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로 환율이 요동치면서 수출시장의 큰 변수로 떠올랐다. 사진은 자동차의 수출 선적 모습. 사진/현대차
브렉시트 충격에 글로벌 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국내 수출산업도 업종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특히 환율 불안이 수출환경의 커다란 변수로 떠올랐다. 브렉시트가 현실화된 직후 안전자산 선호 측면에서 달러화 및 엔화는 급등했고, 유로화는 급락했다. 일반적으로 달러 및 엔화 강세 기조가 유지된다면 수출에는 유리하고 원자재 수입에는 불리하다. 따라서 전기전자, 자동차 등 수출 비중이 높은 업종의 수혜가 예상되는 가운데, 유럽 매출 비중이 높은 전자업계의 경우 저유로가 실적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원자재를 수입하는 석유화학 및 정유업계는 환율 영향이 복합적이다. 조선·해운이나 철강은 단기적 환율 영향은 긍정적이지만, 가뜩이나 침체된 수출경기가 더욱 움츠러들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 아울러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지연될 것이란 전망이 작용하며 달러화 상승폭이 제한된 반면, 엔화 상승폭이 높아 달러보다 더 안전자산으로 선호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따라서 당분간 엔화 강세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며, 이에 따라 일본 기업들의 가격경쟁력 약화와 일본과 경합하는 전기전자, 자동차, 조선해운 등의 기회요인이 부각된다. 산업계는 환율 대응 프로그램을 최고 수준으로 가동해 환위험을 억제하는 한편, 글로벌 시장 환경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전기전자, 환율 수혜 속 저유로는 부담
전자업계는 달러 및 엔화 강세로 인한 수혜가 예상된다. 단, 유럽 매출 비중이 적지 않아 저유로에 따른 수출 감소분이 일부 수혜를 상쇄시킬 수 있다.
원달러 환율 상승과 높아진 엔화 가치는 국내 전자제품의 수출단가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원·달러 환율이 1100원대 초반으로 급락해 영업이익 기준 4000억원의 환손실을 봤다. 반대의 경우 환차익 발생이 예측 가능하다. 삼성전자는 연초 기준 원·달러 환율이 5% 상승할 시 외화금융자산 및 외화부채에서 약 1432억원의 환차익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엔화 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일본 기업들과 경합도가 높은 IT업계의 판매실적이 오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간 아베 정부의 엔저 기조로 일본 IT업체들은 수익성이 확대돼 온 반면, 국내 IT업체들은 가격경쟁력 약화 요인을 겪어야 했다. 특히 중저가 제품 위주의 중국 등 동남아 신흥시장에서의 경쟁에서 환율은 밀접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부정적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유럽시장 매출 비중이 북미 다음으로 높다. 평판 TV의 경우 북미보다 더 높은 수요를 나타낸다. 유로화 약세가 장기화될 경우 실질구매력 감소에 따른 수요 부진이 지속될 수도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글로벌 환관리 시스템을 가동해 개별 회사별로 환위험을 집중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환율의 급변동은 일시적으로 순이익에 부정적일 수 있지만,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제품 수출단가가 하락해 매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원·달러 환율 상승 ‘볕든다’
자동차 업계는 원·달러 환율 상승이 수출환경에 우호적이다. 전통적으로 원화 약세가 나타날 때 호실적을 거둔 경우가 많았다. 현대·기아차는 원화 약세에 힘입어 미국 등 주요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강화할 여력이 생겼다. 엔화 강세도 토요타 등 일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국내 완성차에 긍정적 요소다.
수출 유불리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높은 관세 역시 실제 브렉시트가 실현되는 시점이 최소 2년은 소요되는 만큼 해당 기간내 영국과의 FTA 재체결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국내 완성차 업체 가운데 영국 생산법인을 가진 기업이 없다는 점도 호재다. 영국 현지 생산 후 다른 유럽지역으로 수출하는 과정에서의 관세 타격을 입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박영호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브렉시트로 인한 엔화 강세는 국내 기업들의 수출 여건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상대적 원화 약세에 영국뿐만 아니라 다른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 제고 역시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국내 자동차 간판인 현대·기아차의 경우 영국향 수출이 유럽내 국가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부담이다. 현대·기아차는 향후 파운드화 환율변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미 현지법인들을 중심으로 영업전략 재검토에 돌입했다. 최근 러시아를 비롯한 신흥국 통화 약세에 따른 영업이익 타격이 재현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조선·해운, 환율보다 경기침체 우려 커
조선·해운업계는 엔화 강세로 일본 대비 가격경쟁력이 개선될 것으로 보여진다. 그동안 엔화 가치 약세로 일본의 상선 부문 시장점유율이 지속 확대돼 온 것을 반전시킬 수 있다. 하지만 심각한 업황 부진을 겪고 있는 업계로서는 단기적 환율 영향보다 시장이 경색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더 짙다. 심리적인 영향으로 선주들이 몰린 유럽시장의 돈줄이 막히면 신규 수주를 기대할 수 없게 되는 데다,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며 물동량도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시경제 불확실성으로 선주들의 선박 구매결정이 연기될 수 있고, 선박금융 기관 대부분이 유럽에 위치해 있어 선박의 발주 공백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브렉시트가 시장 운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심리적으로 위축되면서 선박금융을 조달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이미 선박금융 자금을 제공하고 있는 유럽 은행들이 대출을 줄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운전문지 트레이드윈즈에 따르면 세계 선박 금융 시장에서 영국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10%가량이다.
업체들은 이미 수주 절벽현상에 직면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수주한 것이 사실상 제로일 정도로 이미 최악의 상황"이라며 "금융 위축으로 부정적 영향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총 9척을 수주했다.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수주 총액은 34억58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6.8% 줄었다. 대우조선해양은 LNG선 2척을 비롯해 총 8억2000만달러 수주에 그쳤다. 삼성중공업은 올 들어 단 한 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해운업계도 전반적인 경기 위축으로 물동량이 감소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금융서비스가 줄어들고 국제간 거래가 줄어들어 실어날라야 할 물동량이 감소하면 결과적으로 운임이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철강, 환율은 긍정적이지만 경기에 민감
철강업계는 원화 약세 및 엔화 강세가 수출에 긍정적이다. 원화 약세로 철광석, 석탄 등 원자재 수입비용이 늘어날 수 있지만 저유가가 부담을 줄여줄 것으로 보인다. 박성봉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단기적으로 원화 약세에 따른 국내 철강사들의 수출은 긍정적"이라며 특히 “엔화 급등에 따른 일본 철강사들의 수출 경쟁력의 약화로 국내 업체들의 가격경쟁력이 개선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방민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철강의 경우 실수급 측면에서는 비철금속보다 제한적 영향을 받겠지만 유가 하락에 따른 원재료(철광석) 가격의 하방 압력으로 인한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철강업계는 환율 변화 추이와 수요산업 등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금융시장 충격이 예상된다"면서 "단기 환변동성 관리를 강화하고 수요산업 및 철강업에 대한 영향을 지속 모니터링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철강재 수출물량 중 영국향 비중은 약 0.5%에 불과해 단기적인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의 수출 물량 중에서도 영국향은 약 0.2%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철강업종은 전통적인 경기민감 산업으로 글로벌 경기 회복이 지연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중장기적으로 EU회원국의 추가 탈퇴가 이어진다면 유럽 전반적으로 철강 수요가 감소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성봉 연구원은 "전체 수출 비중의 11%를 차지하는 유럽 철강 수요가 감소할 수도 있다"면서 "실질적인 EU의 수요감소로 이어질지 여부는 EU의 이탈 방지 대응 및 주요국 통화정책에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석유화학, 원자재 부담보다 수출 수혜 커
석유화학업계는 유럽 수출 비중이 많지 않아 원화 약세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가 예상된다. 국내 석유화학제품 수출에서 영국 비중은 1%에도 못 미친다. 원자재 가격 구매 비용이 증가할 수 있지만 유가 하락이 원자재 가격 인상을 억제할 것으로 보인다.
석유화학 업계는 여러 불확실성에 대비해 상황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환율 영향에 대해서도 "단기적으로는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에 있어서 득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화될 경우 수요 자체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에 우려는 있다"고 설명했다. 또 "유가가 만약 낮아진다면 단기적으로는 재고손실을 보겠지만, 유가가 지속적으로 낮을 경우엔 오히려 장기적으로 원료가격 자체가 낮아지면서 마진이 높아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석유화학 업계는 지난해 2분기 대비 3분기 환율이 70원가량 오르면서 유가 급락에 따른 재고손실을 만회한 바 있다.
하지만, 석유화학업계도 중국에 중간재를 판매해 완제품이 유럽으로 수출되는 경우가 많아 유럽시장 수요가 둔화될 경우 매출 감소를 피하기 어렵다. 윤재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브렉시트 이슈가 반영된 지난 24일 일간 기준으로도 제품(가격)은 전반적으로 상승세였다"면서 "영국 파운드화 약세로 화학제품 구매 수요는 약화될 가능성이 있고, 다른 EU 지역의 수출 약세 전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유업계, 환율 영향 복합적
정유업계는 일단 환율 여파에서 비켜나 있다는 평가다. 원·달러 환율 상승은 정유업계의 석유제품 수출 확대에 긍정적이지만 원유 구매 비용이 동시에 증가하게 된다. 또한 달러 강세 및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에 따른 유가 하락으로 단기적으로는 재고평가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업계는 수요 측면에서 저유가와 글로벌 경기침체 요인이 상충해 정제마진에 미칠 영향이 미지수라는 분석이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는 지난 9일 연중 최고치를 찍은 이후 브렉시트에 대한 우려로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며 "다만 정유사들의 수익성을 결정하는 것은 국제유가의 고저가 아닌 정제마진의 폭인 만큼 국제유가의 하락세가 수익 악화로 직결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유가는 브렉시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글로벌 이슈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결정되는 만큼 급격한 하락을 보이진 않을 것"이라며 "하락폭이 완만하다면 정제마진 역시 크게 악화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다만, 석유제품의 수출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차손에서는 소폭 피해가 발생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다른 관계자는 “정유시장은 수출과 수입 모두 미국 달러화를 통해 거래되는 만큼 환율 차이로 인한 손익은 환헷지를 통해 상쇄된다”면서도 “다만 국내 정유사들은 수출보다는 수입이 많아 그 차이만큼 환차손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부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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