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사랑에 대한 질문들
2015-01-13 09:30:51 2015-01-13 09:30:51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연극 <멜로드라마>
 
무대는 마치 비뚤게 놓인 편지지를 연상케 한다. 한쪽에는 메마른 나뭇가지가 무대를 굽어보듯 드리워져 있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다섯 남녀는 이 감수성 짙은 무대 위를 서성거린다. 마치 사람들의 삭막한 마음에 띄운 러브레터 같은 느낌의 작품, 장유정 작·연출의 연극 <멜로드라마>가 한창 공연 중이다.
 
예술의전당과 이다 엔터테인먼트가 공동 기획한 연극 <멜로드라마>는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 등의 창작 뮤지컬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장유정 연출가의 연극 데뷔작이다. 2007년 초연한 이 작품은 2008년 앵콜 공연 이후 다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사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이 연극은 뻔하디 뻔한 사랑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부부인 김찬일과 강서경, 오누이인 박미현과 박재현, 친구 안소이 등 등장인물 간 사랑은 끊임 없이 어긋나는데, 사실 불륜을 소재로 한 각종 TV드라마의 모양새와 일면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 <멜로드라마>가 뻔한 연극에서 한발짝 비켜날 수 있었던 것은 귀에 잘 붙는 대사, 지루할 틈 없는 빠른 전개 등 장유정 작가 겸 연출가의 개성으로 단단히 무장한 덕분이다. 무엇보다도 경쾌하다는 것이 이 연극의 가장 큰 장점이다. 불륜, 낙태, 교통사고 등 멜로드라마 장르에서 흔히 사용되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데도 연극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텔레비전이나 영화의 그것과 달리 밝디 밝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각 장면은 다양한 간이 배경막의 힘을 빌어 빠르게 전환된다. 이따금씩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할 노래와 춤도 곁들여진다. 몇몇 역의 배우들은 무대 밖 관객을 상대로 연기하기도 하면서 관객의 웃음보를 자극하기도 한다. 이렇게 경쾌한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얻는 효과는 분명하다. 바로 관객이 멜로드라마 속 주인공의 비극적인 상황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을 막고, 대신 인물들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한번 더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이다.
 
비련의 주인공에 몰입하는 대신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가령 이런 것들이다. 부부 간 관계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 지에만 노심초사하는 커리어우먼, 그런 아내에게 ‘사랑 자체가 의무가 될 순 없다’는 남편, ‘약속이 뭐 그리 중요해요’라며 유부녀에게 뜨거운 구애를 펼치는 시한부 인생의 사내 등. 배역들 외에 무대도 눈길을 끈다. 가난한 작가의 방에는 비록 모작이지만 화가 로트렉의 그림 ‘입맞춤’이 선명하게 프린트 되어 걸려 있지만, 부유한 큐레이터의 집에는 번쩍이는 프레임만 있고 안은 텅 빈 액자가 걸려 있다.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이 밖에도 민속음악의 다양한 활용,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내용의 찬송가 등이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무대 위 인물들을 따뜻하게 감싼다.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아이스크림'과 '술'은 다름 아닌 사랑에 대한 비유인데, 작품은 이렇게 쉬운 반복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미해결 과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데 성공한다.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게 무색할 만큼 <멜로드라마>는 여전히 요즘 세대의 감수성에 맞는 작품이다. 물론 고아 출신 오누이라든지, 교통사고로 죽은 오빠의 심장을 이식받은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 등 다소 식상하게 느껴지는 설정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작품은 일부러 극단적인 상황을 배치하고 난 뒤, 그런 이야기의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빠르게 스쳐지나간 후 사랑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 집중한다. 마치 작가의 다이어리를 열어보는 듯한 느낌의 이 작품은 대중적이면서도 너무 가볍지 않은 연극을 찾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공연명: <멜로드라마>
-시간: 2014년 12월 30일 ~ 2015년 2월 15일(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작.연출: 장유정
-출연: 장유정 연출, 박원상, 배해선, 홍은희, 최대훈, 조강현, 박성훈, 전경수, 김나미, 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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