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기자)'이방인'의 창조자를 만나다
<최초의 인간>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미메시스 펴냄 |14,800원
입력 : 2015-01-23 10:02:13 수정 : 2015-01-23 10:02:13
[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알베르 카뮈처럼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작가도 드물지만 그처럼 특정한 방식으로 정형화된 거장도 많지 않다. '이방인'이나 '페스트'로 카뮈의 정체성을 규정짓고 싶어 하는 사람은 그를 이렇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낯선 세계에 화자를 던져놓고 극한 상황으로 밀어붙여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가 표면 위로 드러날 때까지 웅크리고 있다가 맹수처럼 순식간에 낚아채 독자에게 '날 것' 그대로를 던지는 차가운 소설가.
 
최초의 인간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인간 카뮈'를 재조명하게 된 건 이 책이 그의 자서전 혹은 성장소설과도 비슷한 성격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책의 1부 맨 첫 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이 책을 결코 읽지 못할 당신에게'(카뮈의 어머니는 문맹이었다). 공교롭게도 최초의 인간 출간 이전에 사망한 카뮈 역시 이 책을 읽지 못했다. 그렇다면 최초의 인간은 카뮈의 어머니, 그리고 카뮈 자신에게 바치는 연서인 셈이다.
 
주인공이자 카뮈 자신을 상징하는 화자 자크 코르므리는 어머니의 부탁으로 죽은 아버지의 묘를 찾아간 그는 묘석 아래 묻힌 아버지가 마흔이 넘는 자기 자신보다 훨씬 어리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용돌이 같은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아마도 카뮈는 이 대목에서 '최초의 인간'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스물여덟 나이에 무덤에 갇힌 아버지의 묘위에서 느낀 감상을 이렇게 표현한다.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무덤들 사이에 꼼짝 않고 서 있는 그의 주위에서 시간의 연속성은 부서지고 있었다. 세월은 끝을 향하여 흘러가는 저 도도한 강물을 따라 순서대로 배열되기를 그쳐 버리고 있었다. 세월은 오직 파열이요 깨어지는 파도요 소용돌이일 뿐이었다..이름 없이 이 땅위에서 이름 없이 죽은, 자아를 구축하고 세계를 정복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정력을 송두리째 다 바쳐도 늘 모자란, 인간.'
 
이 대목에서 많은 독자들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떠올린다. 질식할 듯이 긴 호흡의 난해한 문체 때문만은 아니다. 프루스트가 홍차에 적신 과자 마들렌 향기를 맡고 난 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여정을 떠난 것처럼 카뮈도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각자의 운명 앞에 발가벗겨질 수밖에 없는 최초의 인간, 순수성을 찾아 과거로 떠난다는 발단적 유사성이 있다.
 
이방인의 주인공인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식을 억지로 참석하는 장면을 떠올린다면 최초의 인간에서 화자가 어머니에 대해 느끼는 연민은 카뮈가 담아내고자 한 주제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방인을 쓴 맹수 같은 작가가 이 책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세계를 포괄하는 개연성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는 이방인을 포괄하는 거대한 개연성을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 카뮈의 의도 아니었을까.
 
카뮈는 자신의 어머니를 접근이 불가능한 내면세계를 지닌 여성으로 표현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아무런 희망이 없다보니 원한도 없어져 버린 삶, 무감각을 견디어내는 삶'을 사는 인간이다. 카뮈는 어머니를 종종 그 여자, 혹은 여자라고 마치 별개의 존재처럼 표현했는데 이는 어머니가 자신이 창조해온 문학세계의 오랜 주제였다는 점을 암시하기도 한다. 사랑의 대상이지만 별개의 운명을 지닌, 사랑 그 자체로는 그 운명에 직접 관여할 권리가 없는, 그래서 자신이 쓰는 글의 주제로 삼지만 그 글조차 읽을 수 없는 여성.
 
카뮈는 어머니에게서 인간의 최초성을 발견했다. 역사도, 전통도,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한 채 현실에 바짝 달라붙어 살아가는 사람들,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의해 무화(無化)될 모든 것을 손에 움켜쥐고 별 쓸데없는 것마저도 가난한 환경에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야 하는 인간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모두 최초의 인간이다. 이방인도, 페스트도, 존재의 밑바닥에서 타오르는 삶에 대한 원초적 의지를 꺾을 수 없다. 부조리의 상징이었던 카뮈 자신도 누구 못지않게 자기 삶에 치열했듯이 말이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걸작이 될 '뻔' 했다는 이 작품은 계획대로라면 3부작으로 출간됐어야 했다. 원대한 포부와 달리 카뮈는 1부조차도 완전하게 끝맺지 못하고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프랑스의 어느 평론가는 이를 두고 '신은 인간이 신의 경지에 오르는 것을 결코 허락지 않았다'고 극찬하기도 했는데 이는 최초의 인간이 남긴 인상이 그만큼 강렬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천재적이라는 표현 말고 다른 수식을 찾기 힘든 명민한 문장과 거장의 야심찬 계획만 내비치고 조기 종영된 카뮈의 여정이 완결됐다면 이 책의 제목도 다른 이름이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밑그림만으로 고전 반열에 오른 이 작품은 앞으로도 충분히 재해석될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이번 번역본에 첨가된 호세 무뇨스의 거친 흑백 일러스트는 카뮈가 의도한 원초성을 상상하는데 더없이 훌륭한 감각적 재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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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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