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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는 기호품 아닌 유해품, 법적으로 유해성 증명하겠다."

[인터뷰] 이정희 건보공단 법무지원실장
2015-05-26 19:35:52 2015-05-26 19:35:52
담배의 유해성과 중독성으로 나가지 않아도 될 진료비를 지출했다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과 흡연은 개인의 자유의지일 뿐이라는 담배회사(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가 4번째 공방을 벌였다. 이정희 국민건강보험공단 법무지원실장은 이번 소송을 통해 흡연으로 인한 진료비 지출을 보상받고 국민들에게 담배의 폐해를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희 법무지원실장(사진)은 1958년생으로 경북대학교 법정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 건보공단 본부 기획조정실을 시작으로 2012년 공단 구미지사장으로 3년간 근무했다. 이후 공단 울산남부지사장을 거쳐 올해 2월 16일 법무지원실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이러한 이유로 건보공단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간 3000건이 넘는 소송들 중 담배소송의 중요성을 첫 손에 꼽았다. 오는 7월3일에는 재판의 핵심쟁점인 흡연과 폐암의 '개별적 인과관계'에 대해 본격적인 공방이 벌어진다. 
 
(사진제공=국민건강보험공단)
 
-담배소송이 세금낭비라는 지적도 있었다. 소송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국민의 건강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기관으로서 당연히 제기하고 또 진작 제기됐어야 할 소송이다. 건강보험 재정보호와 건강보험 가입자들의 건강을 위해 소 제기가 필요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담배소송을 담배의 폐해를 알리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언제든 지원하겠다고 했다. 의료급여 진료비를 관할하는 국내 지자체도 같이 동참하길 바랐지만 소송의 방향성에는 공감하면서도 담배수익금이 재정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인지 직접 말은 않지만 어려운 눈치였다. 담배로 인한 수익금보다 폐해가 훨씬 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일단 국민들이 건강해야 하지 않겠나. 건강하면 진료비도 적게 나가고 재정도 튼튼해진다.
 
-담배회사들은 공단의 증거자료(3483명의 흡연력·급여비 내역)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공단은 가입자확인서나 보험료내역증명서, 기타 여러 질병자료 등을 떼어주는 기관이다. 소송을 제기한 사람들도 공단에서 떼어간다. 많은 국내 기관들이 공단의 자료를 증거자료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자금지원도 공단의 보험료 내역서를 믿고 지원이 이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회사들은 공단자료의 증거력을 문제 삼고 트집을 잡고 있다. 법정에 제출된 자료는 공단이 임의로 편집한 자료가 아니고 공단의 업무수행 과정에서 입력하고 저장된 데이터베이스다. 그 데이터베이스를 출력한 자료를 믿지 못한다는 것은 국내의 공공기관, 심지어는 정부의 자료도 못 믿겠다는 얘기다.
 
-담배와 폐암의 역학적 인과관계가 개개인에도 적용될 수 있나?
 
담배회사들은 담배와 폐암의 역학적 인과관계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3484명 개개인의 인과관계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역학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모여서 만든 것이 집단이다. 개인의 인과관계가 증빙됐기 때문에 집단의 인과관계가 증빙된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을 부정하고 공단이 3484명의 개별적 인과관계를 증명하라는 것은 억지 발언이다. 이에 따라 대한예방의학회와 한국역학회도 지난 15일 4차변론을 앞두고 흡연과 폐암에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발표한 것이다.
 
-재판이 끝나면 빅데이터(데이터의 양과 형식 등이 방대한 데이터)가 자주 언급된다. 공단의 빅데이터 의존도가 높아 보인다.
 
외국의 보험자들은 건보공단 만큼 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흡연력과 급여비 내역까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공단이 유일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공단 데이터에 외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질 정도다. 공단은 재판에 필요한 자료를 개별 수진자들에 대한 정보로 제출하기 때문에 빅데이터의 의존도가 높다고 봐야한다. 신뢰도 또한 그만큼 높다.
 
(사진제공=국민건강보험공단)
 
-소송과정에서 담배회사들의 힘이 막강하다고 느낄 때가 있나?
 
담배회사들을 대리하는 법무법인들은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쟁쟁한 법인들이다. 실력이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인식이다. 아직도 담배가 기호품이라는 인식이 있다. 담배회사를 상대하는 동시에 이 같은 인식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 과거 개인들의 담배소송에서도 기호품이라는 인식이 강해 여건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건보공단의 패소 시 담배소송은 향후 원고에 더욱 불리해진다는 관측이 있다.
 
공단은 충분히 승소할 수 있다. 담배소송을 계기로 해서 국민인식이 바뀌어가고 있다. 소송을 제기한 대상 암종도 최소화했다. 20년 이상 담배를 피운 사람 중에서도 암종을 폐암(소세포암, 편평상피세포암), 후두암(편평세포암)으로 제한했다. 이는 과거의 재판이나 소송 그리고 국내외 학자들에 의해 담배와의 개별적 인과관계가 입증된 암이다. 공단은 담배로 인해 총 1조 7000억원의 건강보험재정이 추가로 지출된다고 분석했지만, 이로인해 소송금액도 537억원으로 줄어들었다. 패소는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패소할 경우에도 국민들 인식이 기호품에서 유해품으로 바뀌면 얼마든지 소송이 가능하고 결과도 다르게 나올 수 있다.
 
-담배회사들은 담뱃값에 포함된 건강증진기금(갑당 354원, 인상 후 841원)과 여러 사회공헌활동으로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건강증진기금은 담배회사가 아니라 소비자들이 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담배회사들이 역할을 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흡연자들이 낸 것을 자신들이 낸 것으로 포장한 것이다. 기업 치고 사회공헌 활동을 안 하는 곳은 없다. 제품판매로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일반회사에서도 한다. 사회공헌활동은 기업의 의무일 뿐이다. 건강증진기금이나 사회공헌활동을 한다고 담배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는 것은 아니다.
 
-원고 승소사례가 미국과 캐나다 등으로 많지 않다. 한국 담배소송에 대한 해외의 관심은 어느 정도 인가?
 
헌법재판소가 담배의 제조·판매를 허용하는 담배사업법이 합헌이라는 판결을 냈다는 보도가 뜨자 WHO에서 연락이 왔다. 공단의 담배소송에는 영향이 없겠냐고 관심을 보였다. WHO가 지원할 방법은 없는지 등을 물었다. 유럽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공단에 직접 연락을 해오고 있다.
 
-의욕적으로 소를 제기했던 이사장이 지난해 임기를 다했다. 향후 정권이 바뀌어도 담배소송의 무게는 그대로일까?
 
직원들도 걱정했다. 공단은 김종대 전 이사장 체제였던 2014년 4월 담배소송을 제기했으며 같은 해 12월 성상철 이사장이 부임했다. 국민적 관심을 받았던 담배소송이 흐지부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성상철 이사장은 의료인 출신으로서 담배의 폐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담배소송의 의미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적극 지원하고 있다. 김종대 전 이사장만큼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아울러 담배소송은 이미 학계와 국민들이 주시하고 있어 물러날 단계는 지났다고 봐야 한다. 공단은 포기하지 않는다.
 
-승소 시 소송확대나 소송가액 사용처 등 건보공단의 향후 계획은?
 
개인적으로는 소송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사장님의 결정과 이사회 의결이 필요한 부분이다. 섣불리 예견할 사항은 아니지만 소송이 확대될 가능성은 있다. 소송액은 진료비에서 지출된 돈이기 때문에 진료비로 보면 된다. 소가 제기된 537억원은 1인당으로 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재정이 늘어나면 금연지원 사업 등의 지원금을 높일 수는 있을 것 같다. 승소 후에는 개인의 소송도 지원할 예정이다. 공단의 소송경험이나 증거자료 등을 최대한 지원해 돕겠다.
 
-올해 2월부터 법무지원실장으로 부임했다. 그간 담배소송을 보는 시각은 어땠나?
 
지난 15일 4차 변론에 처음 참관했다. 이전에는 같은 직원이면서도 소송을 바라보는 입장이었다. 담배소송은 당연히 제기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공단이 공격적으로 소를 제기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반면 담배가 폐암을 일으킨다면서도 법적인 책임은 없다는 담배회사에는 연민마저 느꼈다. 해외에서 담배가 폐암을 일으킨다는데백기를 들었던 만큼 입장이 더욱 궁색해지는 것 같다. 그들이 과거 해외소송 초기단계에서 승소했던 전략을 또다시 쓸 수 있을지는 몰라도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고 인정한 사실은 변치 않는다.
 
-담배가 기호품이라는 인식에 대해
 
개인소송 당시 담배가 기호품이라는 인식 등이 재판에 반영돼 소송이 패소했다. 정부에서도 그러한 인식이 있어서 공단의 소를 제기 당시에도 미온적 대처가 있었다고 본다. 담배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담배가 유해물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담배를 끊는 것보다 애초에 담배를 피우지 않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국민들 인식이 하루빨리 바뀌고 공단의 담배소송도 좋은 결과를 내길 바란다.
 
남두현 기자 whz3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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