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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한 단계 성숙한 채권 투자문화 기대한다
2017-01-11 08:00:00 2017-01-11 08:00:00
주식시장과 더불어 자본시장의 양대산맥으로 인식되는 채권시장에서는 정부나 기업과 같은 다양한 경제주체가 참여해 대규모의 자금거래를 한다. 대부분의 글로벌 채권시장은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된다. 국내 채권시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실 채권시장의 꽃은 회사채시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회사채시장은 기업이 투자를 위한 장기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시장인데 투자자의 자금이 기업으로 유입됨으로써 기업이 성장하고 이를 통해 국가경제도 발전시키는 그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회사채시장은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자금수요자)과 기업들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기관투자자(자금공급자)들로 나뉘게 된다. 시장이 활발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자금수요자와 공급자의 역할이 모두 중요하다. 문제는 국내 회사채시장에서는 자금수요자는 넘쳐나고 있지만 자금공급자는 매우 제한적인 형태로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회사채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시장 양극화의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다. 자금공급자가 많지 않다는 것은 시장으로 들어올 수 있는 자금의 양이 적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용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기업들이 발행하는 회사채에 투자할 투자자가 적음을 말하는 것이다.
 
보험사나 은행, 연기금 등의 기관투자자들은 회사채에 투자할 수 있는 대규모 자금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신용위험이 높은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에 대해서는 거의 투자를 하지 않는다. 원인은 기관투자자들의 회사채 신용위험에 대한 관리가 정교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국내 기관투자자들은 기업 신용위험에 대한 판단능력이 해외 기관투자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기관투자자들은 회사채 투자의 신용위험 관리를 전적으로 신용평가회사에 의존하고 있으며 신용위험 관리방식도 매우 획일화되어 있다.
 
대부분의 기관투자자들은 회사채 투자의 신용위험 관리를 위해 일정 신용등급 이하의 회사채에는 투자하지 못하도록 내부적인 투자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신용등급이 BBB등급 미만인 회사채는 아예 투자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신용위험 관리체계 아래에서는 회사채와 관련된 투자의사 결정과정이 매우 단순하게 정형화된다. 신속한 투자집행은 가능해진다. 그러나 회사채 투자에 있어서 신용등급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그러다보니 신용도가 떨어지는 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이 사실상 막히게 된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기업은 대부분 중소·중견기업들이다.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는 경제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잠재력있는 중소·중견기업들이 성장과 발전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기관투자자들은 모험자본 공급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실제에 있어서는 신용위험 관리를 위해 투자가능성을 차단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회사채 시장의 왜곡된 투자행태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기관투자자들의 신용위험 관리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먼저 내부투자지침에 의해 특정 신용등급 이하의 회사채에는 아예 투자를 허용하지 않는 행태가 바뀔 필요가 있다. 특정 등급이하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는 획일적인 방식에 의해 신용위험을 관리하는 것보다 투자대상의 선정에 대한 자율성은 인정하되 전체 채권 포트폴리오의 건전성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인 방향성이 될 것이다.
 
주식 포트폴리오에 대해서는 이미 이러한 방식의 위험관리가 일반화되어 있다. 보다 안정적인 종목과 다소 위험성이 있더라도 기대수익률이 높은 종목을 적당히 섞어서 투자수익률은 높이되 위험은 적정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회사채 투자도 이러한 포트폴리오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다수의 안정적인 회사채(즉 AA등급 이상)와 일부의 고수익채권(BBB등급 이하)을 섞어서 보유함으로써 신용위험은 적정 수준에서 통제하고 수익률은 극대화하는 방식이 일률적으로 A등급 이상만 보유하는 전략보다 더 나을 수 있다. 무엇보다 투자관행을 바꾸면 성장성 있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자금공급이 확대될 것이다.
 
신용평가등급에 대한 의존도도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 신용평가등급을 기계적으로 인용하였던 투자자의 태도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중요 원인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도 안 된다.
 
기관투자자들이 신용위험에 대해 자체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관행 또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신용위험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때 투자자의 신용위험 관리와 투자판단의 역량은 더욱 성숙해진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금공급에 목말라하는 수많은 중소·중견기업에 더 많은 혜택이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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