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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니 사상에 구체적 대안 더해 '사회 전체 민주화' 꿈꾼다"
정태인 칼폴라니연구소장 "경제도 민주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게 폴라니 사상”
“시장원리로만 가면 사회 붕괴하고 사람들 고통 받아…다원적 경제 위한 구체적인 정책 제시할 것"
2015-05-11 17:59:08 2015-05-11 17:59:08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자 칼 폴라니(1886~1964)가 다시 뜨고 있다.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 이념에 균열이 생기자 학자들이 대안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칼 폴라니를 세상에 다시 불러낸 까닭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폴라니에 대한 관심과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폴라니가 주창한 사상이 최근 한국에서 불고 있는 사회적 경제 바람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란 이윤의 극대화가 최고의 가치인 시장경제와 달리 사람의 가치를 우위에 두는 경제활동을 뜻한다. 칼 폴라니는 바로 이 사회적 경제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학자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이 가운데 한국의 칼 폴라니 전도사를 자청하고 나선 단체가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4월 24일 개소한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www.kpia.re.kr) 아시아지부다.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 둥지를 튼 이곳은 개소와 함께 양극화와 불평등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경제 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고, 한국형 사회적 경제 모델을 수립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자본주의 체제의 민낯이 여과 없이 드러난 가운데 폴라니 사상이 불황과 위기가 일상화된 시대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사진=김영택 기자)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아시아지부의 설립 과정에 대해 말해달라.
 
본부는 1988년에 캐나다에 세워졌다. 폴라니의 딸인 폴라니 레빗 캐나다 맥길대 명예교수가 폴라니 사후 10년 되는 해에 퀘벡에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를 만들었고 지금 파리에 유럽지부도 있다. 한국에서 국제 사회적경제 포럼(Global Social Economy Forum)이라는 포럼을 재작년과 작년, 연속으로 열었는데 거기에 칼폴라니정치경제연구소장인 마가렛 멘델 콩코디아대 교수가 참여하면서 도움을 줬다. 퀘벡은 사회적 경제가 굉장히 발전한 도시인데 마가렛 멘델은 지방자치체와 시민단체가 같이 계획을 세우고 사회적 경제를 실현하는 ‘퀘벡 모델’을 만든 분이다.
 
-칼 폴라니가 세계 금융위기 이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930년대 대공황이 일어났을 때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동시에 많은 책을 썼다. 우리가 잘 아는 사람들은 케인즈, 하이예크, 슘페터, 그리고 폴라니다. 천재들이 많이 등장했던 시기다. 언제나 그렇듯 위기가 오면 해법을 제시하는 것인데 1945년에서 1975년 경까지는 케인즈의 경제학이 세상을 지배했다.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되면서 케인즈 경제학이 무너지고 하이예크 사상이 중심이 된다. 통화정책이라고 해서 중앙은행이 통화 공급량을 통제하고 인플레이션을 잡으면 오히려 경제성장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30년이 지나고 나서 새로운 위기가 온 거다. 현재 위기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또 다시 사람들이 해법을 찾는데 그러다 보니 다시 케인즈가 올라오고 한 편에서는 여전히 하이예크 해법을 주장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폴라니도 다시 한 번 들여다 보자’는 이야기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케인즈는 국가가 개입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하이예크는 오히려 국가가 없어야 시장이 잘 된다고 하는 시장 만능론을 이야기 했다. 그 가운데 폴라니는 ‘다원적 발전’이라고 부를 만한 주장을 했다. 시장을 무시하지도 않고 국가를 무시하지도 않으면서 ‘사회적 경제’라는 것을 말하며 조화로운 발전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폴라니는 사회가 다원적으로 구성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이 자율적으로 움직인다고 해서 시장논리로 사회를 조직해 규제완화, 민영화 쪽으로만 가면 사회는 붕괴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가 붕괴할 위험에 처하면 대응운동이라는 게 일어나게 되는데 대응운동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봤다. 즉, 대응운동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게 폴라니의 사상이다. 전세계적으로 케인즈와 맑스가 각광을 받는 동시에 폴라니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됐다.
 
-대응운동은 기존에 벌어졌던 일들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것으로, 적극적인 개혁이라 여기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근본적인 개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대응운동은 보수적인 것도 있고 진보적인 것도 있다. 굉장히 다양하게 나올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세계화의 폐해로 전세계적인 양극화가 일어나게 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 어려워지니까 시애틀 운동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았나. 반세계화 운동 같은 것도 대응운동이 될 수 있다. 언제나 경제적 위기가 오면 첫 번째로 사회적 경제 같은 것들이 커진다. 한 마디로 대응운동은 우리가 스스로 사회를 지키자는 것이다. 경제로부터 사회를 지키는 다양한 운동이 있을 수 있는데 폴라니는 그것을 하나의 모델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세계 경제위기의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인 불평등에 대한 여러가지 대응운동, 구체화된 정책들이 모이면 하나의 커다란 정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불평등은 한국사회의 약점 중 하나다. 칼 폴라니 연구를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인 토대를 만드는 게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라고 보면 되나?
 
사회적 경제에 주목을 하는 것은 맞다. 사회적 경제의 이론적 기초를 만든 사람은 폴라니가 처음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부분만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은 아니다. 폴라니의 딸, 폴라니 레빗 캐나다 맥길대 명예교수는 ‘기본소득’을 주요한 정책으로 제안하고 있다. 그 외에도 ‘소득주도 성장’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전부 폴라니 사상에 맞는, 다원적 경제를 구성하는 요소일 수 있다.
 
-‘다원적 경제’를 칼 폴라니와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로 볼 수 있겠다.
 
그렇다. 폴라니 사상의 핵심은 결정론이 아니다. 맑스는 사회주의 경제를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시장경제가 역사의 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마지막 상태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폴라니의 사상이다. 끝 없이 변화해 나간다는 것이다. 그 변화가 어느 하나의 원리로 다 설명되거나 그렇게 조직이 되면 그 사회는 붕괴한다는 게 폴라니 사상이다. 예를 들어 1920년대나 20년 전의 신자유주의처럼 시장원리로 다 만들려고 하면 사회가 붕괴하고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공의 원리, 국가의 원리로 전부 사회를 조직하려고 하면 국가사회주의처럼 성장률이 떨어진다든가 사람들의 창의성이 고갈된다든가 하는 사태를 빚게 된다. 그래서 폴라니는 이런 것들이 다양하게 공존하는 경제를 바라 보는 것이다.
 
-희망을 주는 경제학이다.
 
희망을 주기는 하는데 폴라니가 1960년대를 지나 말년에는 주로 인류학과 역사학을 했다. 구체적인 대안을 만드는 것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폴라니 경제학에 구체적 대안을 만드는 것을 결합하려고 한다. 우리 연구소에서 대체로 합의된 것은 포스트 케인지언(Post-Keynesian) 경제학과 칼 폴라니 사상을 연결해서 폴라니 사상에 기반하면서도 구체적인 정책을 제안하는 것인데, 이게 우리 연구소 목표의 3번이다(웃음).
 
1번은 폴라니 사상의 전파, 그러니까 폴라니의 책을 번역하거나 폴라니를 새로 소개하는 글을 쓰는 것이다. 2번은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작업이다. 사회적 경제의 기초 이론을 만든다든가 한국의 사회적 경제모델을 만드는 것들이다. 3번은 '다원적 발전'이라고 해서 폴라니가 제시한 다원적 발전의 구체적인 형태가 ‘21세기 한국에서는 이런 모습일 것이다’ 혹은 ‘21세기 세계에서는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 하는 식으로 제시하려 한다.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를 통해 한국사회가 어떤 실질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을까? 앞으로의 비전을 듣고 싶다.
 
폴라니가 그린 그림은 경제가 사회로부터 분리되면 사회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다시 경제가 사회 안에 들어가는 그림이다.
 
부침이 많긴 하지만 정치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제는 완전히 분리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현재의 주류 이론이다. 정치가 경제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사회가 무너진다는 게 폴라니의 이야기다. 다시 경제를 사회가 규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도 민주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게 폴라니의 기본 사상이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가 다원성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여러 방식의 경제가 존재하게 된다. 지금은 시장경제로 모두 바꾸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것도 여전히 있고 사실은 공동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평등한 부분도 있다. 경제민주주의까지 포함해 사회 전체가 다 민주화된 모습, 이것이 폴라니가 원래 그렸던 그림이다.
 
구체적인 정책이 그런 사상들에 많이 연결돼 나와야 사람들이 실제로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우리나라의 문제는 모든 분야의 양극화로 인해 사람들이 훨씬 더 불행해졌다는 점이다. 국민소득 3만달러 정도면 불행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격차가 너무 벌어져 있는 데다가 교육 등 현재 상황은 상위로 점점 더 일급 집중이 되고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고통스러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것들을 줄여나가고 좀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데 폴라니 사상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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