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욱의 가요별점)대중성 잡은 에이핑크..음악적 딜레마는 남아
2014-04-02 17:21:56 2014-04-02 17:26:10
 
◇새로운 미니앨범으로 컴백한 에이핑크. (사진=에이큐브 트위터)
 
[뉴스토마토 정해욱기자] 가수가 앨범 한 장을 내기까진 생각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투자됩니다. 하지만 세상이 ‘빠르게 빠르게’를 강조하면서 앨범 수록곡 하나하나를 찬찬히 들어보기가 참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뉴스토마토가 최신 앨범의 이모저모를 꼼꼼히 살펴보려 합니다. 정해욱의 가요별점은 최근 발표된 미니앨범과 정규앨범을 대상으로 별점과 한줄평을 제공합니다. 음악팬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 최신 앨범에 대한 뉴스토마토 가요 담당 기자의 솔직한 평가가 이 코너에 담기게 됩니다. (편집자)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기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이 슬슬 음원 차트 상위권에 다시 올라서는 걸 보니 봄이 오긴 왔나 봅니다. ‘벚꽃 엔딩’ 뿐만이 아닙니다. 봄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신곡들이 최근 들어 하나, 둘 발표되고 있습니다.
 
시계를 잠시 15년전으로 돌려보죠. 1999년 봄, 한 걸그룹이 화사한 봄에 어울리는 사랑스러운 노래로 뜨거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바로 1세대 걸그룹 핑클인데요, 핑클의 2집 앨범에 수록된 '영원한 사랑'은 따라부르기 쉬운 멜로디로 인기몰이를 했습니다. 멤버 옥주현이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불렀던 "약속해줘"란 파트는 아직까지도 음악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곤 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 중 ‘핑클빵’을 사먹고 스티커를 모았던 건 저 뿐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핑클은 청순한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같은 해 연말 가요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여성 그룹으로는 최초의 수상이었습니다. 상을 받은 뒤 기뻐하던 핑클 멤버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네요.
 
15년 뒤 봄, 핑클을 연상시키는 까마득한 후배 걸그룹이 비슷한 분위기의 곡을 내놨습니다. 지난달 31일 새 미니앨범 'Pink Blossom'을 발표한 '요정돌' 에이핑크인데요. 일단 타이틀곡 '미스터 츄'(Mr.Chu)의 뮤직비디오부터 보고 가시죠.
 
 
2번 트랙에 담긴 '미스터 츄'는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첫 입맞춤의 두근거림을 표현한 팝 댄스곡입니다. 에이핑크의 깜찍한 매력이 물씬 느껴지는 노래인데요.
 
올해 초 가요계는 걸그룹들의 ‘섹시 전쟁’으로 한창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도를 넘은 선정성 경쟁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데뷔 후 꾸준히 청순한 콘셉트를 유지하고 있는 에이핑크의 선택은 영리해 보입니다. 치열한 경쟁의 세계에서 돋보일 수 있는 자신만의 색깔을 구축했다는 느낌을 주네요.
 
'미스터 츄'는 청순한 느낌의 걸그룹들이 흔히 내놓는 히트곡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공주풍 옷을 입은 멤버들은 깜찍한 안무를 선보이고, 노래 가사는 "몰래 살짝 다가와 또 키스해줄래 내 꿈결 같은 넌 나만의 미스터 츄"와 같은 뭇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만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1번 트랙의 ‘선데이 먼데이’는 어쿠스틱 기타 소리와 함께 잔잔하게 시작하는 노래입니다. ‘미스터 츄' 못지 않게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풍깁니다. “사랑해 선데이 먼데이 또 선데이 먼데이 에브리데이”란 후렴구의 가사가 귀에 쏙 들어오네요. 쉬운 멜로디와 대중적인 가사의 노래란 점에서 앨범의 타이틀곡으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반복되는 고음 파트를 훌륭히 소화해내는 에이핑크 멤버들의 보컬 실력을 확인하고 싶다면 3번 트랙의 ‘크리스탈’을 추천합니다. ‘선데이 먼데이’에서 속삭이는 듯한 창법을 보여준 에이핑크는 ‘크리스탈’에선 꾸미지 않은 듯 고음을 내지르는 창법으로 청량한 느낌을 냅니다. 통통 튀는 느낌의 비트와 함께 흘러나오는 “넌 나의 비타민”, “넌 나만의 스타”라는 가사를 듣고 힘을 불끈 낼 남성팬들이 많을 것 같네요.
 
4번 트랙의 ‘사랑동화’와 5번 트랙의 ‘So Long'은 에이핑크의 리더인 박초롱이 직접 작사한 노래입니다. 박초롱이 작사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분들도 많았을텐데요. 박초롱이 작사 실력을 보여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박초롱은 2012년 발표됐던 에이핑크의 노래 ’4월 19일‘의 작사가로서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So Long'의 가사를 살펴볼까요?
 
“작은 손 꼭 잡고 날 지켜준 언제나 내게만 웃어준 너. 어느새 넌 내게로 와 내 맘속으로 와 친구 아닌 남자로 내 옆에 있었지.”
 
예쁜 얼굴 만큼이나 예쁜 가사를 썼네요. 설레는 사랑에 대한 추억을 수줍게 표현해냈습니다. 비슷한 경험이 있는 10대와 20대 초반 팬들은 이 가사에 공감할 것 같습니다. 앨범 참여폭을 넓혀가는 박초롱의 모습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네요.
 
6번 트랙엔 타이틀곡 ‘미스터 츄'의 또다른 버전이 실렸습니다. 언뜻 들어선 “뭐가 다르지? 똑같은 노래 아닌가?”라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6번 트랙의 ’미스터 츄'는 타이틀곡에 비해 좀 더 미니멀한 느낌이 있습니다. 이 노래에 신비감을 주는 사운드를 더해 세련된 방식으로 편곡한 것이 타이틀곡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원조 청순 요정’인 핑클이나 SES가 1990년대에 불렀던 노래와 더 가까운 느낌을 주는 건 6번 트랙의 ‘미스터 츄'네요.
 
삼촌팬의 입장에선 이런 에이핑크를 보고 있으면 참 좋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번 앨범에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난해 히트했던 노래 ‘노노노’나 ‘유유’와 비교했을 때 이번 앨범에서 음악적으로 새로운 부분을 찾기는 힘듭니다. 앨범에 수록된 여섯 곡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상업적 측면에서 본다면 상당히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중들이 보고싶어 했던 에이핑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죠. 하지만 새로운 음악적 성장을 보여주기엔 부족합니다. 대중성과 음악적 성장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서일까요. 소녀시대와 2NE1 등 새로운 음악적 도전을 보여주는 선배 걸그룹에 비해 한 자리에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는 인상도 줍니다.
 
에이핑크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신인 걸그룹중 청순한 콘셉트를 내세우고 있는 틴트나 원피스의 음악과 비교해도 에이핑크만의 음악적 특징을 찾기는 힘듭니다. 신사동 호랭이, 이단옆차기와 같은 히트메이커들이 곡을 만든 덕분에 에이핑크의 노래가 좀 더 세련되고 귀에 잘 들어오긴 합니다. 그러나 이런 노래 스타일을 에이핑크만의 색깔이라고 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다만 리드 보컬 정은지를 중심으로 멤버들이 비교적 안정적인 보컬 실력을 보여준다는 점은 음악적으로 높이 평가할 만한 부분입니다.
 
에이핑크는 올해 4년차를 맞은 걸그룹입니다. 이제는 치고 올라오는 후배 걸그룹들이 많습니다. 청순하고 예쁜 것만으로는 승부를 걸기가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에이핑크로선 뭔가 전환점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물론 이런 우려를 훌훌 털어내고 에이핑크가 앞으로도 청순한 이미지만으로 승승장구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많은 남성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에이핑크가 음악적으로 성장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면 가수로서 좀 더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을 닦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에이핑크 미니 4집 ‘Pink Blossom'>
대중성 ★★★★☆
음악성 ★★★☆☆
실험성 ★☆☆☆☆
한줄평: 청순한 노래로 돌아온 청순 소녀들, '청순'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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