 탈출한 한국인들은 휴지를 안고 돌아온 것이다. 현금으로 주고 임금을 갈취했건, 채권으로 주고 떼어먹었건 극심한 악행이었다. 일본이나 일부 친일 인사들은 이번에 개봉한 극영화의 사소한 사실관계를 두고 시비를 일삼을 게 아니다. 군함도의 진실은 식민시대 일제 만행의 일부에 불과하다. 광복 72주년, 늦었으나 역사 청산의 일부로 군함도의 진상을 규명해야 마땅하다.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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