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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변함없이 반복되는 '슈퍼주총데이'
2017-03-23 08:00:00 2017-03-23 08:00:00
3월은 대한민국 대부분의 상장기업이 주주총회를 여는 주총의 달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주주총회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특정일에 몰려서 개최되는 현상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특히 수백개의 상장기업들이 3월 마지막 금요일에 집중적으로 주주총회를 여는 이른바 슈퍼주총데이를 보고 있노라면 뭔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예탁결제원의 자료를 살펴보면 올해의 슈퍼주총데이는 역대급이다. 주총공시 상장사 2052개사 중에서 약 45%에 해당하는 924개사가 3월 24일, 금요일에 주주총회를 연다고 한다. 2016년의 경우 3월 25일, 금요일 818개사, 2015년의 경우 3월 27일 금요일에 810개사가 주주총회를 열어 각각 그해의 슈퍼주총데이로 기록됐다. 슈퍼주총데이에 주주총회가 열리는 시간대도 거의 대부분 오전 9~10시로 통일돼 있다.
 
주주총회는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이 기업의 핵심적인 경영의사결정 사항에 대해 의견을 모아 찬반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의결기구다. 따라서 주주총회에서는 주주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합리적으로 조정될 수 있도록 다양한 의견개진의 기회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물론 1주 1의결권의 원칙상 대주주의 의견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겠지만, 소액주주의 합리적인 의견들을 존중하는 것도 기업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는 의미있는 모습이다.
 
현실에 있어서는 안타깝게도 이와는 정반대의 양상이 나타난다. 슈퍼주총데이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주주, 특히 소액주주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주주총회가 특정일에 집중되면 소액주주의 참여가능성이 크게 제한된다. 한날 한시에 많은 곳에서 주주총회가 개최되기 때문에 여러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소액투자자의 경우 관심있는 주주총회에 모두 참여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매우 어려워진다. 이는 소액투자자의 의견개진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들이 암묵적으로 슈퍼주총데이의 관행을 이어가는 것은 소액투자자에 의해 제기되는 분쟁들을 최대한 억제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주총회 개최의 시기와 장소에 관한 사항은 주주와 기업의 고유재량권에 관한 사항으로 보아야하기 때문에 슈퍼주총데이의 출현을 규제를 통해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소액주주의 권리행사도 정당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완할 필요성은 크다. 이를 위해 전자투표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시키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자투표제는 주주가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더라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온라인을 통해 투표하는 제도를 말한다. 전자투표제는 상법 개정을 통해 2010년 5월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기업이 채택여부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활용수준은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그리고 전자투표제를 채택한 기업들도 대부분 예탁결제원의 중립투표(섀도우보팅, Shadow voting)을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전자투표제의 실효성은 낮다고 평가받는다.
 
주주의 권리행사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기업과 주주간의 의사교환이 활발할 경우 기업의 경영성과나 지속가능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학계의 연구결과들을 감안한다면 자연스러운 시류로 판단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전자투표제는 주주와 기업간의 접점을 확대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특히 IT기술을 활용해 주주총회 운영의 편의성을 높이는 것은 필연적인 변화의 방향성이므로 전자투표제의 활용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보아야 할 것이다.
 
전자투표제의 확대와 더불어 섀도우보팅 제도의 폐지도 병행될 필요가 있다. 정족수 미달로 주주총회가 무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참석하지 않은 주주들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일종의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다. 예컨대 동일한 지분을 소유한 주주 100명 중 주주총회에 참석한 주주가 10명일 경우 이 10명 가운데 해당 안건에 대해 7명이 찬성하고 3명이 반대하였다고 하면 출석하지 않은 나머지 90명의 주주에 대해서도 똑같은 비율로 표결에 참여한 것으로 간주한다. 
 
섀도우보팅은 주식이 다수의 소액투자자들에게 분산 소유됨에 따라 주주총회의 의결정족수를 채우는 데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마련된 제도였다. 그런데 손쉽게 의결정족수를 확보할 수 있는 섀도우보팅으로 인해 기업들은 전자투표제도의 활용에 오히려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섀도우보팅은 자본시장법의 개정을 통해 2015년 1월에 폐지될 예정이었으나 기업측의 반발로 폐지가 2017년 연말까지 3년간 더 유예된 상황이다.
 
변함없이 반복되는 슈퍼주총데이는 주주들의 의결권행사를 물리적으로 제약하면서 전체 주주의 집합된 의견형성을 왜곡시키고 있다. 주주친화적 경영문화의 확립이 강조되는 글로벌 트렌드를 반영하여 전자투표제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해 보인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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