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라고 하면 왠지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껴지곤 합니다. 웬만큼 굳건하게 심지가 서지 않는 한 철학을 공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때때로 당대에 유행하는 철학자들의 사상만이라도 제대로 알고 싶다는 욕망이 들기도 하지만 막상 철학책을 붙들면 몇 장 넘기기가 쉽지 않지요. 아무래도 철학의 계보를 알아야 개별 철학에 대한 이해 또한 용이해집니다. 하지만 마음 먹고 손에 붙든 철학서가 잘못 번역됐거나 매끄럽지 않은 문장으로 일관돼 있어 이해도를 해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철학을 알고 싶은데 잘 알아지지 않아 속상했던 경험을 해보신 분들께 추천할 만한 책, '들뢰즈 철학과 예술을 말하다-횡단과 탈주의 스토리텔링'이 이번 '뒷북' 코너에서 소개할 책입니다. 질 들뢰즈라는 이름은 이제 대중에게도 제법 익숙하지요. 들뢰즈가 사망한 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 들뢰즈 열풍이 불었기 때문인데요. 반복과 차이,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욕망 기계, 리좀, 기관 없는 신체, 노마드 등의 개념을 어디선가 들어본 분들, 많으실 겁니다. 이 들뢰즈 철학이 알기 쉽고 정확하게, 또 제법 경쾌하게 서술된 책이 바로 '들뢰즈 철학과 예술을 말하다'입니다.
◇철학·문학·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들뢰즈 저술 총망라
'들뢰즈 철학과 예술을 말하다'는 중앙대학교 스토리텔링연구소에서 낸 책입니다. 이곳은 '이야기'에 관한 다양한 논의와 접근을 위해 2012년에 창립된 곳인데요. 이야기 방식에 대해 연구하는 이곳이 들뢰즈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공저자 중 정정호 중앙대 교수는 "미셸 푸코가 20세기는 질 들뢰즈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며 "프랑스의 놀라운 '생성의 철학자' 들뢰즈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인용되고 논의되고 있는데 그가 철학, 문학, 예술, 건축, 영화, 정치, 정신분석, 생태학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저술을 발표했기 때문"이라고 전했습니다. 즉, 각종 영역의 '이야기(narrative)' 생성에 적용 혹은 응용하기 쉽다는 점이 연구소에서 들뢰즈의 철학에 주목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책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간한 들뢰즈 관련 글들 중에서 이야기(문학), 사유(철학), 감각(예술)의 세 가지로 나누어 선별돼 편집됐습니다. 문학에서는 영미문학, 독일문학, 프랑스문학은 물론 한국문학을 들뢰즈 식으로 다시 읽기를 시도했습니다. 철학의 경우 페미니즘, 환경생태학, 사이버공간, 화행론, 불교와의 관련성 등도 들뢰즈의 사유방식으로 다뤘습니다. 예술에서는 영화학, 사진학, 팝아트, 국악, 건축 등을 들뢰즈의 감각으로 듣고 보고 느낀 결과가 소개됩니다.
◇이 책의 장점은?
짐작하셨겠지만 철학서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제법 실용적입니다. 문학과 문화, 예술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각 분야에 대한 이해와 성찰, 직관을 돕는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분들이라도 책을 꽤 유용하게 활용할 여지가 있습니다. 차이와 생성의 철학을 다룬 책답게 각각의 저술은 한 방향으로 굳어진 뇌를 유연하게 만들 좋은 자극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 곳에 정착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사유를 확장해 자신만의 실천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하는 책이라고나 할까요.
또 서술방식 자체가 들뢰즈 철학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니다. 저자들은 횡단적 언어와 의미의 탈주를 감행하는 들뢰즈식 스토리텔링의 기술을 적용했는데요. 이해를 돕기 위해 책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이버는 무엇보다도 사이비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이버는 우리들의 '사이(기계와 인간, 인간과 인간, 사회와 인간, 지구와 인간 등)'를 '버(ㄹ)/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이버는 또한 우리 '사이'를 '버(벌다)'는, 다시 말해 사이를 만들어내는 것(networking)이다. 사이버는 이렇게 이중적이고 모순적이다. 사이버는 양날을 가진 비수이다." 계속해서 하나의 기의에서 미끄러져 다른 기의로 이동하는, 몽상적인 서술방식이 매력적인 책입니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