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더 나은 미래를 위해 국회미래연구원을 설립하자
2016-06-23 07:00:00 2016-06-23 09:09:03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
이번 제20대 국회에서 132명의 초선 의원들이 당선됐다. 10년이나 20년 후에 이들 중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나올까? 87년 민주화 이후 노태우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대통령은 모두 국회의원을 거친 정치인들이다. 이런 추세를 생각해 보면 이번 초선 의원 중에서 훗날 한국을 이끌 정치지도자가 나올 것 같다. 새로운 열정으로 가득 찬 초선의원들을 위해 제도권 정치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들을 차세대 국가적 정치지도자로 성장시킬 제도적 장치는 있는가?
 
정당 조직은 별론으로 하고 국회의 입법지원조직으로는 입법조사처, 예산정책처, 국회도서관 등이 있다. 미국 의회제도를 원용한 이 지원조직들은 세계적으로도 미국 의회 다음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그러나 이 제도들이 입법과정에서는 의원들에게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단기적인 현안 분석 중심이어서 국가지도자를 키워내는 역할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
 
내년 대통령 선거가 1년 6개월 정도 남은 지금, 세칭 대선주자들은 모두 소수 학습모임의 형태로 비밀과외 수업 혹은 '몰래바이트'를 받고 있을 것이다. 비공개적인 캠프 형태의 모임이거나 다양한 민간 싱크탱크 형태로 이런 공부 모임은 운영되고 있다.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시·도지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적어도 3선 이상의 국회의원은 미래에 대한 투자로 이런 비밀과외 형식의 학습모임을 꾸리고 있을 것이다. 이는 기존의 정치 제도들이 미래 정치리더가 갖추어야 할 정책역량과 소양을 키우는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정치지도자들의 사교육 시장을 공교육으로 끌어들여서 새로운 미래담론으로 공론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서 '국회미래연구원' 설립이 우선적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지난 제19대 국회의 하반기 국회의장 정치개혁 자문위원회에서 '국회미래특별위원회' 구성이 제안됐다. 과거 발전국가 시기에는 정부 부처로서 경제기획원, 국책연구기관으로서 한국개발원이 경제개발계획을 기획해 국가전략을 추진했지만 민주화 이후에 더 이상 행정 부처나 그 산하 국책연구기관에서 만든 관료적인 국가전략이 시민적 설득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국가의 미래전략에 대한 마스트 플랜을 기획하고 조정(steering)하는 기능은 사실상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급변하는 국가미래전략을 위한 종합적 싱크탱크 기능이 정부 부처 어딘가에 있어야 하고 그런 고민 속에서 제안되었던 것이 '국회미래특별위원회'와 '국회미래연구원'이었다. 지난 제19대 국회에서 '국회미래연구원 설립에 관한 법률안'이 제안됐지만, 국회의 기능이 확장되는 것을 경계하는 기획재정부와 그를 지지한 여당의 반대로 이 법안은 입법화하지 못하고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었다. 급격한 변화의 속도와 다양한 미래담론 속에서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미래전략을 위한 싱크탱크가 요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공지능과 로봇, 빅데이터와 클라우딩, 3D프린팅과 퀀텀 컴퓨팅, 나노, 바이오 기술 등 거의 모든 지식분야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속도로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고용과 실업, 활동(activity)와 비활동(unactivity)의 이분법적인 구분을 넘어선 포스트 생산주의(post productivism)에 관한 논쟁이 활발해지고 있다. '일과 복지(work and welfare)'를 넘어서 '일없는 복지(welfare without work)'에 대한 새로운 접근도 시도되고 있다. 최근 스위스에서 국민투표에 부쳐진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첨단이라는 미국의 실리콘 벨리에서 그 실현 가능성이 진지하게 검토되고 있다. 올해 파리 협약 타결 이전인 2000년대부터 생태복지(ecowelfare)와 생태 사회정책을 근간으로 복지국가의 대안으로서 생태 사회국가(eco-social state)가 유럽에서 제기되고 있다.
 
최근 과학기술계를 중심으로 한 기술결정론적인 미래전략연구로는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시민적 공감을 얻는 공론을 만들어 내기 힘들다. 올해 다보스 포럼에서 제안되었던 제4차 산업혁명이 주목받고 있는 점도 장밋빛 미래보다는 그에 동반한 그림자로서 괜찮은 일자리들이 급속히 사라짐에 따라 파생될 대량 실업에 대한 경고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시대에 국가전략을 위한 연구원은 행정부가 아닌 입법부에 설립되는 것이 시대적 흐름과 부합한다. 명령계통에 의해 수직적 국가전략이 하향식으로 획일화되는 것보다는 국회의원들의 다양한 논쟁으로 공론을 통한 국가전략 수립이 민주화 시대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 공론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국가 전략과 운영에 대한 정책역량을 체득해 갈 것이다.

드골은 40대에 육군대학 강의교재로 집필했던 '칼날(The Edge of Sword)'에서 국가지도자는 중장년 이전부터 국가운영을 염두에 두고 스스로를 단련한다고 적었다.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디즈레일리는 청년시절부터 스스로를 영국 수상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조형해 나갔다고 한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설립된다면 적어도 이번 초선 의원들 중에 스스로 국가지도자로 단련한 인물이 10여년이 지난 뒤에는 반석 같은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제20대 국회에서 이 미래연구원으로 새로운 미래에 대한 장기투자를 시작하는 것이 보다 나은 한국으로 가는 또 하나의 길이다.
 
임채원 서울대 국가리더십센터 선임연구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0/300

뉴스리듬

    이 시간 주요 뉴스

      함께 볼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