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최순실' 넘어섰지만…이번엔 경제민주화 쓰나미
대선주자들 너도나도 '재벌개혁'…경제민주화 법안 6월 임시국회 재등장
2017-04-19 08:30:21 2017-04-19 08:30:34
 
[뉴스토마토 김의중 기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17일 검찰의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기소로 사실상 종료됐다. 뇌물공여 등의 혐의를 받아온 재벌 총수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앞서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통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금도 뇌물로 적시하면서 함께 돈을 낸 18개 그룹들은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특검 종료로 검찰로 사건이 이첩되면서 기소 대상은 이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 단 2명으로 압축됐다. 가슴을 졸였던 최태원 SK 회장과 이재현 CJ 회장은 무혐의 처분됐다. 두 사람 모두 박근혜정부에서 사면의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이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대선이 5월로 앞당겨졌다. 국회 지형이 이미 야당 주도로 재편된 상황에서, 양강을 형성한 대선주자들 모두 재벌개혁을 기치로 내건 야권 후보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도 법인세 인상 등 재계와 각을 세웠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아예 노동의 가치를 꺼내들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옛 여당의 정책을 계승하고 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사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중도·보수층을 의식해 유연하게 돌아선 점이 그나마 위안일 정도다. 차기 대권이 누구에게 가도 마음이 편치 않은 상황에서 국회에 계류 중인 각종 경제민주화 법안도 부담이다. 최순실 사태를 통해 정경유착의 적폐를 확인한 여론은 이미 반재벌 정서로 들끓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와 달리 경제민주화를 피해갈 기업은 많지 않다. 특히 주목되는 건 상법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안이다. 18일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만 각각 34개, 43개로 총 77개에 달한다. 이 가운데 주주총회 전자투표 의무화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은 통과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두 가지 방안을 대선 10대 공약에 담았고, 안철수 후보도 다중대표소송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소액 주주들이 자회사 경영진의 불법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재계, 특히 총수일가 등 경영진 입장에서는 부담이 갈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도 이미 처리를 합의한 상태다. 두 개정안은 2월 임시국회에서 상법 소관 상임위 간사인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의 반대로 불발됐지만, 5월 대선이 끝나면 곧바로 열릴 6월 임시국회에서 재차 처리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상법과 공정거래법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며 “2월에 처리하지 못한 경제민주화 법안은 대선이 끝난 뒤 6월 임시회에서 다시 처리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재계는 전자투표 의무화에 대해 해킹 등 보안 우려가 크고,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투표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를 놓고는 회사법의 근간인 ‘독립법인격’ 체계를 훼손한다는 입장이다.
 
기업 분할시 지주사가 보유한 자사주에 대해 분할회사 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방안과 ‘감사위원 분리선출안’을 비롯해 ‘집중투표제’, ‘사외이사 독립 강화’, ‘자사주 사용 제한’ 등도 국회에 계류돼 있다. 국회 계류 법안이다. 모두 주주들의 권리 강화와 이를 통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하며, 유력 대선주자들의 공약에 담으며 힘을 실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 중에서는 지주회사 규제 법안이 최대 관심사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지주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상장회사의 경우 현행 20%에서 30%로 확대토록 했다. 비상장회사도 현행 40%에서 50%로 올렸다.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대다수 재벌들은 비상이 걸린다. 지주회사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삼성과 SK, LG, GS, 한화, 두산, CJ, LS 등이 대상으로 거론된다.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 실권 강화 역시 재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안 후보의 공약이자 직접 대표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공정위가 독과점적 시장구조가 장기간 지속될 때 사업자에게 주식 처분, 영업 양도 등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정위 상임위 정수도 5명에서 7명으로 늘렸다. 제윤경 민주당 의원은 기업 공동행위·일감 몰아주기 행위 조사에 한해 공정위에 압수수색권을 부여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외에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일감몰아주기 규제 및 처벌 강화 ▲과징금 경감 제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의 국외 계열회사 거래 공시 의무 등이 심사 대상이다.
 
경제민주화 법안은 비단 상법과 공정거래법에 그치지 않는다. 백화점,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시간이나 신규점포를 제한하는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은 국회의 단골 메뉴다. 여기에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 하도급법 등 갑을관계 개선을 위한 법안과 근로자 권익 보호를 위한 근로기준법까지 다양하다.
 
재계에선 투자와 고용 위축 등을 들며 이들 법안 대다수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 기류와 여론을 감안할 때 일정부분 현실화할 가능성 또한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대선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면서도 “대선후보들의 공통공약에 대해선 면밀히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업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때 개혁도 가능한 것”이라며 “새 정부에서는 상호간 더 많은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과의 창구였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리멸렬한 데다, 삼성이 대관조직을 폐쇄한 점도 재계의 행보에는 부담이다.  
  
김의중 기자 zer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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