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현정기자] 금융투자업계에서 수년간 '효자' 구실을 톡톡히 했던 채권부문이 지난해에는 '실적을 깎는 주범'으로 전락했다. 더욱이 올해는 작년보다 못한 전망 탓에 기관투자자들이 채권투자전략을 보수 일변도로 구성하고 있다. 최근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채권몸집 줄이기' 선언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올해 국내 주요 증권사들의 채권투자 전략을 다섯차례로 나눠 살펴본다. (편집자)

"새해에는 익스포져(위험노출액) 측면에서 과거 대응에 비해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익스포져를 지난해 대비 '열에 여섯' 정도만 열어둘 생각입니다."
황보영옥 한국투자증권 채권운용본부장(사진)은 연말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감내해야 했던 쓰린 경험은 시장 리스크뿐만 아니라 내부 리스크 관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고 그는 말했다.
"시장 변동성도 60~70% 정도로 줄어들 여지가 큽니다. 국내 채권시장의 변동성을 책임진다고 볼 수 있는 외국계은행과 시중은행, 증권사들이 모두 과거 대비 보수 방침을 내세우고 있으니까요."
◇"추세약세 불가피..하지만, 전망은 전망일 뿐"
채권시장은 올해 추세적 금리 상승국면 진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황보 본부장도 이견은 없다고 했다.
"채권시장이 당분간, 적어도 1년 정도는 조정을 받을 것으로 봅니다. 2014년 연말 금리가 2013년말 대비 오를 것이란 전망에는 이견이 없는 상태죠. 좁혀보면 올 3분기보다 4분기에 더 오를 것으로 봅니다."
다만 전망을 곧이곧대로 적용해선 안 된다고 했다. 올해부터 채권금리가 추세적인 상승 국면을 탈 것이란 전망은 여의도 증권가와 채권시장 참가자들 모두가 인정하는 컨센서스지만 시장을 절대 예단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외국인 영향력이 더 커진 점도 변수다. 국내 요인만 놓고 보면 변동성은 줄겠지만 국내 기관들이 위험노출 정도를 줄인 상황에서는 외국인 수급이 시장 변동성을 좌지우지할 수 있어서다.
"연초에 하는 연간전망이 그대로 맞아 떨어진 건 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역(逆)으로 갈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전망은 전망일뿐, 그걸 염두에 두고 균형감각 있게 시장을 봐야죠."
무엇보다 장기간 지속된 채권 강세장에 취한 시장 참가자들이 달라질 시장 환경을 받아들이기까지 진통이 불가피하다는 게 황보 본부장의 설명이다.
"지난 5년 동안 채권시장은 강세장을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시장 환경은 이제 강세 일변도가 아닌 약세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달라진 금융제도에 전과 달리 경계감을 갖고 보수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기도 하죠."
더이상 나빠질 것 없는 채권시장에서 업계 종사자들이 받는 대우는 더욱 가혹해질 전망이다.
"수익은 나지 않고 거래는 줄다보니 인원을 줄이거나 부서를 폐쇄하는 회사도 많은 것으로 압니다. 운용역, 중개역 할 것 없이 말입니다."
◇냉혹했던 약세장은 '값진 경험'..오히려 20% 인력확충

약 10조~11조원. 국내 증권사 가운데 채권을 가장 많이 보유한 한국투자증권의 총 채권보유 규모다. 프랍(자기자본거래)과 소매채권, ELS(주가연계증권) 등을 모두 합친 것으로, 이 가운데 대표적인 채권 북(Book)인 환매조건부채권(RP) 계정 사이즈는 현재 8조원 정도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도 이 규모를 그대로 유지할 방침이다. 지난해 이른바 '버냉키 쇼크'로 불리는 미국의 양적완화 출구전략의 후폭풍을 피하지 못한 한국투자증권이다. 그 탓에 100억원대의 채권평가손실을 입기도 했다.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규모 대비 손실은 불가피했습니다. 지나간 일이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시장엔 얼마든지 여지가 있습니다. 때문에 사이즈는 그대로 두려고 합니다. 대신 위험노출을 줄이는 것이죠. 총 포지션은 줄이지 않고 듀레이션(가중평균만기) 값에 제한을 두겠다는 겁니다."
25명으로 꾸려진 채권본부 조직 규모도 줄일 생각이 없다고 했다. 한국투자증권 채권본부는 지난해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대규모 조직 슬림화를 단행하는 가운데 오히려 20% 정도의 인력을 늘렸다.
4~5년 전부터 채권본부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것이 그 배경이 됐다.
"운용 사이즈가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채권본부 성과에 따른 성과급 등이 입소문이 나면서 어느 순간 줄 서는 부서가 됐더군요. 회사 입장에서도 채권본부를 지원한 우수인력의 입장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1989년 한국투자신탁운용 채권 펀드매니저를 시작으로 여의도 채권시장에 뛰어든 황보 본부장은 이후 25년 경력 전부를 채권시장과 함께 했다. 채권 한 우물만 판 그지만 여전히 시장 속 균형감각 조율은 어렵다고 했다.
"포지션에 따라 시장 뷰는 계속 바뀝니다. 하지만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일간 전망의 경우 일관된 경우가 많죠. 롱(매수) 뷰면 모든 것이 롱으로, 숏(매도) 뷰면 모든 것이 숏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시장 뷰를 해석할 역량이 없다면 하나의 전망에 갇혀선 안 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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