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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구조조정 패러다임의 변화
2016-05-23 06:00:00 2016-05-23 06:00:00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참 피곤한 일인 것 같다. 격무에 시달리느라 야근은 일상이지만, 박봉에 살림살이는 늘 빠듯하다. 비난하는 이는 또 왜 그리 많은지 일은 잘해야 겨우 본전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문제가 터지면 제일 먼저 달려와서 최선의 해결책으로 사태를 원만히 수습하는 모습도 보여야한다. 그것도 문제가 터질 때마다 말이다.
 
최근 우리 경제가 직면한 해결하기 가장 어려운 문제는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이들이 해운업과 조선업을 중심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기업구조조정 이슈를 떠올릴 것이다. 대규모 실업을 양산할 수 있고 경제성장률의 추가적인 하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라서 해결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사면초가의 어려운 상황인데, 문제해결은 또 다시 정부의 몫으로 넘겨질 터이다. 해운업과 조선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국가경제의 향방을 가를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기에 정부가 나서서 사태를 수습해야 할 것 같았고, 실제로 정부주도하에 기업구조조정의 설계도가 그려지고 있다.
 
우리에겐 정부주도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기업구조조정의 모습이 매우 익숙하다. 기업구조조정이라는 것은 산업의 발달과 성숙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속성을 가지는데, 과거의 굵직한 구조조정 사례를 살펴보면 그 중심에는 항상 정부가 서 있었던 공통점이 관찰된다. 그렇지만 이제는 지금까지의 익숙한 구조조정의 모습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 같다. 정부주도의 구조조정에서 시장주도의 구조조정으로 과감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시도할 때가 된 것이다.
 
정부주도의 구조조정은 대규모 자금동원 능력을 수반하기 때문에 신속하고 과감한 추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뚜렷한 약점을 가진다. 먼저 대규모 기업구조조정에 정부가 일상적으로 개입할 경우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우려가 커진다. 특히 기업의 규모가 커서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경우 정부의 구조조정 개입가능성은 해당기업의 위험추구 성향을 적정수준 이상으로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다음으로 정부에 의한 기업구조조정은 그 과정에서 소요되는 자금이 결국은 국민의 세금에 의해 마련되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기업의 정상화가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투입된 공적자금의 회수를 통해 국민의 비용부담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구조조정이 항상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으며 정상화에 실패할 경우 투입된 자금은 고스란히 손실로 남게 된다.
 
상기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간 정부주도의 구조조정이 보편화되었던 이유는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에서 찾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정부를 제외한다면 구조조정에 수반되는 대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고 높은 수준의 위험을 감내할만한 민간의 구조조정 주체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정부를 대체할만큼 성숙한 민간 플레이어가 없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구조조정의 이슈가 나오면 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버렸다. 그런데 정부의 주도적인 역할은 민간의 구조조정시장을 구축하는 효과가 있다. 시장형성이 부진해 정부가 개입하였는데, 정부개입이 시장형성을 위축시키고 그 결과 정부에 대한 의존도는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구조조정의 패러다임 변화를 위해서 정부보다는 시장의 역할이 강조되고, 정치적 논리보다는 시장원리가 작동하는 환경의 조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우선 두 가지 측면에서의 시장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먼저 정부가 제공하는 정책금융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오랜 기간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강한 대기업에 대해서도 정책금융의 지원이 대규모로 이루어져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성격의 지원이 지속된다면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에 민간에 의한 구조조정을 거부하고 정책자금에 의지하려는 인센티브를 주어 민간의 구조조정 기능을 위축시키게 된다. 시장의 성숙도를 반영하여 정책금융의 역할을 축소 조정함으로써 민간기능의 정상화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정부를 대신할 민간의 구조조정 주체를 육성할 필요성도 크다. 해외의 경우를 살펴보면 사모펀드와 같은 자본시장의 플레이어가 구조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적극적인 운용규제 완화와 부실채권 거래시장의 구축 등을 추진함으로써 민간의 역량을 키워가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경제구조의 성숙도가 높아질수록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구조조정 시장의 중요성은 커진다. 정부주도와 민간주도의 구조조정시장, 둘 중에서 어떤 형태가 더 효율적일 것인가에 관한 대답은 이미 자명하다. 민간의 역량확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함으로써 다음번의 구조조정을 대비할 때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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