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경사진 무대에 한 가족이 위태롭게 서 있다. 무대 뒤로는 어지러이 엉켜 있는 전깃줄이 전신주에 애처로이 매달려 있고, 이따금 손톱 모양의 초승달이 실낱 같은 희망처럼 무대를 굽어본다. 무대 왼편에는 깨진 거울 하나가 관객을 향해 걸려 있다.
명동예술극장에서 자체제작한 연극 '유리동물원'이 6개월 만에 재공연에 돌입했다. 미국 희곡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1930년대 미국의 불황시대 속에서 로라와 톰, 아만다 등 세 식구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붕괴돼 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제공=명동예술극장)
극단 물리의 한태숙 연출가가 빚어낸 이 무대는 이곳이 세인트루이스의 싸구려 아파트인지 아니면 한국 어느 도시의 빈민가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시공간의 간극을 좁혀낸 것은 일차적으로는 현실적 고통과 정신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는 원작의 힘 덕분이다. 가족의 물질적, 정신적 빈곤 상태로부터 구원을 갈망하다 결국 실패하고 만다는 주제는 동시대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에 설득력 있는 인물 구현이 힘을 보탠다. 절름발이이자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로라 역의 정운선은 금세 깨져버릴 듯한 불안한 아름다움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인을 꿈꾸는 창고지기 톰 역을 맡은 이승주는 아버지 없는 이 가정에서 절름발이 누나와 불안정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 그리고 책임감으로 괴로워하는 아들을 유감 없이 표현해낸다.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불안해하며 자식들을 통해 삶을 재건하려는 욕망을 가진 어머니 아만다는 김성녀 배우가 맡았다. 특히 김성녀는 특유의 발랄함을 바탕으로 지겹게 이어지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며 이 무거운 극에 활기를 더한다.
그로테스크한 무대 연출을 주특기로 하는 한태숙 연출가는 이 작품에서도 '암울한 풍경을 그리는 듯한' 연출방식으로 자기 만의 색깔을 분명히 표현한다. 특히 기존의 한태숙 작품과는 조금 다르게, 너무 무겁지 않은 무대 연출을 바탕으로 원작의 의미에 집중한 점이 많은 관객과 깊이 소통하는 열쇠가 됐다. 이들 가족의 집은 마치 액자 프레임 속에 들어가 있는 듯 보이며, 집과 관객석 사이에는 널찍한 공간이 배치됐다. 이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무대 속 이야기에 지나치게 깊이 빠져드는 대신 무대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사진제공=명동예술극장)
곳곳에 배치된 상징적 장치들 또한 극에 대한 이해와 감상을 친절하게 돕는다. 무대 한 켠의 깨진 거울은 무대 위 비극적 삶을 사는 인물들뿐만 아니라 관객까지 비춰낸다. 또 로라의 남편으로 삼을 요량으로 아들의 친구인 짐을 초대한 아만다가 노란 원피스를 입고 수선화를 든 채 기쁨 속에 춤 추는 장면은 밝으면서도 기괴하게 표현돼 깊은 인상을 남긴다. 여기에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이따금씩 깊고 날카롭게 울려퍼지는 첼로 선율, 저 멀리서 벌어지는 스페인 내전을 상징하며 울려퍼지는 포화 소리 등은 이 극의 사회적 맥락을 넓힌다.
이처럼 잘 짜여진 여러가지 설정들을 통해 이 극은 1930년대 경제대공황 시절과 지금, 여기, 우리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증명해낸다. 저 멀리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혁명과는 무관하게 아침마다 일터로 나가야만 하는 톰은 영화관을 유일한 탈출구로 삼는다. 로라의 남편감이자 고등학교 시절의 영웅이던 짐은 이제 소박한 일터에서 다음 직장으로 ‘점프 뛸’ 생각에 여념이 없다. 아만다는 과거의 환상과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못한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집안에서 유리로 된 동물들만 매만지던 로라는 결국 희망의 촛불을 꺼버린다. 이 모든 풍경이 어쩐지 우리 주변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대중 속에 파고든 극장인 명동예술극장의 레퍼토리로 삼아도 손색 없을 작품이다.
-공연명 : ‘유리동물원’
-시간 : 2월26일~3월10일
-장소 : 명동예술극장
-작 : 테네시 윌리엄스
-연출 : 한태숙
-번역 : 정명주
-출연 : 김성녀, 이승주, 정운선, 심완준, 양성환(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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