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하늬·김민성기자] '소비자보호 강화'라는 화두는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추세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드러났듯 금융소비자보호 실패는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져 소비자보호가 금융시스템 안정에 필수적이라는 시각이 전세계적으로 확대됐다.
세계 각국에서 금융소비자보호를 전담하는 기구들이 설치되고 있고, 금융소비자 보호 체계와 사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금융사고와 소비자 피해가 전혀없이 완벽한 곳은 세계 어디를 찾아봐도 없다. 다만 우리보다 한발 앞서 금융소비자를 보호해온 금융선진국의 사례를 '한국식'으로 바꿔 벤치마킹할 필요는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금융선진국 감독체계 취사선택 필요..맹목적 모방은 '독'
금융선진국의 감독체계 변화 배경에는 커다란 금융사고가 존재했다.
미국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거시건전성 감독에 대한 체계적인 규정 자체가 미비했다. 위기 이후 시스템 위험을 담당하는 금융안정위원회(FSOC)를 중심으로 시스템안정과 소비자보호를 담당하도록 개편됐다.
영국은 미국발 금융위기 영향으로 대형은행이던 노던락(Northern Rock)이 파산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감독시스템 개편을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통화전문가인 아이켄그린 UC버클리대 교수는 당시에 "영란은행과 금융당국의 소통부재로 뱅크런이 촉발된 것"이라며 감독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편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기존 감독체계가 시스템 위험을 억제하는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고 판단하고, 핵심을 금융정책위원회(FPC)에 두고, 금융규제청(FCA)과 은행규제청(PRA)간에 '견제와 균형'이 실현되도록 했다.
미국과 영국의 감독체계는 미시적 구조엔 차이가 있지만 견제와 균형에 기반한 감독기관 개선이라는 큰틀은 같다. 또 금융안정위원회 같은 컨트롤타워 설치가 공통으로 추진됐음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영국의 사례를 통해 근본적인 변화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중점을 둬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자봉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형 금융사고를 치른 후 미국과 경제위기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시스템위험을 전담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감독업무 배분이 강조되면서도 선진국들이 왜 컨트롤 타워 중심의 유기적 통합 감독체계로 선회했는지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다수의 기관들이 하느냐 혹은 한 기관에서 하느냐 등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감독기관의 유인문제"라며 "감독자들이 그런 역할을 맡긴 사람들을 위해 충실히 업무를 수행하느냐가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선진국의 좋은사례를 맹목적으로 모방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의견에도 입을 모은다. 즉, 다양한 사례를 취사선택해 국내 환경에 맞는 체계를 안정화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학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일부 기구의 해체와 신설에만 집중하게 되면 곤란하다"며 "선진국의 감독체계가 개편이 논의된 '과정'에 무게중심을 두고 맥락을 살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금융사 DNA, 소비자 중심으로..정보 비대칭성도 축소
금융소비자보호의 원칙과 기준은 감독체계 뿐 아니라 민간부분에서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선진국들의 금융사들은 금융서비스를 공급자 중심이 아닌 소비자 위주로 제공해 '자문'과 '상담'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즉 금융사와 소비자간의 불평등한 정보 격차를 줄이는 방식으로 소비자보호에 접근하고 있는 것.
독일의 경우 투자자문사 명부를 통해 소비자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이 명부에는 금융사별 전체 투자자문사가 등록돼 있고, 잘못된 자문을 하거나 불완전판매가 이뤄진 경우 소비자 불만사항에 대한 내용이 전부 포함된다. 독일 금융감독청은 잘못된 자문행위에 대해 범칙금을 부과하거나 중대사안인 경우 직무정지도 내리고 있다.
호주도 주요 금융상품에 대해 상품설명서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고, 미국의 금융사는 소비자 개인정보 관리 정책과 관행을 소비자에게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영국에는 독립
재정상담사가 따로 있어 일반 소비자의 금융상품 판매를 돕고 있다. 이들은 금융사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고객의 입장만을 생각해 고객 형편에 맞는 상품을 추천해주고 있다. 이 제도는 미국과 영국 홍콩에서도 시행중이다.
이처럼 금융선진국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는데 주력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이해' 할 수 있을 때까지 설명과 자문서비스를 강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의 경우 금융사들이 업계의 이익 창출에 급급해 소비자들을 사탕발림으로 현혹해 약탈적 금융 행위를 일삼는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한국 금융사는 친절도나 빠른 가입절차 등 서비스 측면에서는 금융선진국을 압도하고 있다.
해외에 오랫동안 체류했던 정모씨는 "한국만큼 친절하고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사를 해외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 소장은 "금융에 대한 기본상식이 잘 갖춰진 금융선진국과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을 수 있지만 친절도 등 서비스 부분에서 표면적으로는 한국이 우수
하다"며 "하지만 해외의 경우 금융사 직원이 소비자 한명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때문에 추후 소비자 피해나 불만이 적다"고 설명했다.
결국 포장된 소비자보호 마인드가 아닌 금융사의 DNA를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로 바뀌는게 선행돼야 한다는 것.
최근 카드사 정보유출 사건만 봐도 금융사들은 피해 입은 소비자보다는 금융당국의 눈치를 먼저 보고 있다. 금융소비자를 두려움의 존재, 즉 '갑'으로 인식해 소비자 보호를 소홀히하면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경각심이 필요하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금융선진국에서 금융정보 격차를 줄이는데 집중하는 부분이 중요하다"며 "금융사가 금융소비자 관점으로 인식의 전환이 전제된다면 금융선진국들의 소비자보호 체계가 자연스레 벤치마킹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을 보탰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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