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5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당시 몇 명의 프로야구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연루된 사실에 대해 '국민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야구팬들과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과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진상이 철저히 규명될 수 있도록 관련조사에 최대한 협조하며 사건 관련자에 대해서는 엄중한 제재를 가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아울러 재발방지를 위한 시스템과 불법행위를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2016년 7월21일 KBO는 최근 프로야구 선수들의 불법 스포츠도박 및 승부조작 혐의의 수사결과와 관련하여 사과문을 내놨다. 제목은 '국민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다. 국민 여러분과 야구팬들께 크나큰 실망을 안겨 드린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과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으며 사법적인 결과에 따라 실격 처리 등 일벌백계의 엄정한 제재를 가하도록 할 것이고, 재발방지를 위한 리그 차원의 확고한 대책 마련에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2012년 사과문의 제목과 똑같고 내용도 비슷하다.
사과문의 제목과 내용만 같은 게 아니다. 그 때나 이번에도 스포츠의 근간을 훼손하는 승부조작이라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KBO뿐 아니라 관련 선수의 전·현 소속구단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도 언론을 통하여 사과문을 발표했지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한 사람이 없었다. 선수가 불법 스포츠도박과 승부조작에 연루된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은 도의적이라도 책임은 없다고 판단해선인지, 아니면 도의적 책임도 없다고 생각해서 사과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조치를 취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KBO, 구단과 선수협은 선수의 불법 스포츠도박과 승부조작 관여에 책임이 없을까? KBO, 구단과 선수협은 선수단과 함께 프로야구라는 콘텐츠 제품을 소비자인 국민에게 판매하는 생산자다. 생산자로서 소비자를 기만하는 방법으로 하자 있는 제품을 판매한 꼴인데 그에 따른 책임이 있다는 점은 당연하다. 선수의 불법 스포츠도박과 승부조작 관여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정만으로는 면책이 될 수 없다. 사전 관리 감독을 철저히 했음에도 그러한 사건이 발생했다면 모르겠지만 예방 활동을 소홀히 했다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까지 KBO, 구단과 선수협이 불법 스포츠도박과 승부조작 근절 대책으로 내놓고 시행한 것은 교육과 신고센터 운영이 전부다. 그러한 소극적인 대책으로 불법 스포츠도박과 승부조작을 근절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순진한 것이다. 사건이 재발됐고 이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가까운 가능성은 이를 입증한다. 문제는 불법 스포츠도박과 승부조작 근절의 확고한 의지와 이를 위한 고민이 철저했다면 좀 더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본 프로축구(J리그)는 불법 스포츠도박과 승부조작 예방을 위해 2011년부터 도입한 FIFA 베팅 조기경보시스템인 ‘EWS’를 통해 매 경기를 모니터링하고 준법감시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불법 스포츠도박과 승부조작 근절의 의지와 고민이 있었더라면 KBO 등도 이와 유사한 시스템과 제도를 운영하였을 것이다. 결국 의지와 고민이 부족했고 노력이 미흡했다.
올 3월경 일본 프로야구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구단주를 포함한 수뇌부 3명이 사임했다. 지난 해 소속선수 3명의 불법도박 파문에 휩싸여 해당선수를 방출하였는데 올 초 다른 선수의 도박 혐의가 새로 드러나면서 ‘지난 도박사건 때 팀에 남아있던 고름을 완전히 짜내지 못했다’며 책임을 진 것이었다.
장달영 변호사·스포츠산업학 석사 dy6921@daum.net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한국야구위원회(KBO) 모습.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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