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모두가 공범인, 그래서 우울한 세계
연극 <하드보일드 멜랑콜리아>
2015-01-16 07:54:23 2015-01-16 07:54:23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하드보일드(hard-boiled)’란 현실의 냉혹함과 비정함을 감상에 빠지지 않고 냉정하게 그려내는 묘사 수법이다. 그런데 여기에 우울 혹은 우울증을 뜻하는 ‘멜랑콜리아(melancholia)’라는 단어가 붙었다. 이질적이면서도 감각적인 단어들의 조합이 눈길을 끄는 연극 <하드보일드 멜랑콜리아> 이야기다. 이 작품은 CJ문화재단의 연극 창작지원 프로그램인 ‘2014크리에이티브 마인즈’ 선정작 중 하나로 대학로 관객을 만나는 중이다.
 
(사진제공=CJ문화재단)
 
이 작품의 중심인물은 아내의 죽음이 연쇄 살인범의 짓이라고 믿는 한 형사, 그런 형사의 확신을 믿지 못하고 그의 수사를 의심하는 취조자다. 그동안 형사는 범인을 열심히 잡았지만 잡힌 이들은 하나 같이 그가 원한 연쇄 살인범이 아니었다. 연극은 이 형사가 취조자를 앞에 두고 자신의 모든 수사를 되돌아보는 과정을 그린다.
 
특이한 점은 보통의 경우 형사들은 범인을 취조하는 입장에 서는데 이 연극에서는 오히려 취조를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형사를 취조하는 취조자를 따로 세웠다는 것에서 세계의 냉혹한 겉모습 속에 숨어 있는 인간 내면의 우울한 기운을 추출해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읽힌다. 즉, 작가는 하드보일드 기법을 통해 그저 멋있고 세련된 무대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그 안에 깊게 깃든 개인의 우울에 주목하려는 듯하다.
 
범죄와 수사를 소재로 삼은 연극답게 작품 속에는 유괴, 묻지마식 살인, 방화 등과 같은 각종 사회 범죄가 대거 등장한다. 극 중 범죄자들은 사이코패스, 변태 같은 모습으로 일관하는데, 동시대 관객이라면 아마도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리라. 왜 발생하는 지도 알 수 없는, 밑도 끝도 없는 각종 범죄들마저 이미 대중매체를 통해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약간은 유머러스하게 표현된 대사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범죄 자체의 심각성에 주목하기 보다는 현대 사회의 여러 징후를 읽어내도록 유도한다.
 
앞서 언급했듯, 형사는 자기 아내의 죽음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고자 각종 사건들이 연쇄살인범의 소행이라 추정한다. 하지만 극 중 살인자들은 모두 개별적인 모습을 띠며 어떤 식으로도 통합되지 않는다. 존재하지도 않는 살인자를 만들어내면서까지 쫓은 형사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결국 극 말미에서야 드러나는, 형사가 겪는 우울증의 근원 역시 개별적인 것임이 드러난다. 또한 부부 관계라는 또 다른 세계 속에서 형사가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조차 불분명해진다.
 
작품은 이렇게 사회에 만연한 폭력과 죄에 대한 이야기를 비사실적으로 보여주고, 범죄로 인해 황폐해지는 개인의 모습에 주목한다. 살인, 강간, 폭행, 납치, 고문, 절도 등 도시의 온갖 어두운 이야기가 모이는 이 취조실에서 관객은 마침내 '살인자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만약 장르물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TV드라마나 영화와 다른, 연극적인 방식의 하드보일드란 무엇일까 따져보는 것도 관극의 재미를 더할 터. 사람이나 물건과 부딪힐 때마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철제 테이블, 불투명한 유리 선반, 화질이 고르지 않은 CCTV영상, 예민하게 울려대는 전화기 소리 등 각종 시청각적 재료들이 눈과 귀를 바삐 움직이게 하는 작품이다. 
 
-날짜 : 2015년 1월2~18일
-장소 : 쁘띠첼씨어터
-작 : 석지윤
-연출 : 이동선
-드라마터지 : 마정화
-출연 : 황택하, 최명경, 박기륭, 백진철, 이지현, 이시훈, 김희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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