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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A 2013)LG전자 아직 웃을 때 아니다!
2013-09-08 11:00:00 2013-09-08 13:57:55
[베를린=뉴스토마토 김기성기자] 유럽 최대 가전박람회인 IFA 2013이 개막한 지도 사흘이 흘렀습니다. CES, MWC와 더불어 세계 3대 IT·가전 쇼로 불리는 만큼 관련 산업의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 가전 동향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데다, 누가 시장을 선도하느냐의 주도권 싸움도 치열합니다. 당연히 현지 수많은 바이어들도 이곳을 찾는데요, 현장에서 직접 계약이 이뤄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언론의 관심도 뜨겁습니다. 전 세계 언론에서 기자들을 파견합니다.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블로거 등 1인 미디어들도 이곳을 찾는데요, 그들의 영향력은 때때로 시장을 뒤흔들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60여명에 이르는 취재진이 이곳 독일 베를린을 찾았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대한 취재 비중이 높습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에 이들 두 곳에 대한 취재만으로도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삼성전자와 LG전자만을 보고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전시장 면적만 14만5천㎡, 28개 홀에 들어선 1493개의 전 세계 기업들을 일일이 찾기는 어렵지만 각 분야를 주도하는 주요기업들은 빠지지 않고 눈으로 확인합니다.
 
소니, 파나소닉 등 과거 전자산업의 왕좌를 틀어쥐었던 일본 기업들은 물론 TCL, 하이엘, 하이센스 등 중국 기업들도 찾아 TV시장 패권을 둘러싼 한중일 삼국지를 그려봅니다. 또 유럽이 생활가전의 본거지인 만큼 밀레, 보쉬, 지멘스 등 쟁쟁한 유럽 기업들도 주요 취재 대상입니다.
 
이외에도 모뉴엘, 동양매직, 휴롬 등 독립부스를 마련한 우리나라 중견기업과 40여개 중소기업들이 모인 한국관도 빼놓지 않고 찾습니다. 때문에 IFA는 기자들에게도 좋은 공부가 되는, 흔치 않은 기회인 셈입니다.
 
최근 모바일이 IFA를 주요 무대로 활용하며 관심을 끌고 있으나 아무래도 주연은 가전입니다. 특히 IFA의 경우 CES, MWC에 비해 생활가전에 대한 비중이 높습니다. 가전의 꽃으로 불리는 TV 또한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이 자리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숨 막히는 TV 혈전을 그려볼까 합니다.
 
삼성전자는 명실 공히 전 세계 TV시장을 주도하는 패권자입니다. 8년 연속 TV시장 1위를 눈앞에 두고 있을뿐더러, 시장 점유율은 2~4위를 합친 것과 비슷할 정도입니다. 소니와 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들을 감히 넘기 힘든 마의 벽으로 느꼈던 시절과 비교하면 상전벽해입니다.
 
그런 삼성전자가 올 들어서는 LG전자에 3연속 카운트 펀치를 허용하며 자존심을 단단히 구겨야만 했습니다. 평면 OLED TV를 시작으로 곡면(curved) OLED TV 세계 최초 출시 타이틀을 LG전자에 빼앗긴 데 이어 이번 IFA에서는 77형(인치) 곡면 UHD OLED TV라는 예상치 못한 LG전자의 깜짝 카드에 TV 메인을 내줘야만 했습니다.
 
자체발광 소재로 이뤄진 OLED의 경우 꿈의 패널로 불릴 정도로 기술 진입 장벽이 높습니다. 특히 삼성전자가 내놓은 55인치보다 무려 22인치나 큰 사이즈를 내놓으면서 기술력의 우위를 대내외에 공표했습니다. 여기에다 풀HD 대비 해상도가 4배 뛰어난 UHD 화질을 결합시킨 데다, 휘어지는 플렉시블의 초입 단계인 곡면 기술까지 더했습니다. LG전자가 비장의 무기로 결정한 이유입니다.
 
삼성전자는 겉으로는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속까지 편할 리는 만무합니다. 더욱이 이 둘은 3D TV 시절부터 설전을 주고받을 정도로 신경전이 거셉니다. 최근에는 OLED 기술 유출을 둘러싸고 법정 공방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삼성전자로서는 기분 좋지 않은 패배입니다.
 
특히 UHD의 경우 지난해 IFA 때만 해도 콘텐츠의 부재를 지적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전략적 판단의 오류도 있습니다. 올 초 CES 2013에서 삼성전자가 전시장 메인을 UHD로 장식하자, 기자들은 날카롭게 이 부분을 지목하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속 썩이기는 OLED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수율이 안 따라와 주다 보니 WRGB로의 전환을 생각해야 하는데 이는 LG전자가 선점하고 있어 영 내키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어 병행으로 방향을 고쳐 잡았습니다. 자존심에는 일정 부분 생채기가 났습니다.  
 
◇LG전자는 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한 IFA 2013에서 세계최대 77형 곡면 UHD OLED TV를 내놓으면서 차세대 TV시장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에서 한발 앞서갔다.(사진=LG전자)
 
반면 LG전자는 한껏 기분이 들떴습니다. LG전자 TV사업을 이끌고 있는 권희원 HE사업본부장(사장)은 IFA 개막일인 6일(현지시간) 국내 취재진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에서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용 비장의 카드가 있음을 내비치기까지 했습니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와 달리 TV의 경우 신제품을 내기까지 상당한 기술적 난제들을 극복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개발이 완료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대목으로, LG전자의 기술력에 간담회에 참석한 기자들도 놀라워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곡면 무안경 3D OLED TV일 것이란 얘기도 있습니다.
 
이는 또 LG전자 전체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삼성전자에 가린 만년 2위의 한을 푼 데다 구본무 회장이 강조하는 시장 선도의 모범답안으로까지 인식되니 그 분위기야 미루어 짐작이 가능합니다. “그것 봐라. 하니깐 되지 않느냐”는 말까지 심심치 않게 들렸고, 심지어는 “차세대 TV시장을 둘러싼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자평까지 흘러나왔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실적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내고 있질 않습니다. 기업은 본질적으로 실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제 아무리 획기적 제품을 내놔도 시장이 외면하면 그만입니다. LG전자 HE사업본부의 경우, 지난해 2분기 5.7%의 영업이익률을 정점으로 올 1분기까지 3분기 연속 0%대의 영업이익률을 보이며 주저앉았습니다.
 
HE사업본부가 최근 3년간 영업이익률 1%를 넘어서지 못한 것은 지난 2010년 2분기(0.5%)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올 2분기 1.9%의 영업이익률을 기록, 회복세를 보였다고는 하나 여전히 시장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1000원에 물건을 팔면 겨우 19원을 남긴 것으로, 손해를 안 본 게 다행입니다. LG전자의 간판 치고는 초라하다 못해 비참한 성적으로 봐야 맞을 겁니다.
 
차세대 TV시장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에서 경쟁사 대비 한발씩 앞서 나가고 있음에도 정작 실적은 뒷받침해 주지 않는 아이러니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LG전자는 이를 마케팅과 유통싸움에서 밀리기 때문으로 분석합니다. 한마디로 돈을 쏟아 붓는 삼성전자에 뒤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입니다.
 
다만 이 경우 세탁기와 에어컨에 있어 LG전자가 삼성전자를 앞지르고 있는 대목과는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은 세탁기와 에어컨이라고 해서 사정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냉장고 또한 삼성전자와 엎치락뒤치락하며 치열하게 다투고 있습니다. TV만 유독 자원 탓을 할 수 없는 대목입니다.
 
일각에서는 한층 더 심화된 분석도 내놓고 있습니다. TV의 핵심인 패널의 경우, 업계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삼성디스플레이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장 OLED만 하더라도 LG전자의 WRGB 방식이 삼성전자의 RGB 방식보다 수율에 있어 장점을 보이고 있다는 게 일반적 분석입니다.
 
때문에 초점은 LG전자의 삼성전자 트라우마로 맞춰집니다. 시장을 보고 싸우는 게 아니라 삼성전자만을 보고 싸우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해석입니다. 물론 LG전자는 이를 극구 부인하지만, 그렇다고 삼성전자에 대한 의식마저 감춰지지는 없습니다. 한순간 승리에 도취될 게 아니라 본질적 문제를 파악하고 근원에 접근해야 할 때로 보입니다.
 
답은 여전히 시장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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