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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이상득의 교훈
2015-10-14 14:09:50 2015-10-14 14:09:50
“내가 이명박이 시키는 대로 하는 똘마니입니까!”
2009년 9월27일 국회 의원회관을 나서는 이상득 의원을 기자가 쫒았다. 앞서 25일 당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우리가 무기력증에 걸린 것처럼 돼 있다. 이번만은 밀어붙여야 한다”며 당내 강경론을 주도한 직후, 문방위에서 미디어법을 기습 상정한 것과 관련해 배후로 지목하자 발끈하며 던진 말이다. 종편을 탄생케 한 미디어법은 18대 국회를 전장으로 만든 최대 쟁점법안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절대 과반의석을 차지한 거대 여당으로, 친이계와 친박계로 양분된 상황이었다. 친이계는 또 다시 SD(이상득)계와 이재오계, 소장파 등으로 구분돼 있었다. 이재오·정두언 등이 권력투쟁에서 밀려났던 터라, 모두들 그의 밑으로 모여 들었다. 친박계와 척을 지지 않는 노련함을 발휘하면서 사실상 국회는 이상득 천하가 됐다. 만사형통(모든 일은 형님을 통해 이뤄진다)의 시작이었다.
SD계로 분류되던 한 의원은 “거침없이 ‘맹박이 맹박이’ 하는데 모두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며 “아무리 친형이라지만 대통령을 저리 부를 수 있나 하면서도, 이것이 상왕 영일대군의 기세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당연히 국정도 형님 의중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모두 그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보좌관 출신으로 심복이었던 박영준은 청와대를 나온 백수 신분임에도 포스코 회장 인선을 쥐락펴락했다. 나중에는 왕차관으로 불리며 자원외교를 주도했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세상을 내 발 아래 둔 것처럼 거침없던 형님은 포스코 비리 연루 의혹으로 다시 검찰 칼날 앞에 섰다. 기자에게 내뱉던 노기는 오간데 없이 “내가 왜 여기(검찰) 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고 왔다”고 했다. 권력의 덧없음을 그가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는 사이, 수족처럼 따르던 수많은 의원들은 침묵을 지키며 거리두기에 바쁘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를 등에 업은 권력 실세들이 눈여겨봐야 할 교훈이다.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청와대 4인방도 권력의 냉정함 앞에서는 예외일 수 없다. 박 대통령이 세상에서 가장 혐오한다는 배신이, 자신이 권좌에서 내려온 뒤 눈앞에서 펼쳐진다면 이 또한 역사의 불행이다. 권력은 오래 가지 않고 진실은 영원한 법이다.
 
김기성 탐사보도부장 kisung01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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