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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에도 말 못한다…대한민국 하청의 현실
노동자 510명 심층설문…10명 중 8명 “하청, 위험업무 전담”
2015-05-26 14:37:01 2015-05-27 06:30:11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과 함께 대한민국 근로자라면 의무적으로 누릴 수 있는 산재보험이 하청 노동자들에게는 한낱 무용지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원·하청의 갑을 관계 속에 하청업체는 작업 중 사고가 나도 쉬쉬하기 바빴으며, 원청은 이를 알고도 묵인 및 조장하고 있었다. 이를 규제하고 처벌해야 할 법적 규제마저 허울뿐이어서, 피해는 고스란히 하청 노동자들의 몫으로 돌려졌다.
 
취재팀은 죽어서도 차별받는 하청 노동자들의 실태 파악을 위해 5월 한 달 간 산업 전 분야의 근로자 510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유해·위험 업무는 도급이란 이름하에 하청업체가 전담하고 있었으며, 그 결과 사상자 대부분이 하청 노동자들로 채워졌다. 임금과 복지 외에 산재 처리 과정에서도 이들은 철저히 소외되며 차별 받고 있었다. 허술한 법망은 또 다른 안전 사각지대를 만들며 대한민국에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덧씌웠다.
 
설문조사 결과, 잦은 사고에도 ‘작업장의 위험도가 개선됐다’는 응답은 단 19.6%에 그쳤다. 재해율 추이에 대해서도 ‘개선 중’이라고 답한 비중은 20.6%에 불과했다. 해당 기업의 안전 대책은 현장에서 전혀 체감되지 못했다. 산재 발생 원인으로는 ‘관리자의 작업 강요’(27.8%), ‘위험물 방치’(23.5%)가 첫손에 꼽혔다. 특히 업무 위험도를 물은 질문에 ‘하청이 더 위험하다’는 대답이 76.3%나 됐다. 반면 사고 조치에 대해서는 ‘산재보험 처리’가 25.1%에 그쳤다. 이를 원·하청 별로 나누면 원청의 경우 61.0%가 산재로 처리됐으나, 하청은 14.3%에 불과했다.
 
특히 최근 3년간 사망사고가 가장 많았던 현대중공업(조선)·현대제철(철강)·대우건설(건설)로 좁히면 그 실상은 비참했다. 설문에 답한 현대중공업과 현대제철 하청 노동자들 중 단 한 명도 작업장의 위험도가 개선됐다고 보지 않았으며, 건설노련도 단 12.7%만 개선의 여지를 남겼다. 또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의 70.6%, 현대제철 하청 노동자들의 80.0%, 건설노련 88.7%가 산재 보상 과정에서 ‘원·하청 간 차별이 있다’고 답했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를 ‘위험의 외주화’로 규정했다. 그는 산업현장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산재 은폐에 대한 지적과 함께 산재보험에서 소외되는 하청 노동자들의 실상이 원·하청의 구조적 병폐로부터 비롯된다고 말했다. 때문에 안전문제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높이고, 유해 및 위험업무에 대한 하도급을 금지하는 것 외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규제 강화가 절실하다는 게 그의 논지다.
 
김기성 기자 kisung012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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