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가정 양립, 불가능한 얘기인가
전문가 4인이 말하는 대한민국 육아현실과 대안
입력 : 2015-06-09 16:00:00 수정 : 2015-06-09 16:00:00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 지표(자료/고용노동부)
 
‘일과 가정에 대한 양립 지원’은 올해 정부가 내건 24개 핵심과제 중 하나다. 저출산 고령화가 양극화와 함께 우리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할 중대 문제로 자리하면서 정부의 움직임도 다급해졌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겠다며 제시한 정책은 여전히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오락가락 혼선도 모자라, 예산을 놓고는 여야 간 정쟁만 벌어졌다.
 
그러는 사이 현실은 맞벌이 부모를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직장문화는 육아와의 병행을 반기지 않고, 이는 경력단절 여성을 낳는 직접적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출산을 독려하지만, 현실은 도무지 아이를 낳아 마음 놓고 기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취재팀은 정부부처와 공공기관, 학계, 시민사회 등 해당분야 전문가 4명을 만나 현실적 문제를 짚고 대안을 모색했다.
 
"기업과 남성의 참여가 절대적"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남성 육아휴직 비율이 좀처럼 높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두번째 육아휴직 사용자 인센티브' 제도가 도입됐다. 부부 중 두 번째 육아휴직 사용자에게 그 첫 달에는 급여를 100% 지급한다는 것인데, 상한선(150만원)이 있다는 게 문제다. 2014년 상용직 노동자 평균임금이 323만5000원인 걸 감안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육아휴직 급여를 현실화해서 휴직기간 동안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법적·제도적 지원은 많이 개선됐나.
 
▲지난 20여년간 제도적 차원에서는 상당 수준 올라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제 문제는 제도와 현실의 차이를 줄여나가는 것인데, 기업과 남성의 참여가 절대적이다. 남성의 육아휴직 참여율은 2010년대 들어 계속해서 2% 미만이었다가, 2014년에야 겨우 4.5% 수준으로 올라왔다. 이조차도 선진국들과 비교해 보면 매우 낮은 수치다. 남성의 육아휴직을 짧게는 한 달부터 시작, 사회문화적으로 바꿔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육아휴직을 한 달이라도 사용해 본 남성은 부성의 권리와 의무를 자각할 수 있다.
 
-육아휴직 이후 일·가정 양립을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육아휴직은 출산과 육아를 거쳐 직장을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과정의 극히 짧은 기간일 뿐이다. 오히려 복직하고 난 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보육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장시간 근로 관행을 없애 나가야 한다. 또 근로자의 필요에 따라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유연근로시간제가 정착되어야 한다.
 
"공공기관 보육으로 질적 수준 제고해야"
 
유해미 육아정책연구소 연구기획팀장
-정부 무상보육 정책의 한계는.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대응의 핵심인 보육정책의 경우 실효성이 낮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가정 지원과 민간 어린이집 확충만으로는 부모들의 신뢰를 확보할 수 없어 실질적인 양육부담 완화와 일·가정 양립지원 효과를 보기 어렵다. 믿을 수 있는 기관보육의 공공성 강화를 통한 질적 수준의 제고가 시급히 요구되는 이유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양육 지원 실효성 강화 이외에도 안전한 고용 등을 통해 소득보장과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노동문화 등 제반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사회 포괄적인 분야에서 개선되어야 할 점은.
 
▲기업 차원에서 가족친화기업인증제도를 확산해 실질적인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지역사회에서도 기관보육 이외의 다양한 육아지원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육아종합지원센터 등 종합서비스 기관을 확충해야 한다. 지역주민이 아동을 함께 돌보는 돌봄공동체 지원을 통해 안전한 양육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여성에게 편중된 육아 부담이 완화될 수 있도록 아빠 역량 강화를 위한 참여 체험 프로그램도 강화해야 한다.
 
-맞벌이 부부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미흡하다. 좀처럼 출산율도 늘지 않고 있다.
 
▲과도한 양육비 부담을 완화하고, 일과 가정 간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저출산 대응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안정된 고용 및 소득이 보장되는 노동시장 정책과 소득보장 정책, 가정과 일터의 병행이 용이한 가족친화적인 노동 환경 조성이 동시에 요구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워킹맘, 보육·직장·가사 3중고"
 
김명희 서울시 직장맘지원센터 종합상담팀장
-현장에서 느끼는 워킹맘들의 가장 큰 고충은 무엇인가.
 
▲보육 문제에서 가장 심각하게 드러난다. 직장을 그만두는 대부분의 이유가 보육 부담 때문이다. 육아와 직장생활이 충돌하면, 또 여성에게 과도하게 편중된 보육과 가사 부담으로 결국 직장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 3중고다. 직장문제, 가정문제 등 다중의 고충에 시달리다 심리적, 정서적으로 치유가 필요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경력 단절로 인해 겪는 고충도 꽤 클 것 같다.
 
▲경력 단절을 예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출산 전후 휴가 90일과 육아휴직 1년을 회사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제도는 있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사용 전·도중, 그리고 후에라도 어떠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다 사내 제도를 만들거나 취업규칙에 명시하고, 기업문화 자체를 일과 가족의 양립이 용이한 방향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센터 상담이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지고 있나.
 
▲지난해 출산을 앞둔 한 워킹맘이 직장에서 정리해고 대상자에 포함돼 상담을 요청해왔다. 출산을 앞두자 회사에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할 기회를 박탈해 문제가 됐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 경력단절예방지원단 소속 노무사와 공동으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 대리인으로 나섰다. 결국 조정과 화해에 이르러 출산휴가 90일, 육아휴직 1년, 실업급여까지 받을 수 있었다. 또 직장을 다니던 아빠가 육아휴직 중 해고당해 센터가 사건을 맡아 복직시킨 사례도 있다.
 
"2017년부터 가족친화인증 의무화"
 
김중열 여성가족부 가족정책과장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정책 방향은.
 
▲기업문화와 사회적 인식의 개선 등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특히 공공기관은 가족친화인증이 오는 2017년부터 의무화되고, 여성 관리자 비율이 낮은 기관이 내년부터 공표되는 등 최근 법제도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민간 부문의 일과 가정 양립 실천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의 선도적 역할이 필요하다.
 
-가족친화인증 제도에 대해 설명해 달라.
 
▲자녀출산 및 양육지원, 유연근무제도 등 가족친화제도를 모범적으로 운영하는 기업 및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여성가족부가 심사를 해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지난해 956개 기업이 인증을 받았는데, 우리나라 전체 기업 대비 2%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아직 부족하다. 확산을 위해 노력하겠다.
 
-정책과 현장 사이의 괴리감이 많다는 지적이다.
 
▲정책과 현장 사이의 괴리감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부터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정책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현장에 있는 근로자와 기업,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정책으로 수렴하기 위해서다. 많은 제도와 정책들이 만들어졌지만 현장에서 실제 적용되는지가 의문이라는 점에서 출발했다.
 
-맞벌이 부부를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있다면.
 
▲워킹맘·워킹대디 지원 사업을 올해 4월부터 실시하고 있다. 전국 151개 건강가정지원센터 중 6개 센터를 지정해서 올해 처음으로 시행한다. 주요 사업은 임신·출산·양육 관련 상담과 직장생활 고충 및 맞벌이 가정의 애로사항을 전문 노무사 등이 해결해 주고 있다.
 
이충희 기자 donkey3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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